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공석 신부의 신학산책 - 18]

“여러분이 듣고 보는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마태 11,4). 예수가 한 일은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병자를 고쳐주고, 건강을 되찾아 주며, 그들이 자기 생활 터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미래와 가능성을 준다. 그는 관례(慣例)와 종교의례(宗敎儀禮)가 잘못된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그 사람들과도 사귄다.

예수는 그런 실천으로 그 시대의 통념과 법규들을 무시하였다. 그것들은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었다. (오늘 우리의 교회법과 교계제도 그리고 관행들도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라면, 복음 앞에 한계를 지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수는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들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마태 21,31)고 말하고,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것을 보고 “어느 누구보다도 이 가난한 과부는 더 많이 넣었다”(마르 12,43)고도 말한다. 예수의 그런 말씀들은 사람들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폐쇄된 그 시대 종교사회의 관행을 뒤흔들었다.

권위를 가졌다는 사람들 앞에서도 예수는 놀라울 정도로 자유롭다. 그분은 권위가 요구하는 차별에 얽매이지 않았다. 예수의 그런 행동은 위험을 무릅쓴 것이었다. 유대의 고위 성직자들, 로마의 점령군들, 그리고 귀족들에 대해서 예수는 비판적이었다.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예수는 모든 형태의 권력은 율법주의, 관료주의, 옹졸함, 횡포 등에 노출되어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예수는 권력은 항상 순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권력은 인간의 더 큰 자유와 질서 있는 공동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봉사라는 미명하에 권력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르 10,42-45)

▲ ‘예루살렘 입성’, 조토의 작품(1305)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루살렘의 성전이 절대적이 아니라고 말한다(요한 4,21). 그리고 그는 또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분리와 차이도 별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흔히 이스라엘 안에서, 남용되던 유대인과 이교도의 구별도 예수에게는 별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이 할 역사적 역할은 있지만, 그것이 다른 민족에 대한 이스라엘의 분리주의나 우월감을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루카 7,9). 이교도인 로마의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한 예수의 말씀이다.

전통과 성서에 근거를 둔 엄격한 정통주의는 인간 자유와 양심의 중요성을 망각하게 한다. 예수는 이 점을 비판하였다. 정통주의는 인간을 차별하고, 인간으로부터 자유를 빼앗아 노예로 만들며, 결국은 인간 노릇을 하지 못하게 한다.

예수의 그런 자세는 예언자적 모습이다. 예수는 갈릴래아에 살면서 세례자 요한을 따르는 사람들과 접촉을 가졌다. 그는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가진 경직성(硬直性)과 소심증(小心症)에 생소하다. 예수는 백성의 한 사람이고, 그의 관심사는 백성에게 정치적 해방을 주기보다는 ‘돌보아 주고 가엾이 여기는’ 참다운 자유를 깨닫고 실천하도록 해 주려는 데에 있었다.

예수는 왕이 되기를 거부한다(요한 6,15). 다른 말로 하면, 예수는 사람들이 원하는 정치적 메시아가 되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예수는 백성을 실망시켰다. 그분은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국권을 회복할 인물이 아니었다.

병자는 자기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모두가 믿고 있던 시대에 예수는 병자들을 고쳤다. 예수는 나병환자도 고쳤다(루카 17,11-19).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에 철저한 유대인 사회에서 예수는 여성들에 대해 자유롭게 행동하였다. 그 시대 랍비 교과서는 랍비는 여인들과 가까이 지나지 말라고 가르쳤다. 길에서나 집에서나 여인과는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루카 8,1-3)

그러나 예수의 그런 행동들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 놓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예수는 사람이 각자 자기 책임 하에 삶의 변화를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예수는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서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열성당원이 아니다.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 예언자다.
 

서공석 신부 (부산교구 원로사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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