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어바웃타임>, 리차드 커티스 감독, 상영중

이상한 일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영화를 보러 들어가던 두어 시간 전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뭐 영화 한 편 보았다고 인생이 달라지기까지야 하겠냐마는 좀 과장하자면 그랬다.

어린 시절 첫영성체 날 ‘나는 달라졌다’고 혼자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의기양양하게 성당을 나서던 느낌, 견진을 받던 미사 후에 올려다 본 하늘이 왠지 더 높아보이던, 그런 기분.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해도 내 속에선 뭔가 중요한 게 변한 느낌, 그런 상념들에 푹 잠겼다 나온 것 같은 상쾌함이 좋았다. 신기했다.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영화 <어바웃타임(About time, 2013)>은 따뜻하다. <노팅힐>과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각본을 썼고 <러브 액츄얼리>를 직접 감독한 전력을 믿어도 좋다. 기대 이상의 잔잔한 재미와 시간여행을 바라보는 신선한 접근이 있다.

그녀들에 대해 모른다. 다만 사랑한다

남자의 인생에는, 아버지가 참으로 중요하다. 이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새삼 성찰하게 한다. 스물한 살이 되었을 때 집안의 놀라운 비밀을 듣게 된 팀(돔놀 글리슨 분)은, 이 집안 아들들에게만 전수되는 시간 여행 유전자의 위력을 깨닫는 부러운 능력자다. 여자들에게 인기 없었던 팀은 이 능력을 오직 사랑을 위해 쓰기로 한다. 이 능력을 아버지(빌 나이 분)는 책을 읽는 데 주로 썼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 중에는 돈을 버는 데 썼던 분도 있다.

팀에게는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무엇을 하셨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는 자신의 모든 시간과 기회를 다해 꼭 사랑하는 사람을 얻고 싶었다. 그리고 온갖 우여곡절 끝에 메리(레이첼 맥아담스 분)의 사랑을 얻게 된다. 수없는 시행착오와 어긋남과 ‘나비효과’와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지는 사랑이다.

결혼을 앞둔 아들에게 아버지는 딱 한 마디만 하신다. ‘따뜻한 사람’과 결혼하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라는 당부다. 다행히 아버지도 아들도 따뜻한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그 ‘따뜻한 사람’, 아니 따뜻한 여인이 어떻게 해서 지금의 그녀가 되어 있는지는 모른다. 딸이, 여동생이, 아내가, 어머니가, 어떻게 자라 어떻게 어른으로 성장했는지에 대해 남자는, 아는 게 없다.

그래서 때로는 수수방관처럼 보이고 때로는 무력하다. 그저 곁에서 지켜볼 뿐이다. 다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영화 <어바웃타임>은 솔직하다. 남자인 감독은 남자의 성장기를 정말 진지하게 다루었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는 건 그저 불가사의한 행운 혹은 기적이다. 그녀들이 왜 그들의 곁에 있기로 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들의 존재에 감사할 뿐이다.

 

이 모든 날들이 단 한 번뿐인 시간여행인 것을

모든 시간여행의 목적은 ‘돌아옴’에 있다. 돌아오지 못한다면 여행이 아니다. 실종이다. 만일 시간여행 속에서 ‘미아’가 될 수도 있다는 전제가 달린다면, 시간여행 이야기의 판타지 대부분은 빛을 잃고 말지 모른다. 혹여 못 돌아오게 될까봐 염려하는 이야기라면, 흥미는 곧 불안으로 바뀔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로 즐기는 시간여행 패턴에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전제가 이미 깔려 있다. 이 전제 없이, 처음에 출발한 곳으로 무사히 되돌아온다는 전제를 깔지 않고도 과연 그 많은 시간여행 이야기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싶다.

어쩌면 팀이 일찌감치 깨달은 것처럼, 이대로 모든 것이 좋다면 시간여행은 거듭되지 않을지 모른다. 주인공 팀은 이제껏 수많은 시간여행자들이 이루지 못했던 것을 해냈다. 갈 수 있으되 가지 않는, 현실과 시간여행을 통합시키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이 영화 속에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이 등장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들이 계속 마음속에 돌아다니는 기분이다. 그렇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 따뜻한 사람이고 싶다. 방법은 모르겠다. 다만 그저 주어진 시간을 살아갈 뿐.

선현들은 ‘시간’에 대해 ‘사랑’에 대해 ‘사람답게 살기’에 대해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남기셨다. <어바웃타임>을 보고 나서 몇 가지 더 추가한다. “하루를 두 번 살아보기”, 아버지의 아버지들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갔다는 팀의 나지막한 깨달음처럼 “오늘이 내 특별한 삶의 마지막 날인 듯이 매일 매일을 열심히 살기.” 아무래도 다른 방법은 없는 듯하다. 그래서 좋다.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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