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공석 신부의 신학산책 - 20]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그것 때문에 처형되었다. 하느님의 나라는 모세와의 계약에서 “나 너와 함께 있다.”(탈출 3,12)는 말씀에 그 기원이 있다. 이스라엘에게 율법이 있는 것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의식하며 사는 인간의 사회적 윤리적 변화를 요약한 지침이었다. 제물봉헌이 있는 것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시선(視線)이 제물 위에 내려오게 하여, 그 시선으로 인간이 자기의 생산품을 바라보겠다는 상징적 행위였다.

▲ 피터 폴 루벤스의 그리스도의 부활, 네덜란드 안트베르펜
율사와 사제들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백성에게, 율법으로 혹은 제물 봉헌으로, 상기시키는 일을 하기 위해 선임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군림하는 가상적 놀이를 사람들에게 강요하면서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율법과 제물봉헌을 빙자하여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 퇴색하는 곳에 기득권층은 언제나 하느님의 이름으로 군림하고, 사람들은 죄인으로 전락한다.

예수는 율법과 제사를 절대화하는 유대교 기득권층을 비판하였다. 예수에게는 율법과 제사가 중요하지 않고,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 절대적이었다. 예수가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마귀를 쫓으며, 죄의 용서를 선포한 것은 하느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알리는 행위였다. 예수는 그 일에 대해 양보하지 않았기에 유대교 기득권층으로부터 죄인으로 처형되었다.

신약성서의 여러 곳에 예수가 자기 죽음을 예고하고, 스스로 죽음을 향해 나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예수의 죽음이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일에 충실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내어 주고 쏟은’ 결과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초기신앙공동체가 그분이 죽음의 위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당신의 길을 가신 사실을 부각하기 위해 언급한 것이었다.

복음서들은 예수가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마르 14,36)라는 기도를 하면서 죽어갔다고 말한다. 예수는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그 함께 계심을 잃지 않으면서 죽어간 것이었다. 예수의 부활은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도 하느님은 과연 예수와 함께 계셨고, 그 하느님은 예수가 가르친 대로 사람을 살리는 분이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 사건이다.


서공석 신부 (부산교구 원로사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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