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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난영, 이웃과 나누는 예술, 15층 전시회[인터뷰] 아파트 복도를 갤러리로 바꾸는 화가, 이난영 씨

옆집에 화가가 살면, ‘티’가 날까? 그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그의 집에 놀러가 방안 가득한 화구를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까? 경기도 고양시 샘터마을 3단지 주민들은 새로 이사 온 이웃이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는 걸, 그가 이사 온지 채 한 달이 되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 복도와 엘리베이터에서 전시회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화가 이난영 씨는 세 달 전, 샘터마을 3단지로 이사 왔다. 처음 만난 아파트는 삭막함 그 자체였다.

“도시가 너무 낯설었어요. 게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풀 한포기 없다는 게 견디기 힘들었죠.”

이사 온지 4일 만에 푸른빛으로 가득한 <바다와 혹등고래>를 그려 그가 사는 15층 복도에 전시했다.

“어르신들이 많이 사는 임대아파트라 혹시 뭐라 하시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좋아해주셨어요.”

   
▲ 15층 전시회 앞에서 이난영 씨 ⓒ문양효숙 기자

청소하는 아주머니도, 순찰하던 경비아저씨도 “그림이 있으니 한결 예쁘다”며 좋아했다. 난영 씨는 ‘15층 전시회’를 계속했다. 엘리베이터 안에도 작은 풀꽃 그림을 그려서 걸었다. 전단지를 돌리던 이가 ‘마음이 정화되었습니다’라는 메모를 그림 옆에 붙였다. ‘어두웠던 복도가 한층 환해보이네요’, ‘고맙습니다’라는 메모가 이어졌다. 택배 기사, 방문객, 이웃들이었다.

15층 전시회를 준비하는 글에서 난영 씨는 “예술은 우리 이웃과 나눠야 하고, 그것은 가능하다”고 썼다.

“미술관의 문턱은 생각보다 높고, 그곳에는 우리네 이웃이 없다”는 생각이 제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술’은 우리네 이웃과 나눠져야 하고, 그것은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미술과 대안적 전시공간이 그리도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그런 흐름조차도 미술인, 혹은 교양인, 지식인들만을 위한 장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다 열린 전시는 정말이지 누구나 함께하고 나눌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 아파트 경비아저씨도, 청소하는 아주머니도, 퀵서비스 하시는 분도, 우체부 아저씨도, 혼자 사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그들의 어린 손자손녀도, 불륜 커플도, 삶이 고단한 청소년들도, 미술 전시회 따위에 갈 만큼의 여유가 없는 분들도 모두 관객으로 초대할 수 있는 그런 전시회. 저는 그런 전시회를 나도 모르게 꿈꾸고 있었나 봅니다. (이난영, ‘아파트 15층에서 열고 있는 15F 전시. 저는 행복한 예술가입니다’ 중에서)

   
▲ 15층 전시회 포스터(왼쪽)와 엘리베이터에 전시한 그림 (사진 제공 / 이난영)

그는 20대를 평화운동단체 ‘개척자들’에서 보냈다. 경기도 양평에 있는 개척자들은 다양한 이들이 공동체를 이뤄 살면서 분쟁지역이나 재난지역에 달려가 평화교육을 실시했다. 난영 씨는 평화교육 자료에 삽화를 그리면서 미디어 관련 일을 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동체 생활은 행복했지만, 난영 씨에게는 어려운 점도 있었다.

“공동체 생활은 기본적으로 일이 많죠. 워낙 사람들이 많으니 밥 해먹는 것도 일이고 회의도 많고요. 그림을 많이 못 그렸어요. 기본적으로 갈등을 만드는 타입은 아닌데, 사람마다 왜 절대로 빼앗겨서는 안 되는 게 있잖아요. 저한테는 그게 그림이었어요. 업무가 워낙 많고 사람은 적어서 때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많았는데, 그걸 거부하고 그림 그리고 싶다고, 그림 그리면서 살고 싶다고 주장했죠. 투쟁이었어요.”

양평에서 7년을 지낸 난영 씨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공동체를 떠났다. 아무 제약 없이 그리고 싶은 만큼 그림을 그리고, 예술작품 만들고, 그것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스스로 “사랑받았다”고 말할 만큼의 애정이 서렸던 공동체를 떠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건, 외롭지 않을까?

“음, 개척자들에 있을 때의 외로움과 여기서의 외로움은 종류가 조금 다른 거 같아요. 개척자들에 있을 땐 예술가의 사고와 세계를 몰라준다 싶어 외로웠어요. 너무 좋은 사람들인데 나만 혼자인 것 같았죠. 지금은 혼자 있으니 고립감을 느낄 때는 있지만, 그래서 더 이런저런 전시계획을 세우고 그림을 그리려고 하죠.”

   
▲ 아파트로 이사와 처음 그린 그림 <바다와 혹등고래> ⓒ문양효숙 기자

그는 스스로를 더 고립시키고 더 외롭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자기만의 길을 열고 싶고, 그러기 위해 마음의 힘을 더 기르고 싶다고 말이다.

스스로 ‘내 길을 찾고자 필사적인 사람’이라는 이난영 씨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사람’이 자기 정체성이었다고 말한다.

“언니 둘에 막내였는데 집이 무척 어려웠어요. 부모님이 시장에서 장사를 하셔서 집에 항상 혼자 있었죠. 그러니까 할 수 있는 게 그림 그리는 것 밖에 없었어요. 내성적이고 말도 없는 아이가 그림을 그리면 칭찬받고 주목받으니까, 그게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림만이 그를 그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는 “그림 그리는 것에 집착했던 거 같다”고 말한다.

난영 씨는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고등학교는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검정고시를 쳤다. 자신이 살 길은 그림밖에 없었기에 미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재수학원과 화실 비용을 집에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학원 청소를 하며 입시를 준비했다. 화장실 청소를 한 후 고무장갑을 낀 채 수업을 듣고 뛰쳐나오는 또래들과 맞닥뜨리곤 했다. ‘저 아이들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다르다’는 걸 온몸으로 깨달았다.

“그때 절망하거나 포기하고 싶진 않으셨어요?”
“음, 낙담할 때는 있었는데, 안 갈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왜냐하면 그것밖엔 길이 없으니까요. 오히려 그런 상황이 제 열정에 불을 지폈던 것 같아요.”

   
▲ 이난영 씨는 장영식 작가가 찍은 밀양 어르신들의 사진을 스케치로 남겼다. ⓒ문양효숙 기자

시험을 치르고 한 국립대학 서양화과에 들어갔다. “강의실 안에 햇살이 쏟아져 이젤이 빛을 받는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할 만큼 설레던 미대였지만 한 달 만에 그만뒀다. 친구들과 동화되기도, 교수가 가르치는 방식을 받아들이기도 어려웠다.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나 봐요. 대학 1학년생이 하는 이야기 주제가 화장품, 옷, 나이트클럽, 이런 거였는데 저는 그 대화에 전혀 낄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교수님이 ‘자기가 그리는 방식으로 그려라’라고 하시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죠. ‘나무는 이렇게 생겼어요. 이렇게 그려야 해요’라고요. 그런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나무도 있고 저런 나무도 있지 않나 싶었던 거예요. 그리는 방식도 자유고. 저는 제가 예술가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어느 날, 수업시간에 받은 과제에서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그림을 찢었다. 열정이 넘쳤기에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담당 교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낙제점을 줬다. 그는 학교를 나왔다. 일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140만원을 들고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난영 씨는 요즘, 도시가 건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이 세계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정말 많다고 느껴요. 이야기가 너무 많아 한 때는 외출하기 전에 심호흡을 해야 했죠. 힘들지만 그게 영감이 돼요.”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도 그는 외로운 풍경에 특별히 마음이 건드려진다.

“요즘엔 경비아저씨들 생각을 많이 해요. 늘 보이니까. 그게 뭐 어렵나 하겠지만 제가 봤을 땐 절대로 그 나이에 하실 일이 아닌 거예요. 아파트 경비는 보통 24시간 맞교대거든요. 누울 곳도 없고 작은 의자랑 화장실 한 개가 다인 공간에서요.”

그래서 난영 씨는 조만간 경비아저씨를 위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누군가가 버린 소파에서 낮잠을 자는 모습, 비 오는 날 우비를 걸치고 순찰을 도는 모습 등이 애잔한 풍경으로 마음에 남는다 했다.

   
▲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요.” 화가 이난영 씨 ⓒ문양효숙 기자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초인종이 울린다. 이웃 어르신 한 분이 “여길 너무 예쁘게 해줘서……” 하며 작은 호접란 두 개를 선물한다. 난영 씨는 감사하다며 받고는 베란다로 가져간다. 베란다에는 화분이 가득하다.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둘러보니 베란다뿐 아니라 현관문 앞에도 가지와 파를 비롯해 이름 모를 꽃들이 자라고 있다. 그의 15층 전시회에는 언제나 한 귀퉁이에 풀들이 자리 잡고 있다. 엘리베이터에도 언제나 풀을 그린다고 했다.

“풀이 아름답잖아요. 양평 공동체에 있을 때 지내던 방이 고시원보다도 작았는데 거기서 식물을 하나 키웠어요. 그 아이가 어떤 아이였냐 하면요. 아주 작은 아이였는데 겨울에 꽁꽁 얼어서 죽은 줄 알았거든요. 설마 설마 하는 맘으로 키웠는데 봄이 되자 싹을 틔우는 거예요. 감동받았죠. 아주 많이. 그 아이랑 함께 지낸 시간이 정말 소중했어요. 그러면서 식물들의 세계에 눈을 조금 뜬 것 같아요. 그 아이가 지금도 저 베란다에 있어요.”

꽃은 자신이 꽃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애써 알리려 하지 않아도 누구든 그가 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이 꽃의 존재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난영 씨에게 그림은 직업이기보다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는 그림으로 울고 웃으며 분노한다.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들에 그림으로 대답하고, 자신의 삶의 공간에서 그림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그러니 누구든, 그가 그림 그리는 사람임을 자연스레 알 수 있다. 그의 베란다와 현관 앞에서 빛나는 꽃과 풀처럼 그는 오롯이 그림 그리는 이난영으로 존재할 뿐이니 말이다.

* 이난영 작가 홈페이지 www.leenanyoung.com

   
▲ 이난영 씨는 자신이 살아가는 곳에서 전시회를 열고 주변인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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