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4-26 11:11 (금)

본문영역

제목

믿음의 힘은 정의와 자비의 믿음에/연중 제27주일 다해

닉네임
늘벗
등록일
2019-10-06 04:10:45
조회수
844
첨부파일
 1.jpg (46626 Byte)

‘사도들이, “저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하고 말했다. 그러자 주님이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하더라도, 그것이 복종할 것이다.”(루카 17,5-6 참조)‘ 예수님께서는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하느님께서는 응답해 주신단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만을 유일한 주님으로 믿는 신앙인이다. 신앙은 일상을 오로지 주님께만 모든 것을 의탁하고 주님 말씀을 믿으며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이다.

신앙심은 크거나 작은 그 무엇이 아닌, 믿는 마음이리라. 믿음에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엉거주춤한 태도란 결코 있을 수가 없을게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데서 오는 믿음을 요구하신다. 오직 그 믿음에서 하느님께 온전히 승복하는 자세가 나오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확고하고 위대한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다. 다만 겨자씨만큼 작고 깨지기 쉬운 믿음이라도, 거기에서 생각지도 못한 능력이 나오고, 삶의 경이로움과 영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말씀이다. 그러한 믿음을 더해 주시도록 꼭 기도하자.

믿음은 힘이 있다. 무슨 힘이 있을까라고 생각할 게다. 그래서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산마저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사실 그 산처럼 강하다던 꿈쩍하지도 않던 그 모든 것들도, 단지 믿음 때문에 움직인 예는 얼마든지 있었으리라. 중요한 건 모르긴 몰라도 인내일 게다. 포기하지 않는 그 끈기이다. 얼마만큼 인내심을 갖고 믿는지가 중요하다.

믿음에 대한 보답은 하느님이 하시는 것이기에 언제나 준 것 만큼이나 주어진다. 그렇지만 ‘이만큼 기도했으니 이 정도는 주시겠지.’라고 생각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 그것은 다만 우리 각자의 생각일 따름이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필요로 한 것은 언제든지 주신다. 주시지 않을 때에는 분명한 그 이유가 있다. 우리가 묵상하고 찾아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잘못된 것이거나 불필요한 걸 청하는 게 아닌지를, 늘 돌아보아야만 하리라. 기도 중에 기억토록 해 보자.

실은 열심히 성당에서 미사 참례하고 기도 열심히 해도 정작 별로 변한 게 없어 보인다. 불의한 세상은 변할 줄 모르고 폭력은 여전히 도처에서 일어난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라는 제자들 호소는 우리 가슴에서 오늘도 솟구친다. 설마 우리에게 겨자씨만 한 믿음조차 없을까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어쩜 겨자씨보다 더 큰 불신이 겨자씨를 짓누르는지도 모를게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더해 달라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하고 말씀하신다. 돌무화과나무는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기에 강한 바람에도 잘 견딘다. 반면에 겨자씨는 씨앗가운데 가장 작다나.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작은 믿음도 돌무화과나무처럼 견고한 나무를 뿌리째 뽑아 바다에 심겨지도록 할 수 있는 ‘큰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담뿍 담아주셨다. 교회가 선교사들을 사목하는 이유는 만방에 복음 전파를 위한 평화의 사도인 보무도 당당한 선교사들을 격려하고 하느님 자녀로 부름 받은 소명을 잊지 않도록 하고자 함일 게다. 진정한 평화는 강제로 지키는 것이 아닌, 하느님 정의와 자비의 믿음에 더 있을게다.

작성일:2019-10-06 04:10:45 183.104.33.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