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국 예수회원이자 가톨릭 일꾼 운동 활동가, 윌리엄 빅셀 신부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 2주년 미사가 봉헌되던 9월 30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공사 차량의 출입을 막기 위해 사제와 수도자들이 연좌한 가운데, 한 외국인 노사제가 나란히 앉았다. 그가 들고 있는 손팻말에는 “US, out of JEJU(미국은 제주도에서 나가라)”라는 글이 선명했다.

▲ 빅셀 신부(오른쪽)와 미국에서 함께 평화운동에 나서는 동료 스님이 강정마을에 동행했다. 빅셀 신부는 “연대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사제이자 평화활동가, 수차례 수감되면서도 평화운동 멈추지 않아
가톨릭 일꾼 운동 활동가로서 ‘비폭력 저항’ 지향


미국 예수회원이자 도로시 데이가 설립한 가톨릭 일꾼 운동(Catholic Worker Movement) 활동가인 윌리엄 빅셀(William J. Bichsel) 신부. 그는 곧 경찰에 의해 의자 채 들려 나가는 순간에도 평화로운 표정을 잃지 않았다.

올해 86세인 빅셀 신부는 지난 50여 년간 미국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활동을 이어왔다. 1959년 사제품을 받고, 곤자와 예수회 학교에서 강의하던 그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 들은 후,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비폭력 평화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1970년대에는 워싱턴 주 킷샙(Kitsap) 해군기지에서 핵잠수함 반대시위를 시작했고, 2009년에는 해군기지 철조망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2개월간 미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남미 군인들을 훈련시키는 미국 군사학교(School of the Americas) 반대 시위에도 동참했다. 2011년에는 테네시 주 ‘Y-12 국가 방위단’에 침입했다는 이유로 구속돼 2012년 2월 9일에 석방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사주의 반대운동을 멈추지 않은 빅셀 신부는 오는 10월 21일 또 다시 재판을 받게 된다.

▲ 강정마을에서 미사가 끝난 뒤, 주민들과 함께 강정댄스를 추는 빅셀 신부. 춤추는 사진을 찍었다며 보여주자, 아이처럼 큰 소리로 웃었다. ⓒ정현진 기자

가톨릭 일꾼 운동 활동가 통해 강정 소식 듣게 돼
“한국의 평화운동 현장에서 연대하고 싶었습니다”

빅셀 신부가 강정을 알게 된 것은 2년 전, 가톨릭 일꾼 운동 활동가를 통해서다. 먼저 강정마을을 방문했던 데이스 아펠과 브루스 개그논을 통해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알게 됐고, 한국 예수회원들이 주민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는 사실도 듣게 됐다.

빅셀 신부는 한국의 평화운동 현장을 두루 방문하고 싶어 오게 됐다면서, “여의치 않아 우선적으로 강정마을을 선택했다. 강정의 저항을 직접 보고 싶었고 연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한국의 평화운동에 관심을 가진 것은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있었고, 제주 해군기지의 배경에 미국 군사주의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곳 강정에서 살아있는 교회, 성체를 중심으로 일치된 공동체를 보았습니다. 이곳의 주민들, 동료 사제와 수도자들이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함께 연대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빅셀 신부는 경찰들에게 들려 나가는 순간에 대해 묻자, “경찰에게는 화가 나지 않는다. 그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그들 중에서도 제주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면서, 분노의 대상은 ‘미국’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참여했던 평화운동에 대해서 빅셀 신부는 가톨릭 일꾼 운동을 따라 비폭력 저항을 지향해 왔다고 말했다. 빅셀 신부가 건넨 가톨릭 일꾼 운동 타코마 공동체 엽서에는 간디, 마틴 루터 킹, 성 프란치스코, 예수 그리스도, 도로시 데이, 로메로 대주교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그는 이들의 영성을 따라 평화운동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 평화란,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충분한 상태, 곧 우리 안에 완성될 하느님 나라”라면서, 50여 년 동안 몇 차례의 옥고를 치르며 많은 고초를 겪었지만, 남은 생애 동안 계속 그 길을 갈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 윌리엄 빅셀 신부. 그는 “나의 평화운동은 간디, 마틴 루터 킹, 성 프란치스코, 예수 그리스도, 도로시 데이, 로메로 대주교의 영성을 따르는 비폭력 저항”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강정의 평화 공동체는 어떤 군사력보다 큰 힘 가졌다”

“이곳에서 경험했던 살아있는 신앙 공동체는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교회 공동체 중에서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는 공동체입니다.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일치된 비폭력저항 공동체. 이런 공동체는 어떠한 군사력보다 큰 힘을 갖고 있습니다.”

빅셀 신부는 미국의 평화운동은 대체로 하루나 이틀간 기습시위 형식으로 이뤄지지만, 강정마을처럼 오랫동안 매일 평화를 위한 행위가 이뤄지는 곳은 경험하지 못했다면서, “무엇보다 주교가 직접 지지하고 나선다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빅셀 신부는 “그동안 만났던 강정마을 공동체는 모든 이들을 환대하고 포용하는 곳”이라며 “신앙과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그들의 인간적 가치를 존중받고, 환영받으며, 성장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빅셀 신부는 한국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대한문 미사에 참여한 뒤, 지난 5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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