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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다, 마린스 신부 인터뷰



   

호세 마린스 신부(사진출처: 평화신문)

지난해 12월 2일 오전 10시, 나는 호세 마린스 신부와 인터뷰를 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www.catholicnews.co.kr)에 싣기 위해서였지만, 한 시간이 넘게 인터뷰를 하고도 기사를 싣지 못했다. 나는 평소 느끼던 한국 교회 소공동체의 한계를 그에게 확인하고 충고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마린스 신부 얘기는 이미 언론에 보도된 강연이나 세미나의 원론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몇 차례, 이야기 중간을 끊고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한국 교회 소공동체 현실에 대해 자세히 모르니 뭐라 이야기할 처지가 안 된다는 태도였다. 그 신중함을 이해 못 할 바 아니지만, 몇십 년 동안 세계교회를 돌아다니며 소공동체 관련 연구와 교육을 해온 마린스 신부의 날카로운 충고를 듣지 못한 게 아쉬웠다. 사정이 이런지라 준비한 질문을 모두 하지도 못했다. 준비했던 질문은 이랬다.

● 중남미 바닥공동체운동은 가난한 사람들의 눈으로 성서를 보는 걸 강조한다. 하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 룸코사목연구소에서 개발한 소공동체 모델은 이 점이 뚜렷하지 않다. 바닥공동체와 소공동체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 한국 천주교회는 점점 부자교회가 되고 있다. 2005년 인구센서스 결과, 부유층이 산다는 대도시, 특히 강남 지역에서 신자가 크게 늘었다. 이 같은 부자교회에서 소공동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 소공동체는 본당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본당 안에서 진행된다. 바닥공동체는 본당과 연계하지만 본당 안에 머물지 않는다. 본당 안에서 소공동체가 이루어질 때, 신부님 책에서 든 비유처럼 기차 무게를 줄이지 못해 결국 산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닌가?
● 룸코사목연구소가 개발한 복음나누기 방법의 기초는 ‘복음나누기 7단계’이다. 이 중 제6단계가 공동 실천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단계이다. 한국 교회 소공동체에서 제6단계는 거의 무시되고 본당 전달 사항을 전하는 시간이 된다. 이 같은 현상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 몇 년 전 아시파(AsIPA) 총회 때 참가자들은 한국 소공동체를 참관한 다음, 한국 소공동체는 소공동체가 아니라 소그룹이라고 평가했다. 가족 단위로 참여하는 예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 본당마다 레지오가 활성화되어 있으며 활동 신자 대부분은 레지오 활동을 한다. 그래서 소공동체를 매주 또는 격주로 갖는 데 장애가 되어서 일부 사제는 레지오를 강제 해산시키기도 한다. 그때 사제는 소공동체는 교회이고 레지오는 사도직 단체일 뿐이라는 근거를 내세우는데, 신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소공동체에 가정 단위로 참여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가정과 소공동체는 어떤 관계인가?
● 신부님 책을 보면 사목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 본당 사제는 길어야 5년 주기로 이동한다. 소공동체전국모임에서 모범 사례가 발표되지만 사제가 바뀌면 사례도 사라진다. 이 같은 조건에서 사목팀을 어떻게 운영하면 좋을지 도움말을 부탁한다.
● 한국 사회에서 해마다 약 20% 국민이 주소지를 옮긴다. 맞벌이 부부도 많아진다. 이런 탓에 소공동체 봉사자를 하려는 사람이 줄어든다. 공동체 지도자와 그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이 같은 조건에서 어떻게 공동체 지도자를 양성할 수 있을지 도움말을 부탁한다.
● 몇 년 전 브라질 상파울로의 한 공동체센터를 방문했을 때, 그곳 신부님 말씀이 교구 보수화로 말미암아 10년 가까이 신학생이 바닥공동체에 와서 활동하는 게 중단되었다고 했다. 그러면 바닥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고 투신하는 사제가 없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걱정하였다. 현재 중남미 주교들은 바닥공동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재 한국 주교님들 가운데 소공동체 필요성을 절감하는 분은 아주 적다. 교구장이 절감하더라도 사제나 수도자, 신자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소공동체에서 주교님들의 비전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김정용 신부는 <경향잡지> 2009년 1월호에 “소공동체, 멈출 수 없는 교회의 길”이란 글을 실었다. 마린스 신부의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에 참석한 뒤 그 체험과 성찰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이 글에서 김 신부는 “한국 교회 안에서 소공동체의 의미와 희망”을 네 가지로 정리했는데, ‘(1) 가난한 이들,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교회, (2) 함께 참여하고 친교를 나누는 교회, (3) 소공동체의 토착화, (4) 소공동체의 정신(지향)과 사목 실천의 일치’이다. 내 생각도 같다. 하지만 그 네 가지 모두가 한국 교회 안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마린스 신부의 충고를 듣고 싶었다.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닌 원론 수준 얘기지만 인터뷰에서 그나마 건진 게 하나 있다. 마린스 신부는 한국 교회에 와서 교재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마린스 신부는 한국에는 한국에 맞는 소공동체가 생겨나야 하고, 소공동체마다 모인 사람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니 서로 다른 소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는 마린스 신부의 이 말을 룸코사목연구소 개발 교재를 번역 또는 번안해 모든 소공동체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아시아 교회, 특히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하였다. 수입 소공동체 교재를 집어던질 때 한국 교회에서 소공동체가 비로소 제 자리를 잡기 시작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한국 교회가 교재를 못 버리는 이유는 ‘빨리’ ‘한꺼번에’ 소공동체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여러 교구, 특히 서울교구 통합사목연구소와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가 앞을 다투어 여러 교재를 만들어 팔고 있는 걸 걱정한다. 이 같은 일은 그들 연구소 재정에는 큰 도움이 될지 몰라도 소공동체에는 도움 되지 않는다.

지금 소공동체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교재 발간이나 복음나누기 방법 개발이 아니라 공동 실천이다. 소공동체 자신이 아니라 교회 안팎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섬기기 위한 공동 실천이다. 복음나누기 7단계에서 공동 실천을 의논해서 정하는 제6단계(만 제대로 하더라도 많은 소공동체가 변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박영대/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지금여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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