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정치 참여에 대하여-3

자, 이제 가톨릭사회교리 중 ‘교회와 정치’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씀드려 봅니다. 우리는 매일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이지요. 주님의 기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구절은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버지의 나라이고, 아버지의 나라에서 아버지의 이름은 거룩히 빛나시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다른 말로 하면 뭘까요? 하느님의 국가, 하느님의 다스리심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고백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가족 또는 아버지의 공동체가 오소서’ 이렇게 기도해도 될 텐데 예수님께서는 왜 굳이 로마 제국의 식민 치하에서 대단히 민감한 단어였던 ‘나라’라는 단어를 사용하실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완전히 다스리심’을 말씀하고 계시고, ‘하느님의 정치’를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께서 정치(政治; 정사 정, 다스릴 치)하시는 나라’입니다. 두 가지 의미의 정치 중 첫 번째 의미에서의 정치입니다. 곧 ‘이 세상의 참된 통치자이신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한상봉 기자

예수님의 일생의 목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었고, 하느님 나라가 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에 왔고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 1,15)고 선포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라고 말씀하셨지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어 이 세상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 나라 안에 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믿고 복음을 기준으로 살아갈 때에.

그런데 하느님 나라와 세상의 정치가 충돌할 때가 있어요. 그런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순교자들은 어떻게 하셨나요? 나라의 법이 천주교를 금하니까 배교하셨나요? 아니죠. 국법을 어기면서까지 하느님을 믿고 섬기셨죠. “지금 이러한 통치는 잘못되었다. 양반도 천민도 없다. 우리는 한 아버지를 모시는 형제·자매다. 우리는 하느님을 참 임금으로 섬긴다.” 순교하시면서 고백하신 믿음이 그것이죠. 나라에서 하지 말라고 해서 그만두면, 그게 배교죠. ‘나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다’하고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거죠.

어떤 분들은 천주교회가 너무 시끌시끌하니까 성당 안 다니겠다고 공언을 하시는데, 그건 배교하시겠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성당에 나오고는 싶은데 사정상 못나오는 냉담하고는 다른 거예요. 남들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거죠.

200년 전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평화롭게 들어와서 열렬히 환영받았나요? 아니지요. 천주교 믿으면 잡아가서 때리고 고문하고 죽이고 그랬습니다. 목을 잘라서 성문 앞에 걸어 놓기도 했어요. 그런데도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주위에서 ‘성당은 요즘 왜 그래? 자네도 성당 다녀? 자네도 그쪽이야?’ 이런 얘기 듣기 싫어서 성당 다닐까 말까 고민하신다면, 앞으로 ‘순교자 믿음’ 노래 부르지 말아야죠. ‘순교자 믿음~ 본받아~ 끝까지 충성하리라’ 이 성가 부르지 말아야죠. ‘배교자 믿음~ 본받아~ 여차하면 냉담하리라’ 이렇게 불러야죠.

교회를 상대로 협박하는 거 아닙니다. ‘앞으로 천주교회가 이런 식으로 나가면 나 성당 안 다니겠다’고 협박하는 거 아닙니다. 그건 성령의 이끄심이 아니라 마귀의 유혹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나를 하느님으로부터 떼어 놓게 만드는 게 마귀의 목표입니다.

마태오 복음 13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죠.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3절). 그러시면서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지고, 어떤 것들은 돌밭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에, 또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졌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말씀을 직접 풀이해 주세요.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20-21절). 우리 영혼이 이런 돌밭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 말씀이 우리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뿌리 박혀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뿌리 박혀 있는 것이 하느님 말씀이 아니라 정치인들이 만들어 낸 말이라면, 내 마음 밭은 돌밭인 겁니다.

김유정 신부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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