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청춘일기 - 여경]

ⓒ여경

여행을 ‘낯선 곳을 향한 이동’이라고 했을 때, 인도는 그러한 여행의 목적에 가장 잘 부합하는 여행지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게 되면 달라진 언어와 사람들의 얼굴과 음식, 그곳을 채우는 온도와 냄새에 이국임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삶의 습관에 있어서 강렬하게 부딪히는 경험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인도는 나에게 모든 측면에서 철저하게 이국이었고 타지였다. 어느 것 하나도 낯설지 않은 것이 없던 곳. 인도에서의 나날들은 모든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시간이었다.

네팔에서 인도 국경을 넘어 처음 도착한 도시는 바라나시였다. 힌두교 신앙의 뿌리라는 갠지스 강이 흐르는 곳,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 그런 이미지를 마음에 담고 가서였는지 새벽 3시에 야간버스에서 내려 마주한 바라나시는 충격적이었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었지만,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번잡함과 시끄러움과 더러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은 어디인지 보이지도 않고, 골목길은 미로처럼 복잡하고 온갖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 충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졸음과 싸우며 나는 나의 동행자의 뒤꽁무니를 따라 숙소로 향했다. 그렇게 좋거나 싫거나, 나는 새로운 여행지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꽤 많은 것들에 적응해야 했는데, 그 ‘적응’이라는 것에는 다르게 배치되고 구성된 공간에 익숙해지는 것은 물론, 새로운 삶의 문법을 익히는 것도 포함되었다. 인도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익혀나가야 했던 것이다. 인도라는 나라의 삶의 방식은 지금까지 여행했던 어느 나라의 것보다도 생소한 것이어서 나는 매순간 부딪혔다. B를 기대하고 A를 행했지만 언제나 C나 D가 나왔다. 나는 매번 당황하고 또 때로는 화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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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거스름돈이 없다며 대신에 비스킷을 준다거나, 아예 팔지를 않는다거나, 이마에 무작정 티카(이마에 찍는 붉은 점)를 찍어놓고 돈을 달라고 한다거나, 기차 좌석을 한 자리만 주고서 두 사람이니까 두 사람 값을 내라고 한다거나 하는 경우들이다. 그 과정에서 나의 도식이 언제, 어디서나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오랫동안 내 몸에 박혀있던 나의 도식에 대한 확실성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C와 D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에게 거스름돈이나 비스킷이나 같은 값이니 동일한 것이겠거니(물론 사용가치가 다르지만 그들은 이 사실을 개의치 않아 하는 듯했다) 생각하게 되고, 티카가 의미하는 축복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헐값이 아니겠느냐 여유도 부리게 되고, 좌석(재화)이 아닌 사람으로 값을 매기는 게 더 옳은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나를 당황시키는 것들에 익숙해지고 또 초연해지기도 하면서 비로소 여행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나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는 상인들과 실랑이를 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서는 여유롭게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인도는 정찰제인 것이 거의 없어서 매번 흥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상호 간의 대화가 필수적이다. 돈을 아끼려는 배낭여행객과 더 비싼 값에 팔고 싶어 하는 상인 사이에 가격이 왔다갔다 하다보면, 상인은 한국에서 왔느냐 묻고, 한국 돈으로 이게 얼마나 한다고 깎느냐 하고, 나는 대학생이라 돈이 없다 하고, 그러면 나도 대학에 가고 싶다고 말하거나, 무엇을 공부하느냐 하는 것들을 물어오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 짧지만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식의 만남과 대화가 생겨나니 조금씩 긴장이 즐거움으로, 두려움이 반가움으로 바뀌어갔다. 강가를 따라 산책을 하면서 새로이 만나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뱃사공으로부터 힌두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면서 나는 나의 새로운 여행지 속으로, 인도라는 공간 위에서의 삶 속으로 마음을 풀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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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낸다는 것은 또한 내 안에 굳어져 있던, 확실하기만 했던 것들을 무너뜨린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인도 사람들은 내가 여태껏 구축해왔던 분류법과는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라나시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갠지스 강이 성스럽다고 말하면서 그곳에 쓰레기를 버리기도 하고, 빨래를 하기도 하고, 물소의 몸을 씻기고, 또 그 바로 옆에서 목욕을 한다는 것, 시체가 활활 타오르는 화장터 옆에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가 있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삶과 죽음, 깨끗함과 더러움, 성과 속의 경계가 없었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이분법은 인위적이고 임의적이지 않은가? 오히려 진리를 가리는 데 사용되지 않는가? 그렇게 생경하고도 적나라한 인도라는 나라는 한시도 나를 쉬게 하지 않았고, 나는 그 속에서 많은 것들을 깨뜨리고 새로 정립해야 했다. 물론 그 시간들은 괴로웠지만 즐겁기도 했다.

그러니 알게 모르게 나는 인도를 거쳐 오면서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을 것이다. 굳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주변인들이 “분위기가 바뀐 것 같네!”라고 건넨 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분명 나는 이전과는 다르게 감각하고 다른 강도로 반응하고 있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한국은 너무 달라진 게 없었고, 마치 시차 적응을 겪듯 나는 또 벅찬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점점 한국이라는 땅에 다시 적응해가고 있는 나를 보면 조금 슬퍼지기도 한다.

낯선 곳으로의 이동이 여행이라고 할 때, 그것은 익숙해진 것들과의 이별일지, 혹은 낯선 것의 획득일지, 아니면 그 어떤 쪽도 아니라 그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뿐인 건지? 꽤 오랫동안 시차에 시달렸지만, 그 또한 이제 익숙해졌다 생각했던 낯선 것들과 다시금 멀어지면서 희미해지고 있다. 여행으로부터 돌아오고 나서 여행 기간만큼의 시간이 또 지난 지금, 그때 나를 질문 속으로 빠뜨리던 얼굴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시달릴 수 있다면 얼마든 더 시달리겠다 다짐하며, 이 지상에서의 멀미증이 계속되기를, 그리고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 본다.
 

 
 

여경 (요안나)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학생. 삶, 사람, 꽃, 벗, 별, 꿈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울림이 예쁜 말들에 이끌려 국어국문학과에 가게 되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고 이를 위해 문학과 예술의 힘을 빌리려 한다. 시와 음악과 그림, 나무, 물이 흐르는 공간,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고향 바다를 닮아 평온하고도 깊고 강인한 사람이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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