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정리해고 길 열어준 판결...‘감정보고서’도 무시, 노동계 반발

서울고등법원이 결국 악기제조업체인 (주)콜텍의 손을 들어줬다. 콜텍 사측의 정리해고가 대전공장의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이뤄진 것이라는 판결이었다. 콜텍 노동자들은 법원으로부터 ‘패소’ 판정을 받아들었다. 무려 8년간의 투쟁과 법정공방, 대법원 파기환송 끝에 나온 ‘허무한’ 판결이었다.

이번 법원의 판결은 재판부가 선임한 회계법인의 감정평가조차 부정한 것으로, 법원은 ‘정치판결’이라는 오명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특히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라는 법적 정리해고 요건이 현실에서는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판결로써, 이후에는 자본이 더욱 손쉬운 정리해고를 단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됐다.

 

‘정치판결’ 내린 법원, ‘콜텍 정리해고 정당했다’

10일 오전 10시 서울고등법원 서관 306호. 법정은 콜텍, 콜트악기 노동자들과 연대단체들로 가득 찼다. 법정으로 들어선 판사는 “노동자들의 항소를 기각한다”며 “사측의 정리해고는 정당했다”고 빠르게 선고를 마쳤다. 정리해고 유효 판결에 대한 별다른 설명도 없었다. 8년을 투쟁했던 노동자들은 굳은 표정으로 법정을 빠져나갔다.

서울고법 민사1부(부장판사 정종관)는 이 날, (주)콜텍 대전공장에서 근무하다 정리해고 된 양모(51) 씨 등 2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소송 파기환송심에서 노동자들의 패소를 선고했다. 사측의 정리해고와 공장폐쇄가 정당했다는 것이었다.

다만 정리해고 직전에 징계해고 된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지회 지회장 등 3명에 대해서는 “징계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아울러 법원은 징계해고 기간의 임금을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중앙노동위원회, 지방법원, 고등법원 등은 콜텍의 정리해고에 대해 상이한 판결을 내려왔고, 대법원은 2012년 ‘심리가 미진하다’며 이 사건을 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지난 7년간 치열한 법적 다툼 끝에 진행된 네 번째 판결이었지만, 결과는 사측의 승소였다.

판결 직후, 이인근 콜텍 지회장은 “말도 안 되는 판결”이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는 “징계해고는 이미 2심에서 사측이 포기한 사건이었고, 정리해고는 대법원까지 갔다가 파기환송된 것”이라며 “완벽히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회계 감정보고서도 모두 무시됐다”고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노동자들은 법원 건물을 향해 울분을 터뜨렸다. 한 노동자는 “원고가 기각된 이유도 가르쳐주지 않고 ‘기각한다’고 말하면 끝나는 거냐. 원고가 얼마나 억울해 할지는 생각도 하지 않나. 자신들 스스로도 얼마나 창피했으면 이유조차 설명 못 하나. 이게 무슨 재판이냐. 개판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근로기준법 정리해고 요건 약화시켜...자본의 손쉬운 정리해고 길 열었나

이번 서울고법의 판결은 재판부가 선임한 회계법인의 감정평가조차 부정한 것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앞서 지난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은 콜텍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 판결에서 ‘심리가 미진하다’는 이유로 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이에 따라 서울고법은 회계법인을 선임해 (주)콜텍에 대한 감정평가를 실시했다. 이 감사보고서를 근거로 판결을 내리겠다는 취지였다. 회계법원이 재판부에 제출한 ‘주식회사 콜텍 및 대전공장 경영상황 감정보고서’는 콜텍 대전공장이 경영상의 긴박한 사유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감정보고서는 “대전공장의 손실금액은 콜텍 전체의 자산규모나 매출액 규모에 비추어 볼 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며 “콜텍의 재무구조가 건실하고 통기타사업의 수익성이 양호하므로 대전공장의 영업손실 상황이 경영상의 긴박한 사유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회계법인은 “콜텍의 경영상황이 정리해고를 할 만큼 긴급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있다고 볼 수 없고, 대전 공장의 영업손실 수준이 콜텍 전체의 경영악화로 전이되어 위기상황을 초래할 만한 재무적 요인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감정보고서를 기반으로 한다면 재판부는 ‘정리해고 무효’ 판결을 내려야 하지만, 상황은 역전됐다. 재판부가 사실상 감정보고서를 받아들이지 않은 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법원이 자본 측에 손쉽게 정리해고를 단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점이다.

그동안 ‘경영상의 이유’를 포함한 정리해고 요건은 그 범위가 명확치 않아 법적 다툼이 이어지곤 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자신들이 선임한 회계법인조차 인정하지 않은 ‘경영상의 이유’를 스스로 결정지으면서,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리해고도 정당하다’는 판례를 만들었다. 결국 법원은 근로기준법의 정리해고 요건을 약화시키는 한편, 기업의 손쉬운 공장 폐쇄와 해외 이전의 길을 열어준 셈이 됐다.

법원이 선임한 회계법인의 ‘감정보고서’도 무시해...‘정치판결’ 비난 직면

판결 직후 콜트, 콜텍 지회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공동행동’, 문화 활동가 등은 서울고등법원 서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의 정치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인근 콜텍지회장은 “0.1%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파기환송된 후 첫 심리부터 우려했다. 판사가 이미 사측 편으로 기울어 있었다”며 “그러한 우려 속에서 회계 감사보고서가 나왔고, 콜텍이 정리해고를 할 만큼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철저히 그 보고서를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이러한 법을 어떻게 국민이 믿고 신뢰할 수 있나. 힘 없고 빽 없는 민중은 어디 가서 억울함을 호소해야 하나”며 “절대 기죽지 않고 싸우겠다. 이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 분명한 책임을 물을 것이며, 이 나라 사법부는 판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종운 콜트지회장은 “콜트악기는 2010년 대법원에서 승소하고도 5월 31일 해고됐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이유였다”며 “하지만 콜텍은 돌아갈 공장도 있고, 당기 순이익이 100억 원이다. 이 곳이 사법부인지 의심스럽다. 끝까지 투쟁해 싸우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은 같은 자본과 사용자 하에서 일하다 해고된 콜트, 콜텍 노동자에 대해 ‘황당한’ 판결을 내렸다. 당시 법원은 콜트악기의 정리해고는 ‘무효’라고 판결했고, 콜텍악기의 정리해고는 ‘유효’라며 고등법원에 파기환송했다. 하지만 회사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3달 만에, 대법 판결 이행을 거부하며 콜트악기 노동자들에 대해 2차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이원재 문화연대 활동가는 “같은 날 ‘콜트는 정리해고 무효, 콜텍은 정리해고 유효’라는 괴이한 판결을 내렸던 안 모 대법관은 박근혜 캠프로 갔다. 이후 고등법원은 자신들이 지정한 회계전문가의 감정평가를 무시하고, ‘기각한다’는 4글자 외에 어떠한 코멘트도 없는 정치 판결을 내렸다. 안 모 전 대법관의 뒤처리를 한 것”이라며 “법이 아무리 더러워도 끝까지 법정 투쟁을 하겠다. 그리고 대법원에서 이기던 지던 사회적 투쟁을 이어 가겠다”고 밝혔다.

조민제 대전충남지부장 역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완전히 친 자본적인 이번 판결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콜트, 콜텍 노동자들은 항고할 것이며, 가열찬 투쟁을 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기사 제휴 /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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