서울교정사목위, 세계 사형 반대의 날에 사형폐지 기원미사 봉헌

 
지난 11월 30일(금) 오후 5시,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세계 사형 반대의 날을 맞아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주최로 국회 법사위 의원들에게 엽서 보내기 운동이 벌어졌다. 이날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위원장 이영우 신부)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관계자들은 엽서 보내기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대한민국은 사실상 사형폐지국가입니다!”라고 적힌 버튼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오후 7시부터 명동성당에서는 약 3백 명 신자들이 참석한 사형 폐지 기원미사가 약 13명의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사제와 사회교정사목 사제들이 공동 집전하는 가운데 봉헌되었다. 강론에서 이영우 신부는 ‘우리나라 사형수 65명에 대해 어떻게 할까요?’ 라고 예수께 물으면 틀림없이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하고 화해하라고 말씀하실 거라고 했다. 사형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흔히 피해자 가족의 아픔을 내세워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피해자 가족과 가해자 가족들이 함께 하는 희망여행이 해마다 이루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피해자 가족모임이 시작되었다면서 피해자 가족인 고정원(루치아노)과 김기은(마리안나) 씨를 소개하였다. 이 두 사람은 강론 시간에 피해자 가족의 아픔과 바람을 증언하였는데, 고정원 씨는 연쇄 살인범 유영철에게 어머니·아내·아들을 잃었고, 김기은 씨는 딸 남자친구에게 무남독녀 딸을 잃는 엄청난 아픔을 겪었다. 두 사람의 가슴 아픈 사연과, ‘우리에게 필요한 건 증오가 아니라 용서와 화해’라는 호소가 이어지는 동안 성당 안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2부에서는 사형 폐지운동 10년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동영상 상영, 사형수 편지 낭독, 신상옥의 노래 공연 등이 이어졌다. 사형수 정 프란치스코는 사회교정 담당 사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요즘 우리나라가 사실상 사형 폐지국이 되었다는 언론 보도를 보면서 위안도 되지만, 한편 이 소식이 또 다른 아픔으로 다가갈 피해자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죄송하다’는 최근 심경을 밝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형제폐지소위원회는 오는 12월 30일 오전 11시, 10년 동안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가’ 기념행사를 국회에서 가질 예정이다.

이날 미사 때는 시민들의 참여로 만들어진 사형제도 폐지 촉구 판넬이 봉헌되었다.


다음은 미사 강론 때 피해자 가족 김기은 씨가 읽었던 글이다.

나의 소중한 딸

안녕하세요? 저는 김기은 마리안나입니다.
2005년 10월 1일은 저희 딸이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결혼하려고 했던 남자 친구로부터 살해를 당했습니다. 그 남자 아이도 그 자리에서 자살을 했습니다. 그 남자 아이는 모범생이었고 정직한 사람이었지만 취업이 어려워 결호 준비하는 데 쉽지가 않았습니다. 저희 딸은 6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중 핸드폰을 잘 안 받았다는 이유로 저희 딸을 불러내어 헤어지자고 했답니다. 그리고 3주 후에 엄청난 일을 저질렀습니다.

저는 그날 저녁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딸이 나간 후 얼마 안 되어 앰뷸런스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습니다. 무슨 일이기에 차가 두 대나 가냐? 하면서 창밖을 내다보았었습니다. 그 차가 바로 제 딸과 그 남자 아이를 실으러 온 차인 줄 누가 감히 생각을 했었겠습니까? 저는 지금도 앰뷸런스 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죽으려면 본인이나 죽지 왜 남의 귀한 딸의 목숨을 함부로 앗아갔는지 따져 묻고 싶고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그도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아이는 장례도 못 치렀다고 합니다. 제 딸의 친구들이 몰려가서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저는 제 딸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제 삶도 묻었습니다. 내 자신이 살아야 될 이유가 뭔지 묻고 싶었습니다. 성모상도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었고, 얼마 안 되는 재산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딸 곁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딸을 잘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고 나만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저는 항상 초를 두 개 켜고 기도를 합니다. 제 딸과 6년 동안을 지켜보았던 그 남자 아이를 위해서입니다. 착하고 예쁘게 엄마 곁에 있었던 제 딸의 영혼을 위해 그리고 가난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자신의 목숨을 던져버린 그 남자 아이를 위해 저는 평생 기도할 것입니다.

원망하고 따져 묻기도 하고 때로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묻고 싶기도 하지만 그 아이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원망을 하더라도 그 남자 아이가 살아있다면 만나서 묻기라도 하지 싶지만 살아있지 않습니다. 화해를 하고 싶어도 용서를 하고 싶어도 그 아이가 없어 할 수가 없습니다. 사형은 피해자들의 마음을 풀어주지 못합니다. 상대가 있어야 화풀이도 하고 용서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남자 아이의 부모를 만나고 싶습니다. 어느 부모가 사람을 죽이라 하겠습니까? 그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힘들겠어요. 함께 부둥켜안고 실컷 울고 서로 위로하고 싶은데, 그 부모는 만나주질 않아요. 죄의식을 느끼는가 봐요. 저는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 분들이 참된 용서로 새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했던 피정에서 저는 딸의 마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걱정하기보다 엄마 아빠가 건강하게 멋지게 잘 살다 오기를 바라는 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저는 딸에게 부탁했습니다. 이 사회의 많은 피해자들을 찾아가서 위로하고 용기를 나누는 일을 할테니 응원해달라고. 엄마 아빠가 아프고 힘들었던 것처럼 더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 가족들에게 작은 사랑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그리고 제 마음 속에서 살아있는 딸과 함께 열심히 기쁘게 살다가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만나자고 말입니다.

/박영대 200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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