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 속에서 그리스도 발견하는 교황과 신앙교리성 장관

아르헨티나 출신의 교황이 선출되면서, 교황은 공교롭게도 첫 해외 순방지로 돔 헬더 까마라 대주교와 레오나르도 보프 등 해방신학자들의 요람이었던 브라질을 선택했다. 세계청년대회가 이곳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바티칸 인사이드>(Vatican Insider)는 이참에 해방신학에 우호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게르하르드 루드비크 뮐러(Gerhard Ludwig Müller) 대주교를 소개하며 “해방신학운동과 교황청 간의 전쟁이 종식되었다”고 전했다.

지난 2012년 2월 2일, 독일 레겐스부르크 교구 출신의 뭘러 대주교를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임명한 교황은 역설적이게도 해방신학을 줄곧 단죄해 온 베네딕토 16세 교황이었다. 나중에 베네딕토 16세가 된 라칭거 추기경은 요한바오로 2세 교황 시절에 25년 동안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복무하면서 한스 큉과 스힐레벡스 등 현대신학자들과 레오나르도 보프 등 해방신학자들을 감찰하고 단속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이 라칭거 추기경이 2005년에 교황이 되었을 때, 보프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교황을 희망하며, 바티칸보다는 리우의 판자촌에서 더 많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고 말하면서 “불행하게도 나는 교황에게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지는 않으며, 다만 교황이 지난 25년간 해방신학을 억압했던 것과 같은 행동을 더 이상 보이지 않기만을 바란다”고 말했다.

해방신학 단죄한 교황이 해방신학자의 친구를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임명
뭘러 대주교 "해방신학은 가톨릭신학의 주류 중 하나"


▲ 뮐러 대주교. (사진출처: 유튜브 동영상 Bischof Gerhard Ludwig Müller zur Heiligsprechung von Anna Schäffer 갈무리)
그런데 기적처럼,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사임 일 년 전에 미국의 레바다 추기경에 이어 페루의 해방신학자 구스타보 구티에레즈와 절친한 것으로 알려진 뮐러 대주교를 후임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임명했다. 뮐러 대주교는 독일 주교회의에서 중도파의 수장이었던 칼 레흐만 신부에게서 1977년 나치에 저항한 독일 개신교 신학자인 디트리히 본회퍼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뮐러 대주교는 1998년부터는 매년 페루에 가서 구티에레즈의 강의를 들었고, 볼리비아 국경 근처의 농촌 본당에서 농민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리고 2004년 구티에레즈와 함께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서: 해방신학>(On the Side of the Poor: The Theology of Liberation>이라는 책을 썼다. 뮐러 대주교는 최근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세계 여타지역으로 확산되면서 ‘해방신학’이라고 알려지게 된 라틴 아메리카의 교회적, 신학적 운동은 제 생각에, 20세기 가톨릭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흐름들 가운데 하나로 포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 발언이 신앙교리성 장관의 입에서 나온 논평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뭘러 대주교는 그동안 구티에레즈와의 친밀함을 한 번도 숨기지 않았으며, 2008년 페루 교황청립 가톨릭대학교가 수여하는 명예학위를 수여받으며, 자신의 스승이자 친구였던 구티에레즈의 신학사상이 “완전히 정통신앙과 부합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한편 구티에레즈와 공동으로 지은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서: 해방신학>에서 뮐러 대주교는 “해방신학의 가치는 라틴 아메리카 가톨릭교회의 범위를 넘어선다”고 말했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 해방신학 운동은 모든 참된 신학적 조류들이 향해 있는 하나의 이미지, 즉 구세주이시자 해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향해 왔다”고 강조했다.

뮐러 대주교는 해방신학이 ‘가난한 자들을 향하는 복음’이며, 죽음만을 유일한 출구로 여겨야 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한 사람을 상기시키며, “서구의 신학운동과 다르게, 해방신학은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의 현실을 추상화시키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을 ‘가난한 이들 안에서’ 보았다.

신앙교리성 장관, 해방신학에 대한 오해 분석
"출세주의자와 군사독재 저지른 뻔뻔한 죄인들이 해방신학 반대"

 
<바티칸 인사이드>(Vatican Insider)는 엘살바도르에서 군부에 의해 암살당한 로메로 대주교에 대한 시성절차가 재개되고, “이제 라틴 아메리카 출신의 교황이 등장하면서, 과거 격렬했던 논란에서 벗어나 해방신학이 등장하였던 시대와 그 경험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해방신학에 대한 특정한 교회 내 분파들의 적대감은 정치적인 동기에 의한 것이었으며, 실제로 사도들의 신앙을 보존하고 전파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었음을 쉽게 알아 볼 수 있다”고 단언했다. 오히려 지난 30년 동안 “해방신학 운동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는 것은 가톨릭교회 안에서 출세가도를 달리게 하는 최고의 요소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뮐러 대주교는 해방신학을 배격하는 태도가 지정학적이며 정치적인 동기가 작용한 결과라고 지적했는데, 보수적 분파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를 보면서 자본주의가 절대적 승리를 쟁취했다고 믿었으며, 마르크스적 혁명이 붕괴한 것처럼 해방신학 운동 역시 ‘손쉬운 상대’라고 여겼다. 뮐러 대주교는 라칭거가 해방신학을 처음 단죄했던 <자유 전갈-해방신학의 일부 측면에 대한 신앙교리성 훈령>(Libertatis Nuntius, 1984)가 발표되기 4년 전인 1980년에 산타페 위원회가 레이건 대통령에게 보고한 비밀문서를 언급했다.

뭘러 대주교는 “이 문서는 미국정부로 하여금 해방신학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을 주문하면서, 해방신학이 가톨릭 신앙공동체를 그리스도교 신앙보다는 공산주의에 가까운 사상들로 물들임으로써, 사적소유권과 생산적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정치적 무기로 가톨릭교회를 변질시킬 것이라고 비난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뮐러 대주교는 “이 문서의 집필자들은, 그들 자신이 잔혹하고 강력한 군사독재와 소수독재를 저지른 죄인이라는 점에서, 그 뻔뻔스러움이 충격적”이라며 “사유재산과 자본주의적 생산체제에 대한 그들의 이해관계가 그리스도교를 대신해버렸다”고 비판했다.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교황과 해방신학의 진수를 발견한 신앙교리성 장관의 만남이 향후 가톨릭교회의 방향을 어디로 이끌어 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동안 미국의 강경파와 라틴아메리카의 군부독재, 그리고 교황청에서 백안시 당했던 해방신학이 재평가 받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특별히 교황청 신앙교리성과 여기서 단죄 받았던 신학자들 사이에 빚어졌던 갈등이 해소되고, 해방신학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신실한 가톨릭신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진짜 복음의 전갈’임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뮐러 대주교는 오는 9월에 로마를 포함한 이탈리아에 방문하는 85세의 구티에레즈가 신학자로서 세미나와 대학강단에서 자신의 성찰을 나누는 것보다 ‘가난한 이들을 경축하는’ 전례에 참석하러 사제로서 온다고 전했다. 구티에레즈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바닥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뮐러 대주교는 페루의 친구 구티에레즈의 말을 인용해, “가난한 이들과 함께 직접 일하라. 진리는 우리를 가난한 이들에게 더 가까이 가도록 이끈다”(Commit to working directly with the poor. The truth brings us closer to the poor)라고 말씀하신 분이 바로 ‘주님’이라고 말했다.

*참고: <Vatican Insider> ‘The war between the Liberation Theology movement and Rome is over’(원문 번역: 배우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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