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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구원자 예수님/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다해

닉네임
늘벗
등록일
2019-11-24 06:36:24
조회수
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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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jpg (412617 Byte)

그리스도를 왕으로 믿고 고백하는 건 참 중요한 시대적인 과제였다. 참된 통치는 무력이 아닌 사랑임을, 참 권력은 자신을 높이는 게 아닌 낮추는 데서 오는 거니까. 전례력으로 연중시기 끝 주일은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다.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심을 기리기 위해서다. 예수님은 정치권력을 장악해 백성을 억누르는 임금이 아닌,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하시며, 백성을 섬기시는 메시아의 모습을 실현하셨다. 스스로 낮추심으로 높아지신 거다.

1925년 비오 11세 교황님께서는 이 연중 마지막 주일을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정하였다. 또한 한국 천주교회는 1985년부터 해마다 연중 시기의 마지막 이 주간을 ‘성서 주간’으로 정하여, 믿는 이들이 일상에서 늘 성경을 더욱 가까이하며 자주 읽고 묵상하기를 강력히 권장하고 있다. 하느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의 커다란 등불이자 필수 불가결한 양식이기에.

예수님은 하느님 백성을 이끌 영도자요 왕으로 우리에게 역사적 인물로 오셨다. 그러나 ‘이 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명패가 보여 주듯, 그분의 왕권은 십자가에서 펼쳐졌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 세례 때에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말씀을 주셨다. 이스라엘에서 왕의 즉위식에는 늘 두 명의 증인이 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에서는 모세와 엘리야가(루카 9,28-36) 있었다. 그러나 골고타의 즉위식에는 단지 천박한 강도 둘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시시한 즉위식에 오르실 왕은, 끝내 조롱거리가 되었단다.

그러나 이 초라한 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강도를 통해 그리스도 왕직의 진정한 사명을 주셨다. 그것은 세상 모든 적과 죄인들에게 용서를 베푸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당신 왕권으로 뉘우치는 강도를 아버지 나라로 받아들이시고, 뉘우치지 않는 완강한 자들도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 하는지 모르십니다.”라며 용서하셨다. 그리스도의 왕권은 용서와 화해를 위한 봉사 직무다. 우리가 죄를 뉘우치고 다른 이의 죄를 용서하는 것도 그리스도 왕직에 참여하는 것이리라.

우리는 믿음 때문에 더러는 짐을 안고 간다. 그렇지만 그 짐이 어둔 세상의 참 빛이라면, 아니 누군가를 살리는 생명이 된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짐을 지고 가야만 할게다. 그 길엔 빈정거림이나 조롱 따위는 아예 들리지 않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분 음성만이 들릴 뿐이니까.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믿는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고백한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왜 무력하게 왜 그리 매달리셨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왜 그리하셔야만?

사실 하늘 높은 곳에 계셨던 그 하느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으시고 빈 몸,, 정말 이해하기 힘든 동정 잉태의 극단적 모습으로 오셨고, 하느님은 그분을 다시 들어 높이셨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땅 아래 모든 조물이 그분을 주님이라 외치며 찬양한다. 그분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우리 메시아가 되셨다. 십자가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신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왕 중의 왕이셨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다. 그 위대한 죽음 때문일 게다. 자신을 비웃던 이들에게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택하셨다. 아니 인류 평화를 위해 스스로 그 길을 홀로 가셨다. 그러기에 그분은 우리의 구세주이시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우리는 그분 삶을 살아야만 할 게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자.

작성일:2019-11-24 06:36:24 183.104.33.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