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촌 주교, 쉽게 풀어쓴 사회교리서 <21세기 신앙인들에게> 발간

▲ 유경촌 주교의 문장. 사목표어는 “서로 발을 씻어주어라”로 한글과 라틴어로 표기했다. 죽음과 고난을 의미하는 푸른 물 바탕색에 방패 모양을 한 문장 중앙에는 네 개의 화살표가 있으며, 이 가운데 중앙을 향하고 있는 3개의 화살표는 믿음과 사랑, 희망을 통한 용서와 사랑, 희생을 상징한다. 위로 향한 화살표는 사랑과 봉사를 통해 생명과 부활의 세계로 거듭나게 되는 구원의 신비를 상징하며, 일곱 개의 흰 물결문양은 7성사로 상징되는 구원 경륜을 의미한다.
“서로 발을 씻어 주어라”(요한 13,24)라는 사목표어를 문장에 새긴 유경촌 신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가 2월 5일 주교서품식을 앞두고 ‘21세기 신앙인들에게’ 신앙의 참 의미와 사회정의에 대한 가르침을 쉽게 풀어서 책으로 출간했다.

유경촌 주교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겸손과 사랑, 희생으로 이웃을 섬겨야 한다고 요청한 것을 자신에게 남긴 ‘예수님의 유언’으로 삼았다. 이번에 출간한 <21세기 신앙인에게>(가톨릭출판사, 2014)는 가톨릭 사회교리 해설을 통해 유경촌 주교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이를 다른 신앙인들이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유경촌 주교는 오랜 신앙생활을 하고도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고 있는 신자들에게 ‘신앙적 성숙’을 요구했다. 성숙한 신앙은 나이와 상관없으며,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고 있는지 묻는다. 성숙한 신앙은 모든 사람을 ‘확대된 자기 자신’으로 느끼기 때문에, 이웃의 기쁨뿐만 아니라 슬픔과 고통마저도 자신의 것으로 여긴다. 나눔마저도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넘어서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되며, 보이지 않는 차원까지 끌어안는 것이다.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바로 영성생활의 시작이요 끝이며 전부”라고 말하는 유경촌 주교는 신앙인들의 사랑이 하느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아는 것이 ‘철든 신앙’이라고 말한다. 이어 십계명 중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는 2계명과 ‘도둑질을 하지 마라’는 7계명을 통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본질적 의미를 탐색한다.

유경촌 주교는 “통성명은 인간관계의 시작”이라면서, 하느님이 모세에게 ‘먼저’ 이름을 알려준 것은 힘의 주도권이 하느님께 있음을 뜻하는 것이며, 당신이 ‘직접’ 이름을 알려준 것은 그만큼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연민과 사랑이 깊음을 드러낸다고 풀이한다.

“감히 인간으로서 알 수 없는 이름을 하느님께서 주도적으로 계시해 주시는 모습에서 적극적으로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친근한 사랑이 드러난다. 그것은 자식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는 부모의 사랑 행위와 같다.”

변혁 위한 투신이 없으면 기도도 빈말

▲ 유경촌 주교, <21세기 신앙인에게>, 가톨릭출판사, 2014
유경촌 주교는 “하느님이 아닌 어떤 것, 하느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어떤 것을 하느님으로 잘못 섬기는 모든 행위는 결국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것”이라며, ‘하느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정당한 자리가 어디인지’ 묻는다. 이어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그분의 뜻을 따르지 않을 때 오히려 그분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느님의 이름을 남용한 사례로 종교재판과 십자군 전쟁, 신대륙 발견 때의 인종 학살과 노예제도 용인, 유다인 박해 등을 들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새 천년을 맞아 교황청 신앙교리성 국제신학위원회를 통해 발표한 <기억과 화해―교회와 과거의 잘못>이 귀감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유 주교는 “과거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솔직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며, 그러한 행동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당면한 어려움들과 싸워 나갈 수 있는 더 강한 신앙을 얻는다”고 말했다.

특히 인간의 탐욕과 물질적 가치의 우상화를 경고하며, 신앙인들은 “이런 비(非)구원의 실상을 방치하면서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세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유 주교는 구체적인 신앙 실천과 “세상의 변혁을 위한 그리스도교적 투신이 없으면 백 번의 기도도 빈말이 될 뿐”이라고 말하며, 신앙인들은 “소시민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신앙심에만 안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신의 믿음을 삶으로 증거할 때만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라는 ‘주님의 기도’가 살아있는 기도가 된다고 전했다.

‘도둑질하지 마라’는 계명은 ‘사회정의’ 실현하라는 명령

‘도둑질을 하지 마라’는 계명 역시 단순히 ‘남의 것’을 훔치지 않는 소극적 의미를 넘어, “재물로 인한 구속에서 해방되어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을 찾으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도둑질은 ‘정당한 소유’와 관련이 있다면서, 교회는 자연법에 근거해 ‘사유재산’을 옹호하지만, 모든 재물의 원주인은 하느님이므로, 사유재산을 절대화할 수 없다고 전했다. 모든 재물은 인류를 위한 ‘공유물’이므로 “사유재산권 행사가 공동선과 서로 충돌할 때면 언제라도 국가 공권력이 개인재산권 행사를 부득이 제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위급할 때는 타인의 재산을 취할 권리를 가진다고도 말했다.

“현저히 위급한 상황에서는, 소유권적 정당방어의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 아무 잘못 없이 명백한 긴급상황에 처한 사람은 기존의 소유질서가 위험에 처한 그를 도울 수 없을 경우, 타인의 부(富)로부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취할 권리를 지닌다.”

결국 ‘도둑질하지 마라’는 계명은 ‘사회정의를 이루라’는 계명이라고 유 주교는 설명한다. 도둑질이란 남의 것을 불법적으로 빼앗는다는 점에서 사회정의를 거스르는 행위인데, 각자에게 돌아갈 몫이 제대로 돌아가야 하며, 그렇지 못할 때 ‘불의’가 된다고 말한다. 유 주교는 개인적 차원뿐 아니라 ‘구조적 불의’를 언급하며 경제 부분에서도 “시장원리만으로 경제를 조절하는 것은 정의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결국 7계명이 정의 실현에 목표를 둔다면 “정의를 완성시키는 것은 사랑”이며, “사랑은 정의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사랑의 명령과 하느님 사랑에 대한 참여는 감상적 차원으로 평가절하될 수 없고, 이웃의 인격적 존엄성과 그의 포기할 수 없는 권리에 대한 존중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말했다. 즉, 그리스도인이 사랑한다면서 불의를 모른 척한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저버리는 것이다. 결국 하느님의 사랑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낳으며, 신앙인들은 ‘자발적 가난’을 통해 “재물의 참 소유주이신 하느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게 유경촌 주교의 생각이다.

유경촌 주교는 1988년부터 1998년까지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와 프랑크푸르트의 상트게오르겐 대학교에서 윤리신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 서울대교구 목5동성당 보좌신부를 거쳐 가톨릭대학교 교수, 통합사목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2013년 8월부터 명일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12월 30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었다. 주교서품식은 오는 2월 5일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에서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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