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신학 - 이미영]

▲ 탤런트 김태희의 사진을 표지에 담은 천주교 군인 교리서 <가까이 더 가까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자료사진)
군인주일(10월 6일)이 다가오니 예전에 우리신학연구소에 방학 동안 근로장학생으로 인턴 활동을 왔던 한 대학생이 생각난다. 인턴 활동을 오는 학생들에게 기본적으로 어떤 종교를 믿는지 묻곤 하는데, 그 학생은 처음에는 믿는 종교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한 달여를 일하면서 우연히 대화 중에 그가 사실은 군대에서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한국 천주교회에서 군종교구 세례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의 의미를 한 번 깊이 연구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기회다 싶어 그 학생(이하 A)과 군대에서의 세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애초에 믿는 종교가 없다고 말했던 것처럼, A는 군대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천주교 신자라는 자의식이 전혀 없었다. 가족도 모두 믿는 종교가 없고, 전공 수업 때 천주교 교리를 접해본 일은 있지만 신의 존재를 전혀 믿지 않는 무신론자였다.

그럼에도 군대에서 세례를 받은 것은 훈련소 성당에서 제공하는 간식이 좋아서라고 했다. 소위 ‘초코파이 신자’였던 셈이다. 게다가 군종 교리서의 표지가 예쁜 탤런트 김태희 사진이라, 그 책자를 받기 위해 교리에 참여하는 친구도 있었다고 했다.

A는 6주간의 미사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훈련소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자대 배치 후 곧바로 미사 참례도 중단하였다. 힘든 부대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 휴일에는 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군 성당의 신자가 대부를 섰지만 세례식 때만 만났을 뿐 아무런 관계도 없었고, 자기 세례명을 기억하고는 있지만 영어학원의 닉네임처럼 여길 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언젠가 종교를 가지게 되면 그래도 세례를 받았던 천주교를 믿지 않겠느냐고 물었지만, A는 단호하게 지금으로서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군대에서 세례 받은 사람들은 모두 A와 같은지도 물어보았는데, 대부분 자기와 비슷하지만 특별한 사람도 있다며 다른 친구 B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B는 정말로 천주교 신자가 되고 싶어서 훈련소 성당 미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B는 훈련소에서는 세례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교리 기간도 너무 짧거니와, 잘 모르는 사람을 대부로 세워 형식적인 세례를 받고 싶지 않다고 했단다. 군대는 잠시 거쳐 가는 곳인데, 군에서 세례를 받고 본당에 가면 서먹하여 제대로 적응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제대 후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세례를 받고 활동하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후 B는 부대에서 빠짐없이 주일미사에 참여하고 교리도 배웠지만, 정말로 제대 후에 자기 집 근처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했다. A는 B와 같은 방식이 천주교 선교에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며, 자대배치를 받고 나서 진정 원하는 사람만 교육을 하고, 제대 후 본당에 가서 세례를 받게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주었다.

군종교구는 성인 세례자 수가 1995년에만 해도 2,908명에 불과했으나, 2대 군종교구장이 부임한 1999년부터 그 증가세가 가파르게 늘어 2012년 말에는 28,671명으로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2년 한국 천주교회의 전체 성인 세례자 수가 100,918명이니 매년 새 신자의 20~30%가 군대에서 탄생하고 있는 셈이다.

군대가 그야말로 ‘황금어장’이 되어 천주교 신자 수를 크게 늘리고는 있지만, 그 세례 과정과 현실을 들여다보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군대에서의 세례는 대부분 A의 경험처럼, 짧은 군사훈련 기간에 이루어진다. 2008년 한 교회 언론의 보도를 따르면, 대표적인 훈련소인 논산훈련소 연무대성당의 경우, 매주 300여 명이 세례를 받아 연간 1만 명이 넘는 병사들이 세례를 받는다고 한다. 최소 6개월 이상 매 주일 미사에 참석하고 예비신자 교리교육을 받게 되어 있는 한국 천주교회 사목지침에도 어긋나지만, 집중 교리를 통해 회심의 과정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그야말로 일회용 신자들을 양산하고 있는 점은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흔히들 군대에서의 종교활동은 가르침이나 신앙체험의 문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누가 더 먹을 것을 많이 주고, 피곤한 병사들에게 편안한 휴식의 시간을 주는가에 따라 선택될 뿐이라고 한다. 천주교 신자 병사들도 어쩌다 불교의 수계(受戒) 법회에 한 번 참석했다가 5계와 법명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불교 역시 수계 장병이 해마다 늘어난다며 고무적이라고 평가하는데, 그들 중 정말로 불제자로 입문한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짐짓 자기 세를 과시하느라 천주교든, 불교든, 개신교든 더 많은 병사를 포섭했다는 성과를 가시화하려고 세례와 수계를 남발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군종교구의 기본적인 운영 방향을 보면 지역 교회의 청소년사목과 청년사목의 부진을 군종사목을 통해 만회한다며, 청년선교의 최일선에서 일단 신자 수를 늘려놓고 이들을 대상으로 신앙 성숙을 시켜가는 데 주력하겠다는 방침인 듯하다. 지역 교구 역시 청년 신자가 교회 안에 없다고 한탄만 할 뿐, 군종 세례자가 제대 후 실질적인 교구 신자로 연계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교적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군 세례자들의 행정적인 서류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만 매번 골칫거리가 된다.

한국 천주교회의 현실을 고민하는 연구자로서 군종 세례자의 문제를 한 번쯤은 연구논문으로 정리해 보고 싶은데, A군과 인터뷰하며 작성한 설문지를 조사할 대상조차 교회 안에서 찾기 쉽지 않다. 아무도 의뢰하지 않은 조사 설문지를 만들어놓고 군대에서 세례 받은 사람이 있으면 이 설문지 응답을 받아달라고 주위 사람 여럿에게 부탁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런 신자를 교회 안에서 만나기란 불가하단다.

혹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독자 본인이나 주위 지인 중에 군대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이 있거든, 아래의 설문지에 응답하도록 안내해 주시면 고맙겠다. 어느 정도 사례가 모이면, 이 지면을 통해 반드시 결과를 소개해 드리겠다.

https://docs.google.com/forms/d/1D5NRM6JC4wSOAloIWjQdNI6gzaUi63eVDGCBewNJtpA/viewform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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