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의 권고 <복음의 기쁨> 19항-24항 번역문

제 1 장

교회의 선교 변형

 
19. 복음화는 예수님의 선교 명령에 순종하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오 28:19-20) 이 구절에서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시대 모든 장소에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당신을 따르는 이들을 파견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에 대한 믿음이 지구 곳곳에 퍼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I. 길을 나서는 교회

20.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길을 나서라”고 얼마나 재촉하시는지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새 땅으로 가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창세기 12:1-3 참조) 모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습니다. “가거라. 내가 너를 보낸다.”(탈출기 3:10) 약속한 땅으로 백성을 데리고 가라(탈출기 3:17)는 부르심입니다. 예레미야에게 하느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 한다.”(예레미야 1:7) 오늘날 “가서 제자로 삼아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변화무쌍한 시나리오를 갖고, 또 복음화라는 교회의 새로운 사명에 대한 전혀 새로운 도전으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울림은 우리 모두를 이 새로운 선교적 ‘외출’에 참여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각 그리스도인과 모든 공동체가 주님께서 가리키는 길을 반드시 식별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편안한 지역에서 나와서 복음의 빛이 필요한 모든 “변방”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서라고 부르시고, 우리는 여기에 복종해야만 합니다.

21. 제자들의 공동체를 활기차게 하는 복음의 기쁨은 선교의 기쁨입니다. 일흔 두 제자는 그들이 사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기쁨을 느꼈습니다.(루카 10:17 참조) 예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즐거웠을 때, 그리고 아버지께서 가난하고 작은이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신 것을 찬미할 때 기쁨을 느끼셨습니다.(루카 10:21 참조) 오순절에 사도들이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가르치는 것을 듣고 첫 그리스도인들은 놀라며 이 기쁨을 느꼈습니다. 이 기쁨은 복음이 선포되었으며 결실을 맺고 있다는 표징입니다. 그러나 길을 나서는 것, 우리 자신 속에 갇혀 있지 않고 밖으로 나가 계속해서 좋은 씨앗을 뿌려야 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러 떠나온 것이다.”(마르코 1:38) 일단 어떤 곳에 씨앗이 뿌려지면,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설명하려고, 혹은 더 많은 기적을 베풀려고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분을 다른 이웃 고을을 향해 길을 떠나도록 하십니다.

22. 하느님의 말씀이 갖는 능력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복음은 일단 뿌려지면 농부가 잘 때조차도 저절로 자라는 씨앗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마르코 4:26-29) 교회는 이를 말씀이 갖는 감당할 수 없는 자유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말씀은 그것이 우리의 계산과 생각을 뛰어넘어 말씀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23. 교회가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은 함께 여행한다는 것입니다. “친교와 사명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스승의 모범에 충실히 따르면서, 오늘의 교회가 두려움이나 거리낌이나 망설임 없이 길을 나서서 모든 곳의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가르치는 것은 진실로 중요합니다. 복음의 기쁨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누구도 배제될 수 없습니다.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천사가 선포한 것은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전한다.”(루카 2:10)는 것이었습니다. 묵시록은 “땅에서 사는 사람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언어권과 백성에게 선포할 영원한 복음”을 이야기합니다.

첫발을 내딛고, 속하고 지지하며, 열매를 맺고 즐거워합니다.

24. “길을 나서는” 교회는 첫발을 내딛고, 그들에게 속하며 지지하고, 열매를 맺고 즐거워하는 선교하는 제자 공동체입니다. 복음화 하는 공동체는 주님께서 주도하십니다.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요한 4:19 참조)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 공동체는 과감하게 먼저 움직이며, 다른 이들에게 다가 가고, 버림받은 이들을 찾아 나서며, 사거리에 서 있다가 내버려진 이들을 환영합니다. 그 같은 공동체는 끊임없이 자비심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이 자비심은 아버지의 한량없는 자비의 힘을 체험한 결실이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힘을 내서 첫발을 내딛읍시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갑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 안에 들어가셨고, 당신 자신 스스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무릎을 꿇고 그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에게 “이것을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요한 13:17)고 하십니다. 복음화 공동체는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갑니다.

복음화 공동체는 분리된 것을 이어줍니다. 필요하다면 기꺼이 자신을 낮춥니다. 그리고 다른 이에게 고통 받는 그리스도의 몸을 쓰다듬으면서 인간생명을 끌어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양의 냄새”가 나고, 양들은 기꺼이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합니다. 복음화 공동체는 지지합니다. 사람들과 항상 나란히 걷습니다. 그 길이 아무리 어렵고 먼 길이 될지라도 말입니다.

복음화 공동체는 사도적 인내와 끈기 있는 전망에 익숙합니다. 복음화는 대부분 시간의 제약 없이 인내심을 가져야 이루어집니다. 주님의 선물에 충실한 복음화 공동체는 열매를 맺습니다. 복음화 공동체는 항상 열매에 관심을 갖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공동체가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은 씨앗이 싹 트는 것을 보면 푸념하지도 들뜨지 않습니다. 그는 말씀이 특정 상황에서 몸이 되어 새 생명의 결실을 내도록 길을 찾습니다. 그 결실이 아무리 불완전하거나 미흡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입니다.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려는 출발선에 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순교조차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목표는 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 받아들여지고 그 해방과 쇄신의 힘이 드러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복음화 공동체는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그 공동체는 항상 즐거워하는 법을 압니다. 그 공동체는 모든 작은 승리도 기념합니다. 복음화의 과업에서 한 걸음이라도 나간다면 그 때마다 기념합니다. 기쁨의 복음화는 전례에서 아름다움이 됩니다. 전례는 선을 전파하려는 우리들이 매일 관심을 갖는 분야입니다. 교회는 복음화하며 전례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스스로 복음화 됩니다. 전례는 복음화를 기념하는 일이며, 또한 새로워진 교회가 자기를 내어주는 원천입니다.


번역: 박동호 신부
서울대교구 신정동 성당,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