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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나라로의 지름길은 오직 기도뿐/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닉네임
늘벗
등록일
2019-11-29 04:06:48
조회수
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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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jpg (307829 Byte)

닭싸움을 즐기는 상인이 있었단다. 그는 거금을 투자해 싸움닭 기르는 이에게 자신의 닭을 부탁했다나. 열흘 후 그가 물었다. “닭이 싸울 만한지요?” “아직은 아닙니다. 자기 힘을 너무 믿습니다.” 다시 열흘 뒤에 상인이 묻자, 조련사의 답이다. “아직도 아닙니다. 닭만 보면 싸우려 덤빕니다.” 또 열흘 뒤의 답이다. “아직도 안 됩니다. 지금도 상대를 보며 힘만을 과시합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자, 조련사가 말한다. “거의 됐습니다. 이젠 교만하지 않고, 함부로 싸우려 덤비지 않고, 마치 나무로 깎아 놓은 듯합니다.” 이 닭이 싸움판에 ‘꼿꼿이’ 서기만 해도, 다른 닭들은 감히 덤비지 못하고 슬슬 뒤로 물러났다. 한낱 미물인 닭도 준비하고 훈련하면, 이렇게 강자로 바뀐다. 우리도 살아남기 위해서 종말을 얼마만큼 준비하며 살고 있는지. 우리 인생도 주님의 섭리 안에서 훈련되면서 성장되고 완성되리라. 따라서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겠다.

이러하니 슬프다고 슬픔에, 기쁘다고 기쁨에 메이지 말아야 할 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인생이 덧없다고 말해서도 안 되리라. 슬픔의 순간, 기쁨의 순간에도 우리 삶의 한 중심을 관통하는 영원한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말씀이다. 모든 게 다 지나가고 사라져도, 이 말씀과 함께 우리는 영원을 살게 될 테니. 세상의 그 숱한 만남, 계절의 변화도 말씀으로 창조되었기에.

말씀 안에서 이 모든 것은 하느님 나라와 연결되리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시대의 징표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단다. 주변에는 읽을 수 있는 시대의 징표가 너무나도 많이 깔려 있는데, 이를 바로보고 해석할 줄 아는 눈은 모두에게 주어진 것 같지 않다. 사실 예루살렘 멸망은 마치 세상의 종말과 같았다. 우리는 이를 새로운 하느님 나라가 건설될 결정적인 계기로 봐야 한다.

‘“무화과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돋은 잎을 보고 여름이 온 줄을 알게다’(루카 21,29ㄴ). 나무는 계절이 바뀌는 것을 알려주니 늘 새롭다. 우리 삶에서 하느님께서 일으키시는 변화들에 민감해야 한다. 유다인들은 무화과나무에 여린 잎이 돋는 것을 보면서, 열매가 무르익을 여름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챘으리라.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잎사귀로 당신 나라의 때가 찼다는 것을 깨우치신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이르시는 거다.

실제로 이는 하느님 나라를 고대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각성시키고 유다인 선민사상을 탈출하게 만든다. 그래서 교회가 모든 민족에게 개방되었고 새로운 형태의 하느님 나라가 시작될 게다. 말씀은 살아 있으며 삶의 구심점이다. 신앙인은 자신의 삶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하느님 발자취를 발견하는 이들이다. 다시 출발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종말을 준비하는 첫걸음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다가올 하느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 나라라고 믿는다. 이렇게 예수님에게 모든 왕권이 주어졌으며, 그분 나라는 세상 종말에 다시 완성될 터이니까.

사실 그 때와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지만, 그분께서는 반드시 다시 오신단다. 이는 예수님께서 직접 약속하셨다. 따라서 하느님 뜻을 헤아리는 게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본분이다. 이를 아는데 필요한 것은 기도이리라. 기도는 하느님 능력이 바로 우리 힘이 되게 하기에. 누가 뭐래도 꾸준한 기도만이 하느님 나라로 바로 들어갈 그 지름길이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이르셨다. 이처럼 하늘과 땅이 사라질지라도, 당신 약속의 이 말씀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작성일:2019-11-29 04:06:48 183.104.33.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