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오늘을 말한다 - 22]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너무 많다. 예수님 앞에서 먹고 마시며 잔치를 벌이는 사람도 너무 많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워 예수님에 대한 전문가라고 자랑하는 사람도 너무 많다. 너무 많아서 탈이 날 지경이다. 그렇게 많은 예수님의 사람들, 곧 그리스도인이 있으니, 그래서 여기저기서 곳곳에 천국의 표지들이 있으니, 천국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정의와 사랑이 강물처럼 흘러넘치고, 자유와 평등이 온 땅을 적시고 있다고 한다. ‘지상의 천국’이라 할 만하다. 사방에서 우리에게 그렇게 믿으라고 강요한다. 텔레비전과 신문도 그렇게 말하고,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모든 분야의 지도자들도 점잖게 훈계한다. 지상의 천국에 살고 있으니 당연히 불평불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의심해서도 안 된다. 불평하고 불만을 품으며 의심하면 불경한 사람이 되고 만다. 이 땅에서 내쫓으라고 고함을 지른다.

이 같은 우리의 모습을 어떤 분은 ‘전도된 전체주의’라고 진단했다. 이를 그는 “지도자를 정점으로 하여 기업-관료-군-대형 교회-보수 언론으로 이루어진 카르텔”이라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그는 “모두가 알아서 긴다. 관료는 복지부동하고, 언론은 내부 검열 시스템을 작동하며, 누리꾼은 비판적 댓글을 삼가고, 지식인들은 승진과 업적, 프로젝트 사냥에만 몰두하고, 신자유주의의 빈곤과 공포에 주눅이 든 국민은 비판의식과 저항의지를 상실하고 반역의 상상마저 억압한 채 침묵하거나 자발적으로 마녀사냥에 나선다”고 덧붙인다.

앞에서 말하는 ‘전도된 전체주의’에서의 ‘카르텔’을 교회는 “사적 이익이나 이념적 목적을 위하여 국가 체제를 점령하고 형성된 폐쇄된 지배집단”이라고 밝히면서, 그 같은 “폐쇄된 지배집단을 형성하는 것을 도와주면 안 된다”(간추린 사회교리 406항)고 가르친다. 그런데 앞에서 인용한 비판이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면, ‘대형 교회’는 이 ‘폐쇄된 지배집단’ 형성을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형성하는 한 축이 되고 있다.

설마 그러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 땅의 그리스도교 교회의 모습이 “비판의식과 저항의지를 상실하고 … 침묵하거나 자발적으로 마녀사냥에 나선다”면, 다시 말해서 불의와 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종교’의 몫이 아니라며 ‘예언직’을 부정하고, 오히려 ‘비판과 저항’을 밝히는 이들을 교회에서 내쫓으라고 한다거나, 불의에 대한 침묵을 ‘사랑’으로 포장함으로써 불의를 키우거나, 노골적으로 하느님을 내세워 ‘마녀사냥’에 앞장선다면….

교회가 교회답다는 것이 무엇일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던 일을 계속하는 것’에서 교회다움을 찾았다. ‘가난과 박해’와 ‘비움과 버림’에서 교회의 참 모습을 찾았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이름’과 ‘아버지의 나라’와 ‘아버지의 뜻’으로 당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드러냈다.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과 그분의 나라와 그분의 뜻은 ‘가난과 박해’, 그리고 ‘비움과 버림’에서 드러난다. ‘인간적인 힘’과 ‘현세적 영광’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교회헌장 8항 참조).

거꾸로 이 땅에 정의와 사랑이 흘러넘치고, 자유와 평등이 온 땅을 적시고 있다면, 그래서 “고역에 짓눌려 신음하고 탄식하며 부르짖는”(탈출 2,23-25) 이스라엘의 처지가 남의 일 같다면, 설령 그런 일이 있더라도 극소수의 불행에 불과하다면, 교회는 교회다움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루카 13,26). “저희는 주님께서 누구신지 잘 압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루카 9,20) 하고.

그런데 만일 예수님께서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시면 어찌할 것인가. 게다가 “밖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게 되면 어찌할 것인가.
 

박동호 신부 (안드레아)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신정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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