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상>, 베르고글리오 · 스코르카, 율리시즈, 2013

아르헨티나의 추기경인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가 교황 프란치스코가 되면서, 새 교황에 대한 책이 하나둘씩 번역되고 있다. 교황 선출 과정에 대한 한국 언론의 높은 관심에서 볼 수 있듯이, 그분에 대한 관심은 비단 한국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 중요한 의미를 던지고 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베네딕토 16세처럼 ‘물질주의’를 경계하고, 요한 바오로 2세처럼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요한 바오로 1세처럼 소박한 삶을 몸소 보여주고,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황직이 또 다른 권력이 아니라 분명한 봉사직임을 드러내기 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걸음이 어디까지 갈지, 아니면 중도 하차할지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바티칸의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 <천국과 지상>, 베르고글리오 · 스코르카, 율리시즈, 2013
이즈음에 교회 출판사가 아닌 일반 출판사에서 교황이 추기경 시절 한 랍비와 나눈 대담집이 번역되어 나왔다. <천국과 지상>(율리시즈, 2013)이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던 랍비는 아브라함 스코르카. 아르헨티나의 생물학자이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라틴아메리카랍비신학교 학장이며, 아르헨티나 가톨릭대학에서 전례 없이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은 히브리 율법 전문가다.

이 책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면모를 살피자면, 한마디로 사회적 실천에 우호적이면서, 교회 전통에는 여전히 보수적인 태도가 엿보인다. 아마도 교회 장상의 입장이 늘 그렇듯이 혁신적인 변화에 대한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겠지만, ‘목수의 아들’을 닮으려는 소박한 갈망이 그분의 그늘을 덮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성직자의 정치행위와 정치적 담합은 다르다

정치와 권력에 관하여 랍비 스코르카는 “과거 예언자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모든 종교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자기 입장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며 “그렇다고 해서 종교 지도자들이 정치적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는 모두 정치적 동물”이며 “우리는 모두 건설적인 정치활동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다”고 표명했다. 우리가 좋든 싫든 “인간적, 종교적 가치를 설파하다 보면 정치적 결과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물론 교황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자율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종교가 ‘성구보관실’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호전적 세속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프랑스 주교단이 <정치 재실현>이라는 교서를 발표해 신뢰를 잃어버린 정치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높이 평가하며, 정치는 “공동의 이익을 위한 사회적 사랑”을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치’와 ‘정략’을 구분할 것도 요청했다. 교황은 “성직자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정치적인 행위”이며 “종교인은 가치에 대해 의견을 표시하고, 길을 제시하며, 교육을 걱정하고, 누군가 요청할 경우에는 구체적인 사회 상황에 대해 대답해 줄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코르카가 “선거만 시작되면 성직자의 축복을 바라는 정치인”을 비판했듯이, 교황은 정치인들이 다가와 ‘정치적 결탁’을 요구하는 행위를 비난했다. 또한 종교지도자들이 정치권력과 담합해 일부 정치인에게 면죄부를 주고 교회의 이익을 챙기는 행위를 지적하고 있다. 한국 교회에서도 이러한 정치적 결탁을 상기시키는 사건들이 종종 일어났다.

교황은 “종교가 정치권력과 대화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테이블 아래에서 모종의 거래가 이루어질 때”라면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종교는 권력의 나쁜 형태가 되고 만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상황에 가담하는 것을 교황은 ‘담합’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스코르카는 “종교를 이끌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자신감, 자부심, 그리고 자아를 갖고 있어야 한다”며 인간적 열정을 옹호하면서도 “늘 이 권력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자기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황으로 선출된다는 것은 중요한 목소리가 됨을 의미하며, 다른 사람들의 비판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대상”이라면서 “저는 언제나 추기경들이 온화한 기질을 가진 분을 선출하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막대한 힘을 가졌을 때에도 여전히 진실하고 겸손할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말은 대담 이후 몇 년 후에 실제로 교황으로 선출된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에게도 직접 해당되는 말이었다.

이 질문에 교황은 “자격 미달인 사람이 자신을 높이 생각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물으며 “자신을 그렇게나 높이 평가하여 권력 나부랭이를 갖는다면,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로 불쌍해진다”고 말했다. 덧붙여 교황은 자신의 아버지가 해준 말을 소개했다. “위로 올라갈 때 언제나 사람들에게 인사해라! 네가 내려갈 때 그 사람들과 마주치게 될 테니. 네 자신을 너무 높게 생각하지 마라.”

교황은 사제서품식 때의 “여러분이 사제를 선택했다기보다 사제로 선택된 것”이라는 말을 기억하며, 종교지도자들이 하느님께서 주신 권력이 아닌 ‘다른 종류의 권력’에 휘말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톨릭교회에서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은 교황령(1870년까지 교황이 지배한 중부 이탈리아 지역)이 없어졌다는 사실이라고 말하는 교황은, “교황이 세속의 왕이자 종교의 왕이었을 때는 왕족의 음모와 책략에 뒤엉켜 있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비판하고 있다.

가톨릭교회에 여전히 출세제일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는 게 교황의 판단이다. 그가 교황이 된 뒤에 교황대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주교가 되고 싶어 안달하는 자들을 우리는 원하지 않는다”고 따끔한 말을 던진 것도 이러한 생각의 연장이었을 것이다. 교황은 고위성직자들이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인 권력을 엉뚱한 데 쓰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했다. 그렇지 않으면 “봉사하기 위해 선택된 자가 아닌, 원하는 대로 살겠노라 마음먹는 자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한편 교황은 사제나 주교가 교권주의에 빠지는 것을 ‘종교의 왜곡’이라고 불렀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사제를 포함한 모두가 하느님의 백성이며, 교구를 이끄는 주교는 성숙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지역사회와 신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주교가 ‘내가 이곳의 보스다’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내세운다면 그는 ‘교권주의’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교, 제사장 대신에 랍비… 여성에게 랍비 직위 허용
가톨릭, 유대교에서 차용한 사제직… 여성의 직무사제직 불허

랍비와 교황이 나눈 여성에 대한 대화에서는 확연한 차이점이 부각되었다. 가톨릭교회는 히브리 성서에 등장하는 제사장에서 사제직을 차용해 왔으며, 이 사제직은 여성을 배제하고 부계 전통을 따른다. 즉, 여성사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유대인들은 모계 혈통에 따라 어머니가 유대인이라면 아이도 유대인이 된다. 또, 남성에 의해 수행되어 온 제사장을 대신해 랍비가 성직을 수행하고 있는데, 율법을 아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유대교인들을 가르칠 수 있고 유대교 율법에 따라 행동하는 법을 전수할 수 있다.

스코르카는 “전세계 랍비 세미나에서 여성에게 랍비(rabino) 직위를 수여하기로 결정”했으며, 탈무드에서는 남성이 쉽게 이혼하지 못하게 결혼계약서를 여성이 갖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것은 이혼 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높은 여성을 위한 안전장치였고, 여성에게 품위 있는 삶을 보장하려는 의도였다고 전했다.

한편 교황은 “가톨릭교회에서 여성이 성직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여성이 남성 아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면서 “성모 마리아는 사도들보다 위대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또한 가톨릭교회는 교회를 여성적 차원으로 보면서 “그리스도는 교회, 즉 여성과 영으로 결합한다”고 말했다. 여성은 교회처럼 구원이 좀 더 충만한 곳이어서 사탄이 집중적으로 공격했으나, 룻과 유딧과 같은 여성 영웅들에게서 보듯이 하느님은 여성들을 돌보셨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교황은 ‘독특한 철학으로서의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페미니즘은 그것을 옹호하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어떤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것이 오히려 여성들을 보복적인 투쟁의 장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여성은 그보다 훨씬 더한 가치를 지닌다.”

교황이 말하는 여성적 가치는 모성애와 부드러움의 가치다. 교황은 “만약 교회가 여성이라는 풍요로운 자산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남성 우월적 사회, 근엄하고 경직되고 결코 성스럽지 못한 사회로 변모될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류가 매우 심각한 변화를 겪고 있는 이 시기에 복음의 정신으로 무장된 여성들이 인간성 상실을 막는 데 큰 공헌을 할 수 있다”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사도적 서한인 <여성의 존엄>(1988)이나 <남성에게만 유보된 사제 서품에 관한 교서>(1994)의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여성은 존엄하지만, 여성을 직무사제직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하느님의 계획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에서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천주의 모친이시며 교회의 어머니이신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께서 사도의 고유한 사명을 받으신 것도 또한 직무 사제직을 받으신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은 여성의 사제 서품 불허가 여성의 존엄성 격하를 의미하거나 여성에 대한 차별로 간주될 수 없음을 명백히 보여 줍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주의 주인이신 주님의 지혜에 속하는 계획에 대한 충실한 순종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교회 질서는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역사적 변형에 따른 교회법적 규정에 따른 것이기에, 교황령 상실을 ‘은총’으로 고백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성령이 어떤 모습으로 교회개혁의 불길로 작용하실지 예측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교황은 이전 교황과 확연히 다른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지금은 교황 개인의 겸손한 삶을 드러내고, 가장 가난한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있지만, 어느 순간에 굳센 믿음을 지닌 어떤 여인의 이마에 성유를 바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한편 여성사제 허용 문제에 앞서 선결되어야 하는 것은 사제직 그 자체가 여전히 권력을 의미하는 관행을 개혁하는 일이다. 이미 교황은 먼저 겸손과 섬김의 자세로 모범을 보임으로써 사제들에게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봉사직으로 사제직 자체가 변화되지 않는 한, 여성사제는 여성들의 권력 참여 확대 이상의 의미를 담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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