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태의 추적! 공자(追跡! 孔子) - 15]

인류의 성인으로 알려진 사람 중에서 공자가 가진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현실 정치에 대한 깊은 관심이다.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종교라는 영역이 강조되면서 정치는 완전히 관심 밖의 일이 되거나 일정하게 분리되어 왔다. 그러다보니 불교나 그리스도교에서는 종교가 정치의 영역과 어떤 연관을 가져야 하느냐가 항상 어려운 숙제로 남는다. 그래서 종종 이들 종교는 현실과 맥락이 끊어진 사적 영역으로 고립되기도 한다.

그러나 공자에 이르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자의 유교는 정치를 비롯한 현실의 문제에 너무나도 깊숙이 관련되어 있어서 오히려 종교로 잘 인식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될 정도다.

공자는 그의 삶 자체가 늘 정치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 실제 정치에 참여하여 일정한 역할을 한 적도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정공(定公) 당시 제나라와의 외교 담판에 나갔던 것은 대표적인 일이다. 또 요즈음으로 치면 사법장관에 해당하는 사구(司寇)의 직을 맡았다는 좌씨전(左氏傳)의 기록도 있다.

그러나 “선생께서는 왜 정치를 하지 않으십니까?(子奚不爲政? 2/21)” 하는 누군가의 질문 등 상반된 기록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상충하는 여러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공자는 기본적으로 현실 정치에서 일정하게 떨어져 있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에 개입 내지 간여하였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특히 12년에 걸친 저 유명한 천하주유(天下周遊)는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노나라의 실권자였던 계환자(季桓子)의 가신이 되어 군주 중심의 정치를 강력하게 펼친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갑자기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집단적 정치 망명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만큼 정치는 적극적 의미에서든 소극적 의미에서든 공자의 삶에 가까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정치에 관한 공자의 관심과 그 내용은 논어의 도처에 흔적이 남아 있다. 그는 정공(定公)이나 애공(哀公)과 같은 임금은 물론 노나라의 실권을 쥐고 있던 소위 삼가(三家)의 대부들에게도 적지 않은 정치적 조언을 했다. 제자들에게 정치에 대해 가르친 것은 물론이지만 제자가 아닌 주변 정치인들에게도 필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거기에는 구체적인 내용도 많았다. 이를테면 논어 초입에만 하더라도 “제후의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매사에 경건히 임하여 신뢰를 쌓고 절약하여 사람을 사랑할 것이다. 백성을 동원할 경우에는 때를 가려서 할 것이다”(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 1/5) 하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제자 자하(子夏)가 거보(莒父)의 읍재가 되었을 때에는 “빨리 하려 하지 말고 작은 이익에 집착하지 말아라”(無欲速, 無見小利. 13/17) 하고 자상히 일러주기도 했다. 또 제자 안연(顔淵)에게는 “하나라의 역법(曆法)을 쓰고 은나라의 수레를 타며 주나라의 관을 쓰되 음악은 소무(韶舞)로 하여라. 정나라 소리를 추방하고 말 잘하는 자를 멀리하여라”(行夏之時, 乘殷之輅, 服周之冕, 樂則韶舞. 放鄭聲, 遠佞人 15/11) 하는 세목까지 들려주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이런 구체적인 조언은 공자가 강조하는 정치의 본령은 아니었다. 그가 강조하는 정치의 본령, 공자 정치학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위정자의 ‘바름’이었다. 그때그때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달리하기는 하지만 공자의 논조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한결같이 위정자의 바름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전개된 다양한 이야기를 보자.

계강자(季康子)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정치란 바로잡는 일입니다. 당신이 올바름으로써 앞장선다면 누가 감히 올바르지 않겠습니까?”
(季康子問政於孔子. 孔子對曰; 政者, 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 12/18

계강자(季康子)가 도둑을 걱정하여 공자에게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진실로 당신께서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설혹 상을 준다 하더라도 훔치지 않을 것입니다.”
(季康子患盜, 問於孔子. 孔子對曰; 苟子之不欲, 雖賞之不竊.) 12/19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만약 무도(無道)한 자를 죽여 백성들로 하여금 유도(有道)한 데로 나아가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당신이 정치를 하신다면서 어떻게 죽이는 방법을 쓰십니까? 당신이 선하고자 하면 백성들도 선해집니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라서 풀 위로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됩니다.”
(季康子問政於孔子曰; 如殺無道以就有道, 何如? 孔子對曰; 子爲政, 焉用殺? 子欲善而民善矣.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必偃.) 12/20

“그 자신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더라도 행하고 그 자신이 바르지 않으면 비록 명령한다 하더라도 따르지 않는다.”
(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 13/6

“진실로 자신의 몸가짐만 바르게 한다면 정치를 함에 있어서 무엇이 더 필요하겠느냐? 자신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남을 바르게 하겠느냐?”
(苟正其身矣, 於從政乎何有? 不能正其身, 如正人何?) 13/13

애공(哀公)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따르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대답하셨다.
“곧은 것을 들어 굽은 것 위에 놓으면 백성들이 따를 것이나 굽은 것을 들어 곧은 것 위에 놓으면 백성들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對曰; 擧直錯諸枉則民服, 擧枉錯諸直則民不服.) 2/19

자로가 군자에 대해 묻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경(敬)으로써 자신을 닦는다.”
자로가 말했다.
“그러할 뿐입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을 닦아 사람들을 편안케 한다.”
자로가 말했다.
“그러할 뿐입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을 닦아 백성을 편안케 한다. 자신을 닦아 백성을 편안케 하는 것은 요임금과 순임금도 오히려 부심했던 것이다.”
(子路問君子. 子曰; 脩己以敬. 曰; 如斯而已乎? 曰; 脩己以安人. 曰; 如斯而已乎? 脩己以安百姓. 脩己以安百姓, 堯舜其猶病諸.) 14/45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다스린 자는 곧 순임금이실 게다. 실로 무엇을 하셨겠느냐? 스스로를 공경히 한 채 똑바로 남면하셨을 뿐이다.”
(子曰; 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 15/5

논어의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는 단편들이지만 이상의 것들이 앞서 소개한 실무적 조언 몇 가지와 더불어 정치에 대해 공자가 언급한 이야기의 거의 전부다. 길고 짧고를 막론하고 핵심은 모두 동일하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정치는 위정자의 바름을 추구하는 것이고 그것이 정치의 전부라는 것이다.

소개한 8개의 단편에서 핵심 되는 부분만을 발췌한다면 올바름으로 앞장섬(帥以正), 욕심 부리지 않음(不欲), 선하고자 함(欲善), 자신의 바름(其身正), 스스로를 바르게 함(正其身), 곧은 것을 들어 굽은 것 위에 놓음(擧直錯諸枉), 자신을 닦음(脩己), 스스로를 공경히 하여 똑바로 남면함(恭己正南面) 등 요구되는 것은 너무나도 단순하고 동일하다.

유의할 것은 위정자가 스스로를 바르게 한다는 것은 위정자 일신의 고결함을 추구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위정자가 몸가짐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봉건체제의 여러 가지 상징성 안에서 하는 말이기 때문에 거기서의 일신(一身)은 오늘날 말하는 단순한 사적 일신과는 다르다. 그런 오해의 소지를 피하여 오늘날의 개념에 걸맞게 말한다면 요구되는 것은 ‘권력의 정의로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공자의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불변의 정치이론이다. 오늘날에도 정치는 권력의 정의로움에 불과하고 그것이면 더 이상의 것이 필요 없다. 정치는 권력을 획득하여 그것을 토대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공자 정치학의 아주 두드러진 특징이다. 공자의 정치학은 단지 권력이 스스로를 바르게 유지하는 것일 뿐, 그 위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점에서 정치는 늘 무언가를 하는 것, 베풀고 시행하는 것이라고 믿는 오늘날의 상식과 충돌한다. 따라서 상식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이해가 되면서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비로소 공자의 정치학을 아는 셈이다. 정치는 권력이 스스로를 바르게 유지하는 것일 뿐이다. 거기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다스린다”(無爲而治)는 공자 정치학의 위대한 원리가 나왔고 훗날 노자(老子)는 그것을 계승했을 뿐 아니라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일반적인 삶의 원리로까지 확대시켰다.

다시 말하지만 오늘날의 정치도 권력이 스스로를 바르게 유지하는 일 밖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이 나라의 현대사를 돌아보더라도 12년에 걸쳐 술수와 기만으로 점철되었던 이승만 정권, 18년에 걸쳐 강압과 독단으로 지속되었던 박정희 정권, 이후 신군부에 의해 날치기되었던 전두환 정권 등 긴 역사에서 우리를 좌절케 하거나 절망케 한 것들이 다 무엇이었던가? 결국은 권력 자체의 정당성에 관한 문제, 정의로움을 갖추는 문제를 넘어선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느 정권, 어느 상황에서도 먹고 사는 문제는 늘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였지만 그것은 결코 정치의 본령은 아니었다. 복지와 교육과 경제, 국방은 국민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은 자들이 한시도 쉴 틈 없이 열심히 챙겨야 할 사항들이지만 그것은 권력의 정의로움이라는 본령을 중심으로 원근법에 따라 적절히 배치된 부수적 사항들일 뿐이다.

그래서 권력이 정의롭지 못한 길을 걷거나 왜곡된 행보를 디딜 때 그것을 성토하는 주변 세력에 대하여 권력측이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시급한 민생 문제를 도외시하고 정쟁만 일삼는다”는 말이 그것이다. 50년 전이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것은 정해진 공식처럼 튀어나온다. 그래서 권력이 민생을 거들먹거릴 때에는 스스로 불의를 행하고 있거나 불의를 호도하고 있는 중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정치란 권력의 정의로움에 불과하다고 했던 공자의 규정은 너무나도 단순하지만 우리는 그 무차별한 적용에 놀라고 그 충분성과 포괄성에 놀란다.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그 진리를 발견했던 한 인물, 공자에 놀란다.

오늘도 어지러운 한국의 정치를 내려다보며 공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진실로 한국의 권력이 스스로 정의롭게 행동한다면 정치를 함에 있어서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苟正其身矣, 於從政乎何有?) 13/13

 

 
이수태
연세대학교 법학과 졸업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32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평생의 관심은 철학과 종교학이었다. 그 동안 낸 책으로는 <새번역 논어>와 <논어의 발견> 외에 에세이집 <어른 되기의 어려움>,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등이 있다. 제5회 객석 예술평론상, 제1회 시대의 에세이스트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퇴직 후 현재는 강의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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