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지원센터 · 지금여기 공동기획] 예수를 따르는 경제, 사회적기업 5
커피향 나는 지적장애인들의 일터, 그라나다 보호작업센터

하루 일을 마친 이들이 인사를 나누느라 건물 입구가 소란스럽다. “내일 또 보자”는 정겨운 말투만 들어서는 하굣길을 맞은 학교 같기도 하다. 서울 가양동에 위치한 이곳은 지적장애인들이 일하는 사회적기업, 그라나다 보호작업센터(원장 유점화)다. 언뜻 작은 숲처럼 보이는 구암근린공원을 정원으로 삼은 그라나다 보호작업센터는 건물 1층에 테라스가 딸린 카페를 운영하고, 2층에선 우편물 발송업무와 쇼핑백 제작 등을 위한 임가공 작업장이 마련돼 있다.

‘그라나다’라는 이름은 센터를 운영하는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와 관련이 있다. 아픈 이들의 주보성인 천주의 성 요한이 병들고 가난한 이웃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던 곳이 바로 스페인 남부에 위치한 도시 그라나다이다. 그라나다의 주민들은 지금도 천주의 성 요한을 ‘가난한 자의 아버지’라 부르며 기억한다고 한다.

본래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가 운영하는 늘푸른나무복지관에서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직업재활프로그램을 열었는데,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규정에 따라 2~3년 후에 다른 복지기관으로 옮겨야 했다. 더 많은 장애인들의 참여 기회를 위한 규정이었겠지만, 실제로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환경이었다. 고심 끝에 수도회는 장애인 부모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2007년 늘푸른나무복지관 건물에 그라나다 보호작업센터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직업재활프로그램에서 해왔던 단순한 임가공 작업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1층에 있던 매점을 과감히 없애고 카페로 탈바꿈시켰다. 카페 운영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주문과 음료 제조, 손님맞이, 테이블 정리, 설거지, 계산……. 카페가 일자리를 많이 만들 거라는 기대가 맞아 떨어졌다.

▲ 그라나다 보호작업센터의 소라 사회복지사(우측 상단)와 박충일 사회복지사 ⓒ한수진 기자

게다가 센터는 장기적인 비전을 보고 커피콩을 직접 볶기로 했다. 커피콩을 직접 볶으면 더 신선하고 맛있는 커피를 판매할 수 있고, 원두 판매과 원두 가공식품 등으로 사업을 확장시킬 수도 있다. 센터는 커피콩을 볶는 로스팅 작업에 전문 로스터를 고용하고, 그 밖의 일들은 모두 장애인들에게 맡겼다. 결점이 있는 콩을 고르고, 포장하고, 인근에 직접 배달하는 일 등은 장애인들이 책임지고 있다.

센터에서 카페를 담당하는 소라 사회복지사는 “처음 카페가 문을 열었을 때엔 도와주는 마음으로 오는 손님이 많았지만, 지금은 주변 경치가 좋아서 혹은 커피가 맛있어서 카페를 찾는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카페를 찾는 인근 지역 주민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장애인이 일하는 카페에 대한 비장애인의 인식을 바꾸려던 노력 덕분이다. 카페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선입견과 편견에 맞서 커피 제조 훈련에 많은 공을 들였다. 소라 사회복지사는 장애인이 내린 커피 맛을 신뢰하지 않는 이들에게 “비장애인이 내려도 맛은 천차만별”이라고 자신 있게 일침을 날렸다.

센터의 커피콩 볶는 솜씨는 소문이 나서, 주변의 일반 카페들에도 원두를 납품하고 있다. 카페에서는 원두를 산지별로 소량 포장해 판매한다. 편리하게 원두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티백과 드립백 형태로 개발한 상품도 인기가 많다.

그러나 아직은 센터에서 나오는 매출만으로 근로 장애인 40여 명과 사회복지사와 직업재활사 12명의 월급을 마련하기에 버거운 상황이다. 현재 노동부의 사회적일자리창출 지원 사업을 통해 사회복지사를 추가로 고용하고 있지만, 지원 기간이 끝나면 사회복지사의 숫자를 줄여야 하는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사회적일자리창출 지원 사업의 경우, 예비사회적기업은 2년까지, 사회적기업은 3년까지 정해진 인원의 인건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소라 사회복지사는 “장기적으로는 센터에서 운영하는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어야 근로 장애인의 급여를 인상할 수 있고, 센터에 필요한 만큼 사회복지사도 더 고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센터의 로스팅 사업을 담당하는 박충일 사회복지사는 그런 점에서 고민이 많다. 매출을 올리려면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생산해야 하는데, 임가공은 워낙 단가가 낮아 매출 증대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카페와 로스팅 사업에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찾아야 한다. 박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가 전문분야다 보니 시장을 분석하고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 이를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공개할 수는 없지만, 티백과 드립백에 이어 새로운 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기대를 내비쳤다.

* 그라나다 보호작업센터 인터넷 홈페이지(www.granada.or.kr)에서 그라나다 카페가 직접 볶은 커피와 관련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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