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경 신부의 내 자랄적에 ⑧- 열한 살 때 (1950년)

 

7월인지 8월인지, 심한 피로와 갈증을 풀기 위해, 신작로에서 논을 가로질러 바라보이는 외딴 집을 찾아들었어. 가까이 가 보니 그곳은, 인민군 대여섯이 그 맞은 켠 신작로를 감시하는 초소였는데, 그 집 앞에 큰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나뭇가지들을 얼기설기 걸쳐 덮어두었더군. 작전상 중요한 초소였던가 봐. 할머니와 아이 손님들이어서 그런지, 물 한잔 마시며 다리쉼을 하게 해 달라는 우리를 친절히 맞아주더군, 열일곱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제일 나이 적은 인민군 병사가, 우리를 위해, 논을 가로질러 신작로 옆에 있던 우물에 물을 뜨러 갔어.

그런데 갑자기 쌕쌕이가 나타난 거야. 물을 뜨러 간 소년병사가 허겁지겁 집 쪽으로 뛰어 오는 것이 툇마루에 앉아 있던 우리 눈에도 보였어. 쌕쌕이도 보았던 모양이야. 쌕쌕이가 집 쪽을 향해 쉴새없이 기관총 사격을 하는데...... 그와 동시에 인민군 장교가 그 소년병사와 우리에게 소리소리 질렀지. 우리에게는 그 집 마굿간으로 빨리빨리 숨으라고 호통을 쳤어. 따르륵 따르륵 따르륵......

우리가족은 그들의 숙소이기도 한 듯한 마굿간으로 들어갔어. 우리는 두껍게 깔린 밀짚에 코를 박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지경이었지. 요란한 쌕쌕이 소리 기관총 소리로 너무 겁이 나서였을 거야. 나는 너무 답답해서 잠시 얼굴을 들었어. 바로 그때 피잉- 소리가 들리고, 바로 코 앞에서 밀짚 타는 냄새와 연기가 피어올랐어. ‘할매, 여기 봐!’ ‘코 박고 꼼짝 말랬잖아!’ ‘아니, 내 코 박은 데를 보라니깐!’ 온 가족이 내가 코를 박았던 곳을 보더니 모두 놀란 거야. ‘이 연기, 이 냄새!’ 나는 갑자기 내 손으로 그 연기와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 밀짚을 파헤쳤는데, 글쎄! 어른 엄지손가락만한 시퍼런 총알이 나타나지 않겠어?! 그걸 본 우리 가족은 하나같이 휴- 하며 안도의 숨을 내뱉었지. 따르륵 따르륵 기관총 소리는 계속되었고. 만일 내가 그대로 코를 박고 있었다면, 그 총알이 내 뒤통수를 정통으로 맞혔겠지! 이 첫번째 죽을 기회가 나중으로 연기된 것은, 물론 하느님의 손길이었음을 훨씬 나중에야 깨달은 거지.

마침내 쌕쌕이는 사라졌고, 다행스럽게도 사상자 하나 없었어.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그 소년병사와 우리는 인민군 장교한테 된통 야단맞았지. 그 소년병사는 쌕쌕이가 나타났을 때, 길가 어디에 숨어있지 않고 초소 쪽으로 뛰어왔기 때문이었고, 흰옷을 입은 우리가족은 쌕쌕이가 나타났을 때 재빨리 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지. 우리 가족은 선생님에게 야단맞는 어린아이 심정이 되어, 그 귀한 물을 얻어 마시고,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또다시 귀향길에 올랐지...... 

아슬아슬했네요, 할아버지? 삶과 죽음은 종이 한장 차이라고 하던데, 그 말씀이 맞나 보지요?

그때 내 나이 열한 살이었거든, 그러니까 한번뿐인 인생(一生)인데, 늘 죽음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지!

1951년 4월 북한 원산근처 한 마을에 미군 B-26 폭격기가 네이팜판을 투하해 불길이 치솟고 있다. 이 사진은 본보가 미국 국립군사기록관리청에서 입수한 것이다.
또 어딘가를 지나가다가 끔찍한 광경을 봤어. 다리 하나가 허벅지까지 대포에 날아가, 피를 철철 흘리며 신음하는 아저씨를 어느 중늙은이가 지게에 지고 어디론가 가는데, 잘린 허벅지 밑으로 너덜너덜한 바지가 바람에 나부꼈어. 병원도 의사도 피난가고 없을 텐데,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사람이 총 맞아 피를 흘리는 광경을 본 것은 이것이 내 생전 처음이었어.

안동 낙동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건너 갈 다리가 잘렸더군, 그 아저씨처럼! 피난 갈 때는 멀쩡하던 다리가 귀향길에는 잘려 있어서 우리는 다리 밑으로 건넜지. 국방군이 후퇴할 때 남한의 다리란 다리는 모두 잘랐다는 거야. 인민군이 쉽게 쳐내려오지 못하게 말야.

다행히 낙동강물이 아이들 배꼽에 찰 정도로 얕았어. 모두 지친 몸으로, 특히 할머니는 퉁퉁 부은 무릎으로 강을 건너고 있는데, 갑자기 또 쌕쌕이가 나타난 거야. 갈팡질팡 허겁지겁 뒤뚱뒤뚱, 지고이고 가던 짐들을 강물에 내팽개치고 잘린 다리 밑으로 도망치던 광경이 떠오르는군. 물이 깊거나 물살이 세거나 했으면, 우리가족은 그때 끝장이 났겠지! 그 몸서리나던 쌕쌕이! 귀향길에서만도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쌕쌕이를 만났고, 쌕쌕이를 무서워했고, 쌕쌕이를 미워했지.

정호경신부,  안동교구 사제이며, 현재 경북 봉화군 비나리에 살며 밭작물과 매실나무를 가꾸고,  책을 읽거나 나무판각과 글을 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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