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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평화가 오지 않을까[존댓말로 읽는 헌법 - 17]

슬아, 혹시 친구들과 다퉈본 적 있니? 심하게 싸워 본 적은?

오빠는 주먹다짐을 종종 하기도 했었는데. 지나고 나니 후회가 많이 되더라.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했던 점이 부끄럽고. 그래서 감정적으로 아무리 격해져도 절대 주먹을 쓰지 말고, 욕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살게 되었어.

슬아, 학교에서 역사 수업을 받지? 국사나 세계사 말이야.

역사 공부를 하다 보면,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창씨개명을 하게 되고, 태평양 전쟁 때에는 조선인들이 일제의 군대로 징병이 되고, 일본군 성노예인 '위안부'로 끌려가기도 했던 것들을 배우게 돼. 많은 일본 교과서들에서는 생략되거나 왜곡된 내용들이지.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많은 경우에는 이것을 '힘이 없었던 부끄러운 역사'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 같아.

그런데 슬아, 정말 그럴까?

근대 제국주의 시대에도, 수 천 년 동안 문명을 교류하면서 지내온 바로 옆 나라를 침공해서 식민지로 만든 경우는 전 세계의 '식민지' 역사 가운데에도 아주 독특한 경우였단다. 더욱이 그것이 식민 본국보다 문화적 선진국이었던 경우는 조선 외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아.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제국주의야말로 제국주의 국가들 가운데에서도 특이했던 것 아닐까? 일본 근대의 선각자로 불리는 후쿠자와 유키치는 1893년 <시사신보>에 '조선인민을 위해 조선의 멸망을 하(賀)하다'라는 글을 써서 조선을 야만국으로 폄하하고 조선침략의 명분을 만들지. 일제는 백인종이 아닌 황인종으로서 서구열강의 대열에 대등하게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탈아시아'를 주장하면서 조선과 중국, 동남아시아를 침략하고 이후에는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는 세계사적으로 유일한 길을 걸어.

슬아, 정말로 '부끄러운' 과거 역사를 반성해야 할 나라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 아닐까? 제국주의 시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인종 전시'가 유행이었어. 예컨대 프랑스 파리에서는 남아프리카 여성 원주민을 데려다가 '원숭이와 인간의 중간 단계'라면서 전시를 하기도 해. 비슷한 맥락으로, 1903년에 오사카에서, 1907년 도쿄에서, 조선인, 중국인, 타이완인 등 여러 인종들이 '전시'되기도 한단다. 치욕스러운 일이지. 하지만 이것을 가지고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인종 전시를 당했던 나라 사람들의 후예일까? 인종 전시를 할 정도로 무식하고 예의 없었던 나라 사람들의 후예일까?

도쿄 전범 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판명된 사람이 불과 10년 뒤에 수상이 된 일본이야말로 제국주의 시대의 역사와 그것을 청산하지 못한 현대사에 대해 정말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태평양 전쟁과 중국 침략에 막중한 책임이 있었던 일본 천황 히로히토에 대해서, '국체호지'(국체를 지켜야 한다는 뜻인데, 여기서 국체란 천황제도를 말해)라며 맥아더를 설득하고 전범재판에서 그를 결국 불기소시키면서 천황제를 유지한 현대 일본이야말로 한국과 중국, 동남아시아 많은 국가들에 진정으로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1940년대 일본 민중의 극도로 피폐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전쟁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일본 국민 앞에 어떤 사죄를 했을까? 전후 일본과 일본제국주의 당시의 일본은 헌법상 전혀 다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제국주의가 제정 러시아와 전쟁하던 당시 망루를 설치하면서 시마네 현으로 편입한 독도에 대해서 현대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일까? 오늘날 일본의 가장 큰 수치는, '일본 제국주의는 부끄러운 것이었다'라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다는 점 아닐까?

슬아, 학교에서도 친구를 때리고, 다른 사람을 해코지해 놓고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 아니니? 더욱이 우리 역사에서는 일제 식민지에서 비롯된󰡐분단'이라는 아픔이 있잖아. 전쟁을 일으킨 것도 일본이고, 남의 나라를 식민지로 만든 것도 일본인데, 왜 전쟁 후에 식민지였던 조선이 분단되어야 했던 걸까? 그리고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에서 대리전의 양상으로 진행된 6.25 전쟁 때문에 우리 부모님과 할아버지 세대는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야 했니. 더욱이 그 전쟁으로 옆 나라 일본은 군수 기지로서 경제적으로 '부활'하게 되잖아.

하지만 오히려, '상처 받은' 대한민국은, 남의 상처를 어루만지기 보다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서 그 곳 사람들에게 큰 아픔을 주기도 했어. 한국 전쟁 특수로 일본 경제가 성장한 만큼은 아닐지라도, 베트남 전쟁 참전으로 한국 경제 성장의 기반이 다져진 것은 맞겠지. 이 점에 대해서도 슬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 같아. 식민지 아픔을 가진 민족의 후예라면, 다른 사람과 민족을 더욱 존중할 줄 알아야 할 테니.

슬아, 많은 사람들의 한과 피로 얼룩진 근현대사의 역사적인 경험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평화'의 가치가 아주 중요하고, 헌법 전문에서도󰡐항구적인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한다고 하여 '국제평화주의'를 명시하고 있단다. 그리고,

헌법 제5조
제1항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합니다.
제2항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됩니다.

에도 보이는 것처럼 헌법 조문으로 국제평화의 유지와 침략전쟁 부인을 명시하고 있어. 더욱이 우리나라에는 한 가지의 과제가 더 있지.

헌법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합니다

슬아, 우리 윗세대 어른들께서는 위대한 일을 하셨단다. 특히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엄청난 노력으로 󰡐근대화’의 과제를 수행하고 달성했어. 그리고 이모 삼촌 세대는 피흘려 가면서 '민주화'를 달성했지. 지금 누나 형 세대가 당면한 과제는 바로 '경제 정의'라고 오빠는 생각해. 그렇다면 우리 세대가 당면하게 될 과제는 뭘까? 그것은 바로 '평화통일과 세계평화에의 기여' 아닐까? 8,90년대 출생 세대를 흔히들 '88만 원 세대'라고들 하지만, 오빠가 생각하기에는 결국 우리 세대를 부르는 말은󰡐평화 세대’가 될 것 같아. 세대 간 차등 분배의 문제로 인한 지금의 경제적으로 곤궁한 상황을 극복해 내면서, 평화를 일굴 세대.

하지만 '평화'의 문제가 이렇게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평화'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 오빠는 의문이야. 슬아, 넌 어떻게 생각하니?

2003년 4월 2일 국회가 이라크전쟁 파견동의안을 의결한 것에 반대하는 의미로 여러 대학교들에서 동맹휴학을 했었어. 대통령과 국회의 이라크 전쟁 파견 결정에 대해 분노한 많은 사람들은 언론 활동과 집회 등을 통해 적극적인 의사를 표출했고, 헌법소원도 제기했지.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일반 국민의 자기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각하 결정을 하거나, 통치행위를 이유로 사법심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이론을 도입하여 각하 결정을 했어.

“이라크전쟁이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침략전쟁인지 여부 등에 대한 판단은 대의기관인 대통령과 국회의 몫이고, 성질상 한정된 자료만을 가지고 있는 우리 재판소가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 사건 파견결정은 그 성격상 국방 및 외교에 관련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문제로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지켜 이루어진 것임이 명백하므로, 대통령과 국회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하고 우리 재판소가 사법적 기준만으로 이를 심판하는 것은 자제되어야 합니다”

슬아, 어떤 생각이 드니? 이라크 전쟁이 침략 전쟁인지는 잘 모르겠어도, 적어도 한국의 자위 전쟁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지? 헌법재판소도 많이 난감했던 것 같아. 이러한 입장을 ‘사법심사 자제론’이라고 하는데, 이라크 전쟁에 대한 판결 이외에는 지금까지는 헌법재판소는 이런 입장을 취한 적이 없거든.

평화를 깨뜨리는 것이 곧 전쟁이고, 전쟁을 위한 수단이 '군대'잖아. 슬아, 우리 사회는 평화보다는 '전쟁'과 더 가깝고, '군대'와 많이 친한 것 같지 않니? 분단국가라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과연 분단국가라서 어쩔 수 없기만 한 걸까?

우리 '평화 세대'로서 함께 고민해 보자. 평화 통일과 국제 평화에 기여하는 방법, 그리고 그 과정 속에 우리 각자의 삶이 더 평화로워질 가능성에 대해서.
 

   
 
차진태 (모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재학 중이며, 구속노동자후원회 자문위원, 대학원자치회 대표를 맡고 있다. 예수살이공동체에서 배동교육(청년교육)을 받은 회원이며, 서울대 가톨릭 기도 모임 ‘피아트(FIAT)’에도 참여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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