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대한민국이 마주한 것은 ‘대한민국의 안부’를 묻는 40대 초반의 한 남성의 죽음이었다. 이남종 씨는 2013년 마지막 날 서울역 앞 고가도로에서 ‘박근혜 대통령 사퇴’와 ‘특검 실시’를 외치며 분신했고, 새해인 이튿날 오전 7시 55분쯤 숨졌다. 그가 남긴 17줄짜리 메모에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부도 묻기 힘든 상황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평소 시를 좋아했다는 이남종 씨의 삶은 ‘안녕하지 못했던 생애’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는 교사였다. 본인은 조선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학사장교로 임관해 대위로 전역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로 택시 운전을 했으나 교통사고로 공부마저 포기해야 했다. 그 후 생계를 위해 퀵서비스를 한 적도 있었고, 최근에는 편의점에서 매니저로 일했다.

문득 전태일의 얼굴이 겹치는 것은 ‘분신’이라는 현상의 동일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전태일처럼 이남종 씨는 어려서부터 일기를 써왔고, 시를 써왔다는 사실이 더 가슴을 아프게 하는 죽음이다. 그는 파란 많았던 개인사를 넘어서 자신의 목숨을 ‘민주주의’를 위해 봉헌했다. 죽어가는 그가 오히려 우리에게 “국민들은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계시다. 모든 두려움은 내가 다 안고 가겠다. 국민들이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나 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부끄러운 새해다.

문득 혁명시인이었던 임화의 ‘네거리의 순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네가 지금 간다면, 어디를 간단 말이냐?
그러면 내 사랑하는 젊은 동무,
너, 내 사랑하는 오직 하나뿐인 누이동생 순이,
너의 사랑하는 그 귀중한 사내,
근로하는 모든 여자의 연인…….
그 청년인 용감한 사내가 어디서 온단 말이냐?

눈바람 찬 불쌍한 도시 종로 복판에 순이야!
너와 나는 지나간 꽃피는 봄에 사랑하는 한 어머니를
눈물 나는 가난 속에서 여의었지!
그리하여 너는 이 믿지 못할 얼굴 하얀 오빠를 염려하고,
오빠는 가냘픈 너를 근심하는,
서글프고 가난한 그날 속에서도,
순이야, 너는 마음을 맡길 믿음성 있는 이곳 청년을 가졌었고,
내 사랑하는 동무는…….
청년의 연인 근로하는 여자 너를 가졌었다.

겨울날 찬 눈보라가 유리창에 우는 아픈 그 시절,
기계 소리에 말려 흩어지는 우리들의 참새 너희들의 콧노래와
언 눈길을 걷는 발자국 소리와 더불어 가슴 속으로 스며드는
청년과 너의 따뜻한 귓속 다정한 웃음으로
우리들의 청춘은 참말로 꽃다웠고,
언 밥이 주림보다도 쓰리게
가난한 청춘을 울리는 날,
어머니가 되어 우리를 따뜻한 품속에 안아 주던 것은
오직 하나 거리에서 만나 거리에서 헤어지며,
골목 뒤에서 중얼대고 일터에서 충성되던
꺼질 줄 모르는 청춘의 정열 그것이었다.
비할 데 없는 괴로움 가운데서도
얼마나 큰 즐거움이 우리의 머리 위에 빛났더냐?

(임화의 ‘네거리의 순이’ 일부, <조선지광> 1929년 1월호)

대한민국은 시방 “눈바람 찬 불쌍한 도시”다. 이 도시에서 “언 밥이 주림보다도 쓰리게 가난한 청춘을 울리는 날” 그를 품어줄 얼굴이 없었단 말인가, 안쓰럽다. 1월 1일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형제애’를 간절히 호소했다. ‘무관심의 세계화’가 이루어진 세상에서 ‘이웃은 있어도 형제는 없는’ 세상을 눈물겹게 안타까워하고 있는 교황의 눈시울이 뜨겁게 느껴진다.

▲ 지난 12월 28일,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로 ‘민주주의’라는 글자를 만들고 있다. ⓒ한상봉 기자

새해에는 정말 이런 죽음 더 이상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 희망해도 좋은 것일까? 묻고 싶다.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고, <한겨레> 논설위원인 정영무는 ‘들리는가, 만석보 허무는 소리가’라는 칼럼을 썼다. “1894년 1월10일 새벽 전봉준은 배들평야에서 죽창으로 무장한 1000여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고부 관아로 쳐들어간다. 멀쩡한 보가 있는데도 새로 만석보를 높이 쌓아 물세를 뜯어내던 군수 조병갑을 처단하고자 했으나 조병갑은 도망을 갔다. 농민군은 감옥의 죄수를 풀어주고 무기고를 털어 무장을 한 뒤 자신들의 강제노역으로 쌓은 탐욕의 만석보를 허물었다.”

당시 동학도가 인구의 10퍼센트를 넘는 300만 명에 이르렀다니 놀랄 만하다. “사람이 하늘이고 밥이 하늘”이라던 동학의 기운을 다시 새겨보아야 하겠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비워 밥으로 세상에 내어놓으셨다. 그 밥이 곧 예수이기에, 천주교회에서는 미사 때마다 신자들이 그분을 ‘거룩한 밥’(성체)으로 먹고, 그분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밥으로 내어줄 마음을 먹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분은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자로 거듭나기를 요청했다. 세상의 가장 눈물 많은 동네에 들어가, 가련한 인생들을 돌보며, 상처 입은 영혼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를 소망했다.

새해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시국미사가 봉헌될 모양이다. 평등한 세상을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내 시간과 마음을 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모양이다. 갑오년, 세상의 안부를 묻고 죽어간 분을 생각하며 삼가 애도를 드린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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