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신학 - 이미영]

예전에 함께 주일학교 교리교사 활동을 했던 선배가 병원에 입원했다기에 병문안을 다녀왔다. 선배는 지난밤 우리가 주일학교 여름 캠프를 준비하던 그 시절의 꿈을 꿨다며, 이맘때면 항상 여름 캠프가 생각난다고 했다. 봄에 캠프 장소와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몇 달을 꼬박 여름 캠프 준비로 보내고, 대학생들은 여름 방학을, 직장인들은 1년에 며칠뿐인 여름 휴가를 주일학교 여름 캠프에 온전히 바쳤으니, 그 시절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여름 캠프 말고 다른 여름의 기억이 없긴 하다.

물놀이, 추적놀이, 캠프파이어, 레크 댄스 등 매번 일정한 틀이 있지만, 작년과는 다른 프로그램을 쥐어짜며 조금이라도 재미있는 추억을 아이들에게 선물하고자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작 아이들은 극기훈련이라도 온 듯 빡빡하게 정해진 프로그램을 따라가느라 힘들었을 것 같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신앙의 의미와 기쁨을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는 멋진 캠프를 선물해주고자 최선을 다했다.

교사들뿐만 아니라 담당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에게도 잊지 못할 시간이었을 것이다. 한 번은 학생들에게 별빛 아래 특별한 성찰과 고해성사의 시간을 갖게 해주려고 한적한 원두막에 고해소를 차려놓았는데, 미처 모기장이나 모기향은 준비해 놓지 않아 고해성사를 주던 신부님은 몇 시간을 모기에게 무방비로 피를 뜯긴 일도 있었다.

아이들의 간식과 식사준비뿐만 아니라 체하는 아이들을 위해 수지침까지 놔주시던 든든하던 자모회 어머니들, 몸뻬를 입고 아이들과 같이 개울에서 물놀이하던 수녀님도 잊을 수가 없다. 초 · 중 · 고등부 여름캠프를 연속으로 1주일 동안 진행하던 교사들의 땀에 전 티셔츠가 쉰내 나고 쭉쭉 찢어졌던 기억은 그 시간의 힘듦보다는 깔깔거리며 웃던 즐거움의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아찔했던 순간들도 많다. 산에서 오리엔티어링*을 하던 한 조의 아이들이 길을 잃고 사라졌다가 인근 주민의 트럭을 얻어 타고 한참 만에 나타난 일, 뱀이 출몰하던 시골 분교에서 백반과 막대기를 들고 뱀을 쫓던 일, 쉬는 시간에 돌을 던지며 놀던 아이들이 돌에 맞아 응급실에 데려가 이마를 꿰맨 일, 갑자기 집중호우가 내려 캠프장 주변으로 산사태가 일어나고 전기도 끊겨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렸던 일 등 캠프와 관련한 사건과 사고들도 제법 있었다. 자칫하면 대형사건이 될 뻔했던 일들도 그야말로 ‘하느님이 보우하사’ 다행히 가볍게 지나가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 오리엔티어링 : 자연 그대로의 산야에서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하여 일정한 중간 지점을 통과하여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는 것을 겨루는 경기)

▲ “지금 돌이켜보면 아이들을 위한다는 여름 캠프가, 사실은 준비하는 교리교사들을 위한 공동체 형성의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목표를 가지고 하나 되어 함께 기도하고, 자신의 재능을 나누며, 서로의 부족함보다는 함께 나누는 즐거움을 깨닫던 시간이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자료사진)

재미없는 본당 생활… ‘거리 두기’에 익숙해진 결과 아닐까?

우리는 왜 그렇게 여름 캠프에 전념했을까? 내가 학생일 때 참여했던 여름 캠프를 생각해보면, 교리교사들이 준비한 어설픈 여름 캠프보다는 살레시오회 수녀님과 수사님들이 전문적으로 진행했던 체계적인 여름 캠프가 더 기억에 많이 남고, 정해진 프로그램이 아닌 무전여행식으로 우리가 계획을 세워 목적지까지 찾아가며 다양한 상황을 만나던 여름 캠프가 더 인상적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막상 교리교사를 할 때에는, 매번 교리실에서 진행하는 교리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먹고 자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름 캠프를 통해서 더 친밀해지고, 그렇게 여름 캠프를 함께 다녀온 후에는 한결 밝아져서 성당에서 무언가 열심히 해보려고 의욕에 넘치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경험’ 때문에 여름 캠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아이들을 위한다는 여름 캠프가, 사실은 준비하는 교리교사들을 위한 공동체 형성의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목표를 가지고 하나 되어 함께 기도하고, 자신의 재능을 나누며, 서로의 부족함보다는 함께 나누는 즐거움을 깨닫던 시간이었다. 직장 일로 교리수업을 자주 빠져서 밉던 선배도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캠프 준비하러 나올 만큼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뺀질거리며 일 안 한다고 얄밉게 생각하던 후배도 여름 캠프에서는 자기 담당을 책임지고 해내는 걸 보면 믿음직하게 여겨졌다.

그렇게 몇 달을 부대끼면서 우리는 서로 깊이 이해하는 친구와 가족이 되었다. 힘든 시간 속에 우리의 기쁨은 더 커졌다. 이제는 각자 가정을 꾸리며 흩어져 살지만, 그래도 서로 잊지 못하고 가끔이라도 만나려고 한다. 공동체란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닐까?

신앙 안에서 공동체의 기쁨을 맛볼 수 있던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보면, 지금 본당에서의 신앙생활이 재미없는 이유는 그만큼 나를 공동체 안에 내어놓고 함께 나누는 깊은 친교의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기도와 전례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면서 울고 웃는 친밀한 감정의 나눔이 오가는 그런 구체적인 친교의 체험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서로 폐 끼치지 않는 거리 두기의 관계에 익숙해지면서 신앙생활도 하느님과 나의 개인적인 만남으로만 폭을 좁히다 보니, 관계 안에 이뤄지는 하느님과의 친교를 현실 안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올해 처음 성당 여름 캠프를 떠나는 큰 아이는 벌써부터 짐을 싸며 잔뜩 설레고 있다. 생태 캠프로 진행한다니 하느님의 창조 신비를 실컷 맛보고 왔으면 좋겠다. 태안에서 해병대 캠프를 떠났던 아이들이 사고를 당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며 단체 캠프에 대한 걱정이 앞서지만, 신앙 캠프는 정신무장이나 복종을 훈련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 공동체를 체험할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기에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래전에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던 여름 캠프의 기억이 그러했던 것처럼. 올여름, 각 본당에서 캠프를 떠나는 모든 이들이 안전하고 기쁘게 좋은 신앙의 추억을 많이 만들고 오기를 함께 기도한다.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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