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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우리는/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 둘째 미사

닉네임
늘벗
등록일
2019-11-02 06:00:51
조회수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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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jpg (206920 Byte)

‘위령의 날’은 죽은 모든 이, 특히 연옥 영혼들이 하루빨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이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세 대의 미사를 봉헌하는데 이는 스페인의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시작되었단다. 교회는 ‘모든 성인 대축일’인 11월 1일부터 8일까지 정성껏 묘지를 방문하여 기도할 것을 권장한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참조)

사실 죽음은 삶과 맞닿는단다. 그것은 죽음이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탈출하거나 인생무상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표징이 아니기에. 어쩌면 죽음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결과요 열매이니까. 더 나아가 죽음의 순간과 그 결과 따라오는 하느님 만남은 거꾸로 우리 삶을 비추는 참된 빛이리라. 그리고 우리는 늘 이 순간을 기준으로 해, 내 삶을 반추하는 거울이다.

그 빛은 우리가 겉으로만 보이는 인생의 외적 가치를 넘어서는, 내면의 진리를 드러낼게다. 주님은 이 땅에 보내신 당신의 자녀가 비록 이승에서 저 못난 삶을 살고 돌아왔다고 해서, 그분은 당신 자녀에게 분노하시고 섭섭해 하실 리가 과연 가지시겠는가? 설령 온통 죄스럽게만 보일지라도 우리는 다른 이를 주님 마음이 되어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는 게 참 중요할 게다.

비록 우리 눈에는 부족해 보이고 결점 투성이로 보이는 이도, 비록 연약함의 한계에서 나름으로 최선을 다했으리라. 이런 주님 사랑을 깨닫고 사랑의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면 빛 속에서 사는 삶이 된다. 곧 우리 인생의 멍에는 그만큼 가벼워질 것이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되는 것도, 우리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달릴 길을 다 달리고 눈을 감는 순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이도 죽음 앞에서는 불안해져 그의 믿음이 다소 흔들리기도 한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고통과 병고에 대하여, 연민의 정을 가지셨다.

특히 인간의 마지막 고통인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셨을 뿐 아니라 눈물까지 흘리셨고 당신 친히 인간의 죽음에 동참하시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우리는 믿는 이들에게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라고 고백한다. 자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주님 안에서 철부지가 된 이들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평화의 시작이다.

예수님은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이는 나에게 오너라. 내가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배워라. 그러면 안식을 얻을 것이다.’라고말씀 하신다. 죄로 찌든 우리 모습을 그분 멍에에 드릴 수만 있어도, 그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게 될게다. 그것은 질수록 편하고 그 짐은 가볍다. 고생하며 힘든 삶을 사는 이는, 가야 할 제 길이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연옥의 단련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러나 연옥의 단련을 면하는 이들도 있을게다. 예수님처럼 다른 이들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이들, 곧 벗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는 이들이다. 그들은 고통 가득한 연옥의 단련 대신, 이미 이 땅에서 단련을 받은 이들이리라. 흔히 이런 이들을 우리는 성인이라 일컫는다. 곧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이다. 그분께서 주시는 영원한 안식을 얻고자 그분 멍에와 무거운 짐을 꼭 안아야만 할게다.

작성일:2019-11-02 06:00:51 183.104.33.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