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이돈명 인권상 수상한 ‘장애등급제 ·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 지난 550여 일,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싸워온 ‘장애등급제 ·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이 3회 천주교인권위원회 이돈명 인권상을 받았다. ⓒ정현진 기자

24일 저녁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니꼴라오홀에서 3회 천주교인권위원회 이돈명 인권상 시상식이 열렸다. 이번 이돈명 인권상은 ‘장애등급제 ·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이 수상했다.

“가난한 이들, 사회적 약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삶을 지켜나가는 것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수상 소식을 들으면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로 인해 죽어갔던 이들이 생각났습니다. 장애인이 등급제로 소외되고 차별받는 삶은 일상이고 낙인입니다. 부양의무제는 가족 공동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말하는 ‘복지’란 개인과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임을 명확히 알았습니다. 알고 있는 것을 위해서 싸워왔고 또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 수상소감 일부)

‘장애등급제 ·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은 지난 2012년 8월 21일 장애인 단체와 시민단체의 연대로 결성됐으며, 555일째 서울 광화문역에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낙인의 사슬 장애등급제, 빈곤의 사슬 부양의무제”
살기 위해 ‘진짜 가난하다’고 증명해야 하는 이들

장애등급제는 장애의 정도를 1~6등급으로 나눠 복지 혜택을 차별화하는 제도다. 대표적으로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경우 1 · 2등급 이외의 등급은 지원받을 수 없다. 일상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장애인은 약 35만 명이지만, 현재는 1급과 2급 장애인 5만여 명으로 제한된 상태다. 장애등급제는 활동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생존의 문제,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 인권침해의 문제를 갖는다. 사람의 몸을 심사해 등급을 매기는 이 제도는 방법적 한계도 명확한데, 등급 분류를 위한 심사 기준이 장애의 양상, 능력, 직업, 나이 등의 여러 차원으로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의학적 기준에 있다는 것이다.

또 부양의무제는 보다 직접적으로 생존권을 위협한다. 부양의무제는 수급대상자의 직계 가족 즉, 부모나 자녀에게 재산이 있으면 그들에게 부양의무가 있는 것으로 간주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부모가 부양의무자로 있으면 장애인 자녀가 성인이 되어도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다. 또 장애인 부모의 자녀가 취업을 하게 되면 부양의 몫은 자녀에게로 돌아간다.

이 두 제도가 어떻게 그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지,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은 ‘죽음’으로 증명하고 있다.

한 장애인 활동가와 박지우 · 박지훈 두 어린 남매는 활동보조인이 없는 사이 발생한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또 장애등급 재심사에서 탈락해 수급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가족의 소득 때문에 수급 자격을 잃은 이들의 죽음이 이어졌다. 장애인 아들을 둔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는 아들의 수급권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다른 한 노인은 사위의 지난 소득으로 수급자에서 제외되자 음독자살하기도 했다.

▲ 농성을 시작한지 500여 일 만에 7명의 안타까운 목숨이 세상을 떠났다. ⓒ정현진 기자

이에 대해 양유진 활동가(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두 제도가 복지정책을 표방하면서도 이러한 모순을 갖는 이유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예산과 행정적 편의에 의한 제도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는 근본적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바라보는 공통된 시선이 집약된 것입니다. 말로는 복지를 말하면서 정책과 제도 안에서는 결정적으로 수급의 제한을 두는 것이죠. ‘공짜는 없다’는 입장이에요. 또 정부가 이 제도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 중의 하나가 ‘부정수급을 가려내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정수급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수급 탈락되는 경우를 보면, 삶이 나아졌기 때문이 아닌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정수급을 가려내는 것보다, 절박하게 지원이 필요한 이들에게 제대로 주는 것이고, 그것이 복지입니다.”

양유진 활동가는 장애등급제에 대해 등급을 나누는 기준이 정말 합당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 양상이나 정도를 1급에서 6급으로 나눌 수 있는 과학적 · 의학적 기준이 과연 있는가 물으면서, “보통 중증장애인이라는 이들도 다 같은 1급이 아니다. 지원을 위한 등급이라면 그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가를 두고 다양한 맥락을 살펴야 하는데, 단지 의학적 기준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분류 판정을 한다”고 말했다.

장애등급제는 결과의 신빙성도 문제지만 의사 진단과 공단의 평가 등 절차가 복잡한데다, 재심사 과정에서 탈락하거나 등급이 바뀌는 경우가 많아 장애인 대부분은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양유진 활동가는 “탈락하거나 등급이 갑자기 바뀌는 경우를 보면, 그들의 형편이 달라지거나 몸 상태가 나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미묘한 차이로 인한 것이다. 그런데 그에 따라 삶이 급격히 달라진다”고 설명하며 “등급을 매긴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을 뿐더러, 1 · 2등급 외에는 알아서 살라는 통보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는 결과적으로 복지 혜택의 제약을 위한 장치”라면서, “부양의무제는 특히 가족에게 부양의 의무와 빈곤의 책임을 떠맡기는 꼴”이라고 말했다.

▲ 광화문역 9번 출구 앞에 차린 농성장. 각 장애인 단체와 연대단체들이 함께 매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공간은 지난 2012년 8월 21일 12시간의 사투를 벌여 얻어냈다. 이들은 이곳에서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박근혜 대통령, 2017년까지 등급제 폐지하기로 발표
그러나 등급제 변경에 따른 추가예산 편성 없어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농성은 26일 현재 555일째를 맞고 있으며, 오는 4월 12일이면 600일을 맞는다. 지난 500여 일의 성과라면 이 제도의 문제를 공론화시켰다는 것이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에 대한 의제는 18대 대선에도 반영됐고,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후보들은 모두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박근혜 정부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2017년까지 전면 폐지’를 발표했고 국정 과제로 확정했다. 이에 따른 2014년 단기 과제는 장애등급제를 중증장애(기존 1 · 2 · 3급)와 경증장애(4 · 5 · 6급)의 2단계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외의 어떤 방향과 내용은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지난 1월 1일 통과된 2014년 보건복지부 예산안에는 장애인 관련 주요 서비스 예산으로 총 8945억이 배정됐지만, 등급제 간소화에 따른 추가예산은 없었다. 기존 1~6급의 등급에서 중 · 경증 2단계 등급으로 바뀔 경우, 기존 1 · 2등급만 받던 지원이 3등급까지 확대됨으로써 추가되는 예산은 약 4500억원으로 추산됐지만, 이 금액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2017년은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시기다. 이대로라면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는 더욱 악화된 채 다음 정권으로 이양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예산 없는 폐지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물으며 “모두가 복지를 말하지만, 복지는 개인과 가족이 아닌 명백한 국가의 책임이다. 이것을 알게 된 이상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장애등급제 ·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은 광화문역 9번 출구 앞에서 555일째 서명운동을 벌이고 연대활동에 나서고 있다. 온라인 서명운동 참여를 원할 경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홈페이지(sadd.or.kr/sadd01/41491)에서 서명용지를 내려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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