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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겸손으로 우리에게 오신 어린 양/주님 공현 전 금요일[성탄 축제 10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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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벗
등록일
2020-01-03 07:08:01
조회수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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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jpg (191135 Byte)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저분은, ‘내 뒤에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라고 전에 말한 분이시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또 증언한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께 머무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물로 세례 주라고 나를 보내신 분께서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에께 머무르는 것을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도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요한 1,29-34 참조)’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고 말한다. 이 예언대로 죄 없으신 분께서 우리 죄를 없애시려고 속죄의 양이 되셨다. 우리는 죄 없는 인간의 모습을 지닌 예수님을 본다. 우리 희망의 원천이시다. 죄가 없도록 우리를 이끌어 준다. 우리 구원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은, 우리 안에 커다란 희망과 기쁨을 일으킨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이다. 하나는 억울한 죽임 당한 거고 다른 하나는 생명의 활력을 주는 모습이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이를 다 갖춘 것일 게다. 이 어린양은 우리 죄로 억울하게 죽으셨다. 이로써 그분 운명이 끝났다면, 우리는 하느님 선하심을 믿을 수 없으리라. 그러나 그분께서는 오로지 부활로 그 선하심이 드러났고, 궁극적으로는 사랑이 악을 이기는 힘임을 만천하에 보이셨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한다.

사실 이 말은 예수님 따르는 믿는 이들에게는 마치 기쁨의 상징일 게다. 그러나 예수님을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그분을 수난과 죽음으로 몰아가는 빌미가 되었다. 믿지 않는 이들은 그리스도 신자인 우리 모습을 통하여, 우리가 믿는 예수님 모습을 그린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참 삶을 살지 못할 때, 세상 사람들은 이를 빌미로 삼아, 예수님을 또다시 죽음으로 몰아갈 게다.

반대로 우리가 사랑을 실천할 때,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사랑이심을 알게 되리라.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이 기다렸던 메시아를 만났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는 예수님을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며,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고백했다. 우리 구원은 예수님에 의해 드러난 하느님 사랑을 깨닫고, 선포하는 것이리라.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어린양으로 우리에게 오신다.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 세상에 묵묵히 걸어오시는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 걷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할게다. 예수님께서 세상으로 걸어오시는데, 우리는 그저 하늘만 쳐다보며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우리가 현세에 사는 한 죄 짓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한순간도 우리 욕망을 잠들게 하지 않기에. 그러나 하느님을 믿는 이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기에, 끊임없이 자비와 사랑의 삶을 살아야만 하리라.

이렇게 요한은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다시금 되새긴다. 그분께서는 인류 구원을 위한 자신을 희생하셨기에. 이것이 그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이자, 삶 자체였다. 예수님의 이러한 희생은 인간 사랑의 표현이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낮은 자리에 먼저 찾아드는 겸손만이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사랑일 게다.

작성일:2020-01-03 07:08:01 183.104.33.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