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하느님 소유, 우리는 나그네… 사람이 지은 건물도 우상이다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가 주교회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땅에 대한 탐욕을 비판하면서, 교회가 부동산 증식과 교회 건축물을 늘리는데 사목적 열성을 소진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 주교는 ‘땅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NLL(북방한계선) 논쟁에 대해 “현 정권은 이미 고인이 된 대통령이 6년 전에 한 말마디를 끄집어내어, 나라의 영토를 포기하려 했다고 시비를 걸고 여론을 들끓게 하였다. 우리가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여전히 말마디 때문에 서로 이렇게 사생결단 싸워야 하는지 모를 일”이라고 전했다. 이어 독도를 둘러싼 우리나라와 일본의 갈등,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갈등 등, 땅 때문에 계속 벌어지는 충돌은 “땅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바람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난 3월 28일 제주 강정천에서 열린 성목요일 세족례 미사에서 강우일 주교가 강론하고 있다. ⓒ조성봉

땅에 대한 절대소유권 없어… 모두가 이승을 건너는 나그네

이어 자기 땅임을 고집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를 다루면서, “팔레스티나 땅의 주인은 정말 이스라엘 백성일까?” 물으며,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은 ‘땅’이 아니라 ‘복’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하여 땅 위의 모든 종족이 다 복을 받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땅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안정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터전이지 땅 자체가 복의 최종 목표가 아니다. 아브라함도 사라도 그 땅에서 평생을 나그네로 살았으나 죽을 때까지 자신들이 묻힐 아주 작은 한 조각의 땅, 무덤밖에 얻지 못하였다.”

레위기에 따르면, “땅은 어디까지나 하느님이 잠정적으로 인간에게 관리를 위탁한 하느님의 소유이지 인간이 이를 영구히 자기 것으로 만들 자격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땅에서 나는 모든 소출의 십 분의 일을 하느님께 바치라는 십일조의 규범은 “땅에서 얻은 모든 복이 다 그 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니 하느님에게서 받은 복에 감사하는 뜻으로 봉헌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일곱 번째 해에는 경작을 하지 말고 고아와 과부나 나그네들이 굶주림을 해결하도록 하라는 안식년 규범도 “땅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하느님께서 힘없는 이들에게도 먹을 것을 나누기를 원하시니 아무도 땅의 권리를 독점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강우일 주교는 구약성경은 아브라함과 이사악, 야곱의 하느님께서 그들을 평생 나그네로 살도록 부르신 것 역시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복이 땅덩어리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목적이 아니었을까?” 묻는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잠시 함께하는 인연이지 영구하고 절대적인 소유와 종속의 관계는 없음”을 말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그들을 땅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을 초월한 자유로운 삶,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존하는 믿음의 삶으로 초대하신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질문한다.

머리 둘 곳도 없던 예수, 가난한 이들에게 행복선언
“그리스도인은 땅과 인연을 끊고 이 땅을 초월하는 새로운 땅 추구해야”

예수 역시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고 하시며 “당신은 현실 속의 땅과는 인연을 맺을 수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사셨다”고 말했다. 예수가 가르친 첫 외침도 ‘복’이었다며, 강 주교는 “예수님께서 행복하다고 외치신 사람은 세상 사람들의 시각에서 볼 때는 오히려 불행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마태 5,3-5)

예수가 다가가시고 행복하다고 선언하신 사람들은 주로 “가난하고, 슬픔에 잠겨있고, 힘도 배경도 없어 자꾸 뒤로 밀리기만 하지만 너무 온유해서 항변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강 주교는 “이들은 나병환자들, 중풍병자들, 거리의 여인들, 세리들, 절름발이, 맹인, 농아, 불치병자들, 노동자들, 세상에서는 지지리도 복이 없는 사람으로 자타가 인식하던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행복하다고 선언하셨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들이야말로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에서는 누구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보살핌과 위로를 받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강 주교는 구약의 백성이 그토록 매달리고 되찾으려고 했던 땅을 예수가 ‘하늘나라,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왕국’으로 대체하셨다면서,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땅과의 인연을 끊고 이 땅을 초월하는 새로운 땅을 추구하도록 가르치고 경고하신다”고 말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간다”(마태 6,19)는 말씀처럼 예수와 그 제자들은 “근원적으로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예수님의 자의식과 세계관을 이어받아 “사실 땅 위에는 우리를 위한 영원한 도성이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올 도성을 찾고 있습니다”(히브 13,14) 하고 고백했다.

사제들의 사목적 열정, 땅 사고 건물 짓는데 쓰는 것… “주교의 잘못”
“이스라엘은 웅장한 석조 성전보다 천막에서 더 신실했다”

강우일 주교는 2004년 말 현재 면적 기준으로 우리나라 총인구의 상위 1%가 51.5%를, 상위 5%가 82.7%의 개인 소유지를 보유하고 있는 높은 토지 편중도를 언급하며, 이는 토지소유가 가져다주는 높은 수익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렇게 만들어진 부동산 불패 신화를 철석같이 믿고 대출까지 받아 투자하다가 최근 ‘하우스 푸어’로 전락한 이들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했다. 강 주교는 이런 태도가 사회적 불평등을 가속화시킨다면서, “이제 백성들도 지도자들도 땅에 대한 잘못된 환상과 집착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강 주교는 “도대체 저 정도면 건축비가 얼마나 들었을까 싶을 정도의 웅장하고 거대한 교회 건축물”을 바라보며, “사회의 건축물들이 멋스러워지고 화려해지는 데 비례하여 천주교 성당도, 교육관도, 사제관도 따라서 커지고 화려해진다”고 비판했다. 교우가 늘어나니 어쩔 수 없이 본당을 새롭게 세우게 된다 해도, “교회도 땅을 늘려가고, 부동산을 증식해 가는 경쟁 대열에 합류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사제들의 거룩한 사목적 열정을 땅 사고 건물 짓는 데 다 낭비하고 탈진해 버린다면 그것은 우리 주교들이 감독직을 올바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든다”면서, “이스라엘은 몇 십 년씩 걸려서 건설한 거대한 예루살렘 석조 성전보다 광야의 보잘것없는 먼지투성이 천막 앞에 엎드렸을 때 훨씬 더 하느님을 전심전력으로 섬기고 예배했다”고 말했다.

“땅도, 거기에 사람이 손으로 지어올린 건물도 우상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은 인간의 손으로 새긴 우상과는 비교도 안 되게 훨씬 더 놀랍고도 숨 막히는 아름다움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새 하늘과 새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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