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청춘일기 - 배선영]

* 경고 : 이 글은 아름답고 훈훈한 가족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버지께.

아마도 아버지는 이 글을 보시지 못할 것입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라는 언론이 있다는 것을 모르시고, 딸이 여기에 글을 연재한다는 사실은 더더욱 모르시겠지요. 언론에 글을 연재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제법 중요한 일인데, 저는 왜 아버지께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까요?

아버지가 저에 대해 모르는 것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어떤 모임에 나가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전혀 알지 못하십니다. 제가 사는 방식이 아버지로부터 이해를 받을 것이라는 신뢰가 없었기 때문에 저를 드러내 보이지 않았던 탓이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종종 저에 대해 마치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십니다. 제가 다녀왔던 행사 팸플릿이나 제 방에 널려 있는 책, 잡지 등의 제목을 슬쩍 보시고는, 제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설명이 가능한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일까요? 한 번도 저의 의견이 어떤지, 제가 어떻게 느끼는지 물어보지 않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맛있다고 생각하는 메뉴를 가족들의 것까지 주문하시거나, 먹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제 몫까지 포함해 아이스크림을 사오는 경우도 있었지요. 이런 순간들의 불쾌함이 아버지와 함께하는 날들 동안 덕지덕지 쌓여서 참기 힘든 기분이 들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더욱 허탈한 것은 아버지가 스스로를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부모라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저와 동생의 선택에 반대를 하신 적이 없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 알지 못하십니다. 게다가 저와 동생은 부모님이 바라는 모습대로는 아닐지라도, 표면적으로 말썽을 피운 적이 없는 모범적인 아이들인걸요. 그러니 굳이 반대를 할 상황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추석, 할머니 댁에 가는 차안에서, 아버지가 ‘토론’이라고 불렀던 대선에 관한 대화에서 저는 의견은커녕 두 문장도 입을 떼기가 어려웠습니다. 옳고 그른 것이 확고하여 제가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는 것 같았습니다. ‘내 생각은 옳고 틀렸을 리 없다’는 그 확신이 저는 너무 무섭습니다. 이런 확신은 타인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폭력적인 상황을 만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저에게도 이런 면이 있지 않은지 반성하기도 하고, ‘아버지처럼 되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하고는 합니다.

ⓒ박홍기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 안에 있는 그 확고한 기준은 가족들에게 심한 상처를 주었습니다. 올바르고, 마땅히 해야 하는 각각의 역할을 가족들에게 부여하고, 그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무섭게 화를 내셨지요. 결국 한밤중의 소란이 집안에서 몇 번 반복되었습니다. 집안 분위기는 차갑고, 저는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말과 생각이 보편적이며 옳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제 눈에는 그저 가족들 위에 군림하려는 것으로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안쓰럽게 여겨졌습니다. 가족들 안에서 자신의 위신을 지키려는 중년은 위기 속에 놓인 것처럼 위태롭게 보이기까지 했거든요.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낸 뒤, 가족들은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서로에 대한 불만은 마음속에 꽁꽁 감춘 채, 형식적인 인사말만 나누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척 하고 있지요. 하지만 제가 받은 상처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제 숨을 조여 와서 답답하게 만듭니다.

방안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조마조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왜 이렇게 화가 날까, 왜 이렇게 미울까’ 잠을 이루지 못하며 고민하던 날들이 늘어났고, 저는 그 원인 중의 하나가 아버지 앞에서는 자유롭게 자기표현을 할 수 없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제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냈을 때, 아버지가 어떻게 반응할지 두렵기 때문에 저는 침묵하고, 순응하는 척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가 비겁하게 느껴지고 좌절감에 빠지면서 또 다시 원망과 분노로 이어지고는 하는 것이지요.

지난 추석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 먹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명절 음식을 만들면서 속으로 진저리를 쳤지요. 제가 화가 나는 것은 쪼그려 앉아서 전을 부쳐야 해서가 아니라, 이 명절 풍경이 다른 가족들의 욕구와는 무관하게 오로지 ‘가장’이라고 불리는 한 사람이 원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나친 양의 음식을 만들며 환경문제를 생각하다 허탈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소란을 방지하고, 그 사이에서 가장 많이 다칠 어머니를 위해서요.

저는 아버지와 대화는커녕 함께 밥을 먹는 것도 불편합니다. 식사 때마다 틀어놓는 뉴스가 거슬리고, 뉴스 내용에 아버지가 덧붙이시는 내용도 참기 힘듭니다. 최대한 아버지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고 있습니다. 거실에 있다가도 아버지께서 들어오시면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제 모습을 보고 서운해 하실까봐 죄송한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에 아버지와 함께 머물렀다가는 화가 나서 타들어갈 거 같은 제 속이 우선입니다.

이제는 아버지와 소통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어떤 관계든지 진심어린 대화로 풀 수 있다고 믿었던 순진한 시절은 끝난 것 같습니다. 관계마다 적당한 거리가 있듯이 아버지와 저의 거리는 현재로선 조금 먼 것이 서로에게 좋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편안합니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저 또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채 제가 알고 있다고 믿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저를 납득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밖에요. 하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대화를 나누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아마 그런 날은 오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감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래전부터 물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독립하고 싶었고, 부모님과 별개의 제 인생이 있다고 생각은 해왔지만, 여전히 부모님께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자식으로서의 자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해왔습니다. 이제는 온전히 저로 살고 싶어요.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가 꼭 화목한 가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애정보다는 분노와 원망의 감정으로 풀어낸 이 글을 쓰는 과정이 저를 자유롭게 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을 담아 아버지가 한 인간으로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배선영 (다리아)
대책 없지만,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살고 있는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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