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태의 추적! 공자(追跡! 孔子) - 20]

정명(正名)이라는 말은 논어에 단 한번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단 한번 나오는 이 말로 인하여 정명론(正名論)이라는 말도 생기고 정명사상(正名思想)이라는 말도 생겼다. 전국시대에는 명가(名家)라는 학파도 있었는데, 기록된 바는 없지만 역시 공자의 이 말에서 비롯된 학파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중용(中庸)이라는 말도, 성(性)이라는 말도, 어짊[仁]이라는 말도 나중에는 감히 범접하기조차 어려운 어마어마한 사상 체계로 커져갔지만 논어에 그 말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의 모습은 매우 소박했다. 정명도 마찬가지로 그 첫 모습은 소박하기 짝이 없었다.

자로가 말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하면 선생님께서는 장차 무엇부터 하시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반드시 명칭을 바로잡겠다.”
자로가 말했다.
“그런 것도 있습니까? 선생님께서는 너무 우회적이십니다. 그것을 바로잡아 뭣 하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조야하구나, 유(由)는! 군자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워 두어야 하는 것이다. 명칭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조리가 없어지고 말이 조리가 없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며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며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적절해지지 못하며 형벌이 적절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데가 없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무언가를 명명(命名)하면 반드시 말할 수 있게 되고 말하면 반드시 행할 수 있게 되니 군자는 그 말에 있어서 구차함이 없을 따름이다.”
子路曰; 衛君待子而爲政, 子將奚先? 子曰; 必也正名乎! 子路曰; 有是哉? 子之迂也. 奚其正? 子曰; 野哉! 由也. 君子於其所不知, 蓋闕如也. 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 事不成則禮樂不興, 禮樂不興則刑罰不中, 刑罰不中則民無所錯手足. 故君子名之必可言也, 言之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而已矣. 13/3

정명이란 말뜻은 어렵지 않다. 명칭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명칭은 우리의 언어생활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개념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사전에 등장하는 모든 어휘라고까지 할 것은 없지만 그 안에 삶의 중요한 범주, 가치, 이념 등을 담고 있는 어휘가 명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한다. 그것은 적게 잡아도 수백 가지, 많게 잡으면 수천 가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논어를 처음 읽고 정신없이 빠져들고 있을 때가 8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 신군부가 임자 없이 나뒹굴고 있는 권력을 무력으로 꿰차고 위세를 부리고 있을 때였기 때문일까? 이 정명 구절과 관련하여 나의 뇌리를 지배하던 말은 다름 아닌 저 민주정의당(民主正義黨)이라는 당명이었다. 도대체 민주주의를 여지없이 짓밟고 불의를 내놓고 자행하던, 정당 이전의 패거리들이 민주-정의-당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는 것이 마치 이 논어 자로편 제3장에 대한, 미리 정해진 시대적 예시(例示)나 되는 것처럼 느껴지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러니 정명을 둘러싸고 구태여 그 개념이 무엇이냐 하는 논란을 벌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주자가 이 구절을 두고 위나라 임금 영공(靈公)의 지위가 아들인 괴외(蒯聵)에게 가지 않고 손자인 첩(輒)에게로 돌아간 것 때문에 나온 말처럼 주석을 단 것은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것에 불과하다.

오늘날 우리가 명실상부(名實相符)라고 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공자는 말이 실제와 부합하기를 바랐던 것이라 생각한다. 말이 그럴듯하기만 할 뿐 실제와 부합하지 않을 때 말을 실제 쪽으로 끌고 가든 실제를 말 쪽으로 끌고 오든 명실의 자리를 일치시키는 것이 바로 정명이었다.

한때 우리는 보수파가 정권을 잡고 나서 그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던 말 한 가지를 들어야 했다. 좌파라는 말이 그것이었다. 지금은 무덤덤해진 우파의 반대말일 뿐이다. 그러나 5년 전 그 말이 처음 출현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 말은 매우 으스스한 말이었다. 옛날에는 좌익이라고 불렀다. 좌익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주홍 글씨였다. 그 소리만 들어도 오금이 저렸고 주변을 불안하게 살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좌익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단죄 같아서 그랬는지 그나마 한 단계 낮춰서 부른 것이 좌파였다. 그래도 으스스하기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는 모조리 좌파의 딱지가 붙었다.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좌파는 길바닥의 회색 자동차만큼이나 흔해졌다. 그러자 이젠 더 이상 좌파라는 말을 들어도 경기를 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게 되었다. 남용되어 정착된 좌파라는 말에서 지난날 역사의 잔재가 거의 다 씻겨 내려가고 만 것이다.

다시 사람들을 으스스하게 만들 새 말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종북이었다. 그 말도 사람들을 얼마간 으스스하게 만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말도 역시 남용되기 시작했다. 사실 좌파보다 종북은 개념의 폭이 더 좁은 말이었지만 급한대로 여기저기에 편리한 대로 갖다 붙였다. 결국 종북도 말의 예각이 빠르게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만약 그런 것이 종북이라면 나도 기꺼이 종북이다” 하는 사람들마저 나오게 되었다. 이제 종북도 점점 유효기간이 다 되어 가고 있다. 보수정권을 안일하게 유지하려는 사람들은 이제 또 무엇으로 약발을 유지해야 할 지 새로운 고민에 빠져들고 있다. 물론 정명 문제를 둘러싼 하나의 예시다.

말은 실제보다 느리게 형성된다. 말이 모습을 갖추고 등장할 때에 실제는 이미 빠져나가고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공자는 교언영색, 즉 교묘한 말과 그럴듯한 외양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당시는 말이 의사전달의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요즈음처럼 글이 말과 더불어 의사전달의 수단을 반분하고 있는 세상이라면 공자는 교언영색만이 아니라 저 미사여구를 반드시 함께 언급했을 것이다.

신문을 펼치면 정치인들의 남용된 발언들이 질펀하다. 정말 공자가 아니라 나 같이 평범한 사람도 정명에 대한 생각을 아니할 수 없도록 만든다. 정의와 민주, 애국, 국민통합 등등 거창한 말을 누구나 쏟아내고 있지만 국민은 누가 진짜고 가짜인지를 분간하기 어렵다. 그야말로 손발 둘 데가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발 너무 뻔한 거짓말, 허장성세, 말뿐인 말, 한 꺼풀만 벗겨보면 그 속에 아무 것도 없는 빈 말, 권력을 유지하려는 탐욕 밖에 없는 말을 듣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거짓된 단견들이 그런 사이비 명(名)들을 쏟아낼 때, 그렇지 않아도 어리석은 국민들은 점점 더 우민화의 길로 빠져들 뿐이라는 사실에 오늘도 생각 있는 사람들은 마음의 상처가 더친다.
 

 
이수태
연세대학교 법학과 졸업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32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평생의 관심은 철학과 종교학이었다. 그 동안 낸 책으로는 <새번역 논어>와 <논어의 발견> 외에 에세이집 <어른 되기의 어려움>,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등이 있다. 제5회 객석 예술평론상, 제1회 시대의 에세이스트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퇴직 후 현재는 강의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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