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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통은 나눔에서 함께하는 기쁨으로/12월 21일

닉네임
늘벗
등록일
2019-12-21 04:44:58
조회수
652
첨부파일
 7.jpg (266283 Byte)

우리는 어려움이나 고통을 다른 이에게 드러내는 것은 약한 모습이라 여겨, 가끔은 고통이 있어도 없는 양 처신하기도. 어쩌면 힘든 일이나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혼자 감당한다는 게 자신에게 더 큰 상처를 줄지도. 그러기에 고통이나 슬픔 등은 혼자만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 아닐 수도 있을 게다. 때로는 이것들은 함께 나누면 잘 풀린단다. ‘사람 인(人)’이라는 게, 두 사람 서로 기댄 모습이라나. 사람이기에 기대야 하고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사람이란다.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었을 때 그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그녀는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이 제게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하며 뛰놀았습니다. 참 행복하십니다. 주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39-45 참조)’

충실한 조언자, 상담자 또는 인생의 안내자의 뜻으로 ‘멘토’(mentor)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이 말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odyssey)에서 유래되었다. 오디세이가 갑자기 트로이 전쟁에 나가게 되자, 절친한 친구이자 신하인 멘토에게 자신의 집안과 아들 텔레마코스의 교육을 부탁했단다. 그리하여 그는 텔레마코스의 상담자가 되어 현명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었다나.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신 마리아는 세례자 요한을 잉태한 엘리사벳을 찾았다. 이런 의미에서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멘토일 수도.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길을 위해 요한을 준비하셨듯이, 마리아를 위해 엘리사벳을 택하셨다. 그녀를 통해 하느님만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해 주시는 분이심을 마리아가 깨닫도록 이끄셨으리라.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만나 비천한 자신에게 일어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하느님의 뜻임을 확신했을 게다. 또한 그녀는 먼 인생길 걸어온 이로 어려움과 온갖 오해와 경멸을 슬기롭게 다스리는 법을 어린 마리아에게 들려주었으리라.

사실 마리아는 뜻하지 않게 잉태한 처지이니 불안과 초조함으로 숨도 크게 쉬지 못했을 게다. 그런 마리아를 그녀는 따뜻하게 맞이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얼마나 대단한 위로냐? 그렇게 사촌지간의 두 여인은 유다 산골에서 구세사의 꿈을 키웠으리라.

이렇게 누구나 인생의 멘토가 있으면 한다. 대부대모라도 좋고 자신을 이해해 주고 신앙과 삶의 지혜를 나눌 이라면 누구라도. 그 만남은 수다를 떨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보다 진지하게 삶을 이야기하고, 주님 뜻을 가려내 찾고, 어떻게 사는 게 올바른 것인지를 나누는 만남이니까. 이런 나눔에서 삶의 폭이 넓어지고, 믿음은 깊어질 게다. 지금 내 인생의 진정한 멘토는?

삶에 지친 우리도 때로는 휴식 공간을 찾아 나서자. 누군가가 그리워 질 때에 그를 만날 수 있도록 여유를 만들자. 믿음의 사람이 가끔 찾는 피정을 하며 그분과 대화의 시간을 가지자. 지난 일들을 묵상해보고 다가올 일들을 차분히 준비하는 시간을 만들자.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려고, 인간의 몸을 취하시어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는 성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작성일:2019-12-21 04:44:58 183.104.33.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