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성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 부지부장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정부로부터 ‘법외 노조’ 통보를 받고 연일 종편 등 보수언론이 교실을 ‘빨갛게’ 물들이는 원흉으로 집중 공격을 가하는 노동조합의 간부라고 하기엔 너무 해맑은 모습이었다. 때 이른 추위가 찾아왔던 지난달 10일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 서울광장에서 임성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 부지부장을 만났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9월 23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을 근거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해직 교사 9명을 조합에서 배제하라는 시정요구를 통보하자, 많은 이들은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전교조에게 가해진 정부와 보수세력의 집중적인 이념 공세가 예고편이었다면, 박근혜 정부의 이번 법외 노조 통보는 본 드라마가 드디어 방영된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본 드라마의 주인공은 보수세력이 아닌 전교조 교사들이었다. 10월 16일부터 사흘간 전교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된 투표에서 조합원들은 68.59% 대 28.09%의 압도적인 표차로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9명의 해고된 동료들을 내치고 합법 노조의 길을 걷는 ‘실리’ 대신에 ‘굴종의 삶을 떨쳐 반교육의 벽을 부수는’ 길을 올곧이 가겠다고 선언한 그들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오랜만에 맛보는 감동과 희망을 안겨줬다.

▲ 임성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 부지부장 ⓒ한수진 기자

“전교조 내에서 가장 약자인 동료 9명을 내칠 것인가라는 인간적인 물음 앞에서 다수가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기로 선택한 거죠. 솔직히 찬성과 반대가 잘해야 5.5 대 4.5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찬성과 반대의 차이가 2배를 훨씬 넘었던 거예요.”

합법화 이후 10여 년이 지나면서 최근 몇 년 사이 진보세력에게까지 ‘초심을 잃었다’는 비판을 수없이 들어온 전교조였다. 투표 결과는 조합원들 자신에게도 놀라운 사건이었다. 임 부지부장은 “전교조가 자신의 색깔을 잃어가고 있을 때, 각성하고 쇄신할 기회를 줘서 박근혜 정부에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며 웃었다.

전교조가 결성되기 전부터 교사운동에 뛰어들었던 그에게 전교조의 초심이란 교사로서 그 자신의 초심과도 같다. 사실 그는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교사를 좋은 직업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선생이 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던” 그가 교직을 택한 것은 순전히 가난한 집안 형편에 대학을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하사관교육제도를 통해 정부에서 장학금을 받아 교대에 다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교대에 들어가고 보니, 선생이라는 직업은 말하기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그의 성격에 딱 맞아떨어졌다. 자연스레 아이들을 가르치는 재미도 쏠쏠해졌다. 그는 학교 도서관에서 읽은 이오덕 선생의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와 <삶과 믿음의 교실> 등의 책을 읽으며 교사로서의 자아를 만들어 나갔다.

“교사운동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된 것도 이오덕 선생님 때문이었어요. 한 선배가 저보고 이오덕 선생님을 만나러 가자고 하기에 따라간 곳이 천주교 안동교구의 마리스타 학생회관이었어요. 거기서 전국초등교육자협의회가 결성된 거죠. 난생 처음 서울 구경을 한 것도 1988년에 전국초등교육자협의회 회의 참석이었는데, 대구 · 경북을 통틀어서 참석자가 2명뿐이었어요. 그래서 덜컥 제가 대구 대표가 됐죠.”

임 부지부장이 서울에 다녀와 학교에 출근하자마자 교육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렇게 그는 교사 2년차에 요주의 감시 대상이 됐다. 이듬해 5월 28일 전교조가 출범하고 그 역시 1500여 명의 해직 대상에 포함됐다.

“그 당시에도 법외 노조로 갈 것인가를 두고 엄청난 논쟁이 벌어졌어요. 이번과 똑같은 상황이었던 건데, 그때도 법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가치를 지키기로 선택했던 거죠.”

해직은 두렵지 않았지만, 현실의 걸림돌은 군대였다. 하사관교육제도로 교대에 들어가면, 졸업 후 7년간 교사로 의무복무를 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7년을 채우기 전에 해직되거나 그만두면, 대학 4년간 받은 장학금을 반납하고 군대에 가야 했다. 군대에 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동료들의 의견에 따라 임 부지부장은 교육청이 연 징계위원회에서 전교조 탈퇴 의사를 밝히고 교사로 “살아남았다.”

“곧바로 여름방학이 돼서 고향 청송에 내려갔는데, 감옥에 가고 해직된 동료 교사들을 생각하니 방 안에서 잠을 못 자겠는 거예요. 그래서 매일 마당 평상에서 잠을 잤어요. 청송은 8월 중순만 돼도 덜덜 떨릴 정도로 춥거든요. 어머님이 ‘그러다 죽느니 차라리 해직되고 살아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다시 전교조 활동을 시작했어요.”

1991년 9월, 전교조 활동을 계속한다는 이유로 해직된 임 부지부장은 1992년 12월에 재판에서 해고 무효 판결을 받을 때까지 “학교에서 애들 소리만 나도 눈물이 난다”는 해직 시절을 보냈다. 동교 교사들보다 해직 기간은 짧았지만, 그 사이에도 그는 ‘참교육 여름학교’, ‘역사 기행’ 등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발산했다.

“한번은 서울 북부경찰서에 연행됐다가 경찰서장한테 짬뽕을 대접받은 적이 있어요. 같이 연행된 교사 중에 서장 아들의 담임이 있었는데, 아들이 전화를 걸어와서 ‘우리 선생님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하더라고요. 또 한 번은, 저를 해직시키려고 학교에서 학부모회를 동원한 적도 있었죠. ‘임성무 선생은 빨갱이니까 내쫓아야 된다’고 여론을 몰아가는데, 저희 반 학부모가 회의에 나가서 ‘느그가 우리 쌤한테 아 맡겨 봤나’면서 저를 지지해준 거예요. 그 덕분에 해직 논의는 유야무야됐죠.

이런 경험을 통해서 제가 절실하게 느낀 건, 우리가 아이들과 학부모의 지지만 얻고 있다면 아무리 정부가 탄압하고 학교 밖으로 내몰더라도 우리의 참교육운동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의 뿌리와 버팀목은 결국 아이들과 학부모들이라는 거죠.”

▲ 11월 13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서울 영등포구 전교조 사무실에서 열린 법외 노조 효력정지 신청 결정에 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서울행정법원은 전교조가 제출한 법외 노조 통보 효력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 고용노동부는 이에 불복해 항고한 상태다. 한편, 10월 2일 헌법재판소에서 ‘전교조 법외 노조 통보’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소원이 정식 심판에 회부됐으며, 1심에 대한 본안 변론기일이 오는 12월 17일로 지정됐다. ⓒ민중의소리

임 부지부장은 최근 들어 동료 조합원들에게서 그런 깨달음이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느끼고 있다. 그전에는 조합원들이 집회 장소인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타자마자 팔짱을 끼고 잠을 자기 바빴는데, 이제는 전교조가 처한 상황부터 학교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잘 틈이 없어졌단다. 더 반가운 변화는 조합원들이 스스로 자기 고백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참교육을 사수하자’는 구호를 외치면서 ‘우리가 그동안 뭘 했는가’ 하는 반성을 뼈저리게 하고 있어요. 우리가 그동안 정말로 참교육을 실천했었는가. 아이들은 계속 죽어 가는데, 그동안 우리가 뭘 했지. 학교에서 하자는 대로 보충수업 다 하고, 보충수업비 받아서 월급이 늘고……. 그동안 서로 상처 줄까봐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고백하기 시작했어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인터뷰 시간이 두 시간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그만큼 임 부지부장이 풀어놓는 앞으로의 계획과 바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애착을 보인 일은 전교조 내에 천주교 교사들의 모임을 꾸리는 일이었다. 수년째 그가 전교조만큼이나 열성을 다해 활동하고 있는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교육분과장다운 고민이다. 임 부지부장은 “모여서 교사의 기도 정도만 하고 헤어지는 게 아니라, 신앙 안에서 참교육을 고민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교회가 교육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맡고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학교 교육의 틀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요. 학교가 그래야하듯이, 교회의 교육도 아이들을 살리는 교육으로 가야 해요. 신앙을 가진 전교조 교사들이 교회의 교육에도 관심을 가진다면, 더 많은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고 빛이 되는 교회를 만드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바로잡습니다>

보도 내용 중 “대구 북부경찰서”를 “서울 북부경찰서”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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