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제로서 침묵하기 어려워”

부산에서 시작된 천주교 사제들의 시국선언 물결이 북쪽으로 올라오고 있다.

대전교구 사제 141명은 14일 오전 11시 대전 가톨릭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 사태 관련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대전교구 사제단은 “작금의 사태는 민주주의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는 크게 어긋나게 흐르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범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사제단은 국정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으로 공개한 것은 “또 다른 국기문란행위”이며, 이를 통해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 대전교구 사제들이 14일 대전 가톨릭문화회관 앞에서 국정원 사태 관련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이요안

대전교구 사제단은 시국선언에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새누리당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입수 경위 규명과 책임자 처벌, △국기문란 행위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사죄와 재발 방지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한편, 원주교구 사제단은 15일 광복절이자 성모승천대축일을 기해 시국선언을 발표한다. 국내 거주하는 원주교구 사제 83명 중 70%인 57명이 참여했다.

원주교구 사제단은 하루 앞서 공개한 시국선언문에서 “정치적 부패는 한 사회의 윤리적 원칙과 사회정의 규범을 한꺼번에 짓밟고, 정보의 독점은 시민의 정치적 의사표현과 참여를 왜곡한다”고 지적하며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를 비판했다.

원주교구 사제단은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제로서 차마 침묵하고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인식하며 이에 ‘민주주의’ 그 이름을 다시 부르려 한다”고 밝혔다.

원주교구 사제단은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의 축소와 은폐에 관여한 책임자 규명과 처벌, △국정원 국정조사 내용 투명 공개, △국정원 전면 개혁안 마련, △국정원 사태에 대한 정부의 사과, △언론의 보도통제와 자기검열 중단을 촉구했다.

천주교 대전교구 사제 141인의 시국선언

“너희는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여라.” (이사 56,1)

정의와 평화가 이 세상에 더욱 가득하길 염원하는 천주교 대전교구 사제 141명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최근 국가 정보원의 대통령 선거 불법 개입과 대통령 국가 기록물 공개로 인한 논쟁들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밝힙니다.

교회는 정치 체제로서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합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국민들에게 정치적 결정에 참여할 중요한 권한을 부여하며, 국민들이 통치자들을 선택하거나 통제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평화적으로 교체할 가능성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사적 이익이나 혹은 특정 집단의 이념적 목적을 위하여 국가 체제를 점령하고 폐쇄된 지배 집단을 형성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법이 올바로 시행되는 상황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올바른 인간관의 기초 위에 성립합니다. 민주주의는 참된 이상에 대한 교육과 양성을 통한 개인의 향상을 위해서나 참여와 공동 책임 구조의 설립을 통한 사회 주체성의 향상을 위해서도 필요조건들이 채워지기를 요구합니다(백주년, 46항).

그런데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작금의 사태는 민주주의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는 크게 어긋나게 흐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 대통령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하였고, 이를 수사한 서울 경찰청의 발표가 허위였다는 것이 이미 검찰 수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이는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범죄입니다. 더욱이 국가정보원은 이러한 국기문란 행위를 덮기 위해 국가기밀문서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적으로 공개하여 또 다른 국기문란 행위를 자행하였으며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누리당의 김무성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의 발언을 통해, 새누리당은 이미 지난 대선 때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적으로 입수, 열람하였고, 김무성 의원이 부산 유세에서 대화록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여 선거에 이용하였음이 드러났습니다.

이 참담한 사건의 본질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이고, 두 번째는 국가정보원의 대화록 공개입니다. 셋째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대화록을 불법 열람하여 선거에 이용했다는 점입니다. 국가정보원과 새누리당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이 사건의 본질을 흩트리는 일을 더 이상 자행해서는 안 됩니다. 민주주의 근간을 흔든 이 사건은 철저히 규명되고 조사되어,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된 민주주의는 다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 제도의 가장 심각한 결함은 도덕 원칙과 사회정의 규범을 한꺼번에 짓밟는 정치적인 부패입니다(사회적 관심, 44항). 정치적 부패는 국가의 올바른 발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며, 통치자와 국민, 나아가 국민 상호간의 신뢰 관계까지 무너뜨리게 합니다. 대전교구 사제 141명은 더 이상 이 심각한 사건의 본질을 흐리지 말고, 철저하게 규명하고 조사하여 민주주의의 근간을 더 이상 훼손시키지 말기를 강력히 촉구합니다.

이제 우리 대전교구 사제 141명은 신앙의 양심과 경고를 담아 박근혜 정부에 다음과 같이 촉구합니다.

1.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 불법 개입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2.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불법 공개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3.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 측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적으로 입수한 경위를 철저히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4. 박근혜 대통령은 이와 같은 국기문란 행위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대책을 밝혀라.

2013년 8월 14일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141명 (가나다 순)

강승수 강진영 강창원 강철민 고영환 공재호 곽상호 곽승룡 구본국 권선중 권세진 권순택 김기 김기범 김누리 김다울 김대건 김동겸 김두한 김명현 김명환 김문수 김민희 김석태 김선태(안드레아) 김영근 김영삼 김영직 김용대 김용우 김용태(안드레아) 김용호 김은석 김인호 김재덕 김재철 김정환 김제동 김종기 김종민 김준영 김지성 김진 김진철 김택민 나기웅 나봉균 남광근 노상민 노승준 맹세영 문영준 박남규 박민균 박상균 박상병 박성준 박제준 박주환 박지목 방영훈 배승록 백성수 백종관 손범규 손은석 송국섭 송우진 송준명 신상욱 신수영 신인수 안광훈 양희창 연광흠 오기환 오남한 오명관 오세정 오창호 옥순보 원동성 원유진 유정의 유창연 유호식 윤영균 윤영중 윤인식 윤종수 윤종학 이강우 이계창 이득규 이명상 이봉효 이상수 이상욱 이석우 이영일 이용범 이용수 이원무 이의현 이재선 이재홍 이재훈 이종석 이진용 이진욱 이한영 이화상 임민수 임상교 임장혁 임종택 전영우 전원석 정동수 정우석 정윤식 정필국 조수환 조장윤 최견우 최동일 최상순 최선종 최용묵 최용상 최재경 한현택 허병도 허숭현 홍성민 홍정수 홍헌표 황영준 황인기 황인제 황화인

천주교 원주교구 사제 57인 시국선언문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마태 10,26)

천주교 원주교구는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따라 생명, 정의, 평화의 가치를 존중하며, 여러 차례 고난과 시련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수행하며 한국 사회 민주주의 확립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정원 정치개입 사태 및 이에 대한 언론의 태도를 보면서 참담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 부패와 억압의 시대로 회귀하려는 부정한 권력에 대해 또한 그런 권력에 기대어 왜곡 보도의 첨병 역할을 하며 국민과 진실의 편이기를 거부한 많은 언론사에 대해 진정 낮은 자세로 국민들 앞에 겸허히 반성해 줄 것을 촉구합니다.

교회는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합니다. 이는 시민들에게 정치적 결정에 참여할 중요한 권한을 부여하여 피지배자들에게는 지배자들을 선택하거나 통제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평화적으로 대치할 가능성을 보장해 주는 제도이기 때문입니다.(백주년 46항)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을 훼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정치적 부패와 정보의 독점입니다. 정치적 부패는 한 사회의 윤리적 원칙과 사회정의 규범을 한꺼번에 짓밟는 것이고, 정보의 독점은 시민의 정치적 의사표현과 참여를 왜곡시킵니다. 부패와 정보독점에 대한 시민사회의 감시와 견제 없이는 참다운 민주주의는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정원의 불법적 정치개입 사건과 이를 수사한 경찰청의 허위 발표,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국가기밀문서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적으로 공개하여 국기를 문란하게 한 행위, 또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불법적으로 입수하여 그것을 대통령 선거와 이후의 정치에 이용했다는 사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숨기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는 언론의 태도를 보면서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제로서 차마 침묵하고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인식하며 이에 <민주주의> 그 이름을 다시 부르려 합니다.

우리 천주교 원주교구 사제들은 진실과 정의가 사라지고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현 정치상황을 바라보면서 신앙의 양심과 경고를 담아 다음과 같이 우리의 요구를 밝힙니다.

-.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의 축소와 은폐에 관여한 책임자를 신속히 규명하고 처벌하라
-. 집권당은 현재 파행 중인 국정원 국정조사를 전 국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하라
-. 정부는 국정원 정치개입 차단을 포함한 국정원 전면 개혁을 국민 앞에 제시하라.
-. 정부는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대한 범법행위를 국민 앞에 사과하라.
-. 언론인들은 보도통제, 자기검열을 중단하고 민주주의를 말하는 언론으로 거듭나라.

2013년 8월 15일
일제의 식민통치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성모 승천 대축일에
 

천주교 원주교구 사제 57인
신현봉 최기식 안승길 김종인 조규남 이규영 박무학 박용식 김영진 김승오 백승치 배은하 조규정 장석윤 신현만 김한기 김창수 박홍표 심한구 김하수 유충희 배달하 박흥준 박영수 백인현 위종우 배도하 김민규 이재희 최종복 백학현 김현수 신동걸 이동훈 최영균 배하정 김기성 장수백 박준혁 배현하 전덕중 장원용 유영진 고은락 서동신 성호영 양희정 안경진 이규준 박병옥 심상은 최종권 권호범 이희선 김대중 성원경 이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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