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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교황, 세상을 구원하는 제도적 도구인가前 주교황청 한국대사 성염(요한 보스꼬)

지난 11월 5일 오후 6시에 서울대교구 제기동 성당에서 안충석 신부(주례)와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의 공동집전으로 주바티칸 한국대사 성염 퇴임 감사미사를 봉헌하였다. 이 자리에서 강론을 맡은 함세웅 신부는 한 신앙인으로서 신학도로서 번역가로서 한 시대에 독재권력에 맞서 싸운 성염(65세)씨의 공로를 감사드리며, 4년 전에 그가 바티칸으로 떠날 때 “교황청에 한국민들의 요청을 전달하고 남북화해와 일치에 도움 주십사” 청하였음을 상기시켰다. 이 미사에 열리기 전에 11월 1일 오전 11시 쌍문동 자택에서 성염 대사를 만나 인터뷰하였다. 

바티칸에서 한국대사로 일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였습니까?

 

   

주바티칸 한국대사 성염 퇴임 감사미사

바티칸에서 제가 외교관으로서 맡은 역할은 국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었습니다. 서구언론은 교황의 행동거지에 대하여 항상 주목하고 있었으며, 그분이 발언한 것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언론에 수시로 보도하곤 하지요. 북한 핵 문제로 한반도 정세에 위기가 올 때 주교황청 한국대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국제사회의 긍정적인 여론을 얻기 위하여 바티칸의 장관이나 차관 등을 만나서 교황의 발언에서 우리 한반도 문제가 다루어지도록 적극 노력하는 것이지요. 무력행사가 아닌 6자회담 등 평화로운 수단을 통해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어야 하고 여하한 상황에서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원조를 계속해야 한다는 호소 등이 그런 것입니다. 제 임기 중에 공식석상에서 교황은 8번 정도 한국문제에 대하여 국제사회와 한국민에게 발언하였습니다. 이런 활동은 교황의 도덕적 정신적 권위를 인정하고, 그분의 권위를 통하여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교황청의 긍정적인 입장표명이 나오게 노력하여 국제사회가 여기에 공감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국제사회 안에서 교황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보십니까?

교황과 교황청은 우리의 선호나 인정여부와 상관없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정치사회적 제도입니다. 교황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교황청의 존재를 이미 인정한 것이므로 이제는 교황청의 힘을 우리 국익에 이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로마교황청은 역사적이고 제도적인 종교단체이며 또한 180여개 나라로부터 승인받은 국가입니다. 현재 세계적인 자유방임적 윤리 상황에서 여전히 고전적인 윤리도덕을 일사불란하고 체계적이고 제도적으로 주창하는 집단은 가톨릭교회밖에 없습니다. 교황청 없이도 사람들이 사회정의와 국제평화에 관해 말하고 행동할 수 있지만, 인류 12억의 집단을 대표하여 교황청에서 사회정의와 국제평화를 호소하고 발언할 때 그 영향력은 더욱 커집니다.

하느님이 어느 예언자를 시켜서 인류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셔도 인류에게 구원이 베풀어졌을지 모르지만, 굳이 하느님의 아들이 나자렛 사람으로 일정한 시공간에 들어오셨듯이, 역사적 사회적 차원에서 우리가 윤리도덕과 정신적 향상과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하여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성취하려면 교황청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다만 교황청이 그 역사적 형태 자체가 현재 발전된 인류사회의 진보적 체제를 따라주었으면 하는데 중세의 군주제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그러나 외교관 신분으로는 상대방 국가의 체제와 제도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 없는 것이지요.

베네딕트 16세 교황은 최근에 발표한 몇가지 문헌 때문에 ‘독선적’이라는 비판의 여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베네딕트 16세 교황은 교황선거 당시에 ‘진리’에 대한 문제에서 상대주의적 흐름을 경계하는 추기경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교황에 당선되셨다고 봅니다. 전통적으로 교황의 의무는 먼저 “성베드로의 유산”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그 맥락에서 베네딕트 교황의 등장으로 우리 아시아 그리스도인들이 기대하는 종교간 대화가 다소 소극적인 양상으로 주춤거리지 않을까 우려하는 예상이 나왔습니다. 실제로 교황은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인 피제랄드 대주교를 이집트 대사로 보내고 종교간대화평의회 자체를 문화평의회에 귀속시키기도 하였지요. 그러나 레겐스부르그 강연의 후폭풍과 유럽의 지성인들의 우려를 불식하고자 종교간대화평의회를 원상복원하고 프랑스인 토랑 추기경을 의장직에 임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슬람 문제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이슬람 신자들은 20년 전부터 숫자상으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슬람 세계에선 그리스도교 신앙을 거의 용인하지 않습니다. 유럽세계에서는 이슬람 신자들이 모스크도 짓고 성직자 생활비도 국가 종교세에서 대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럽에 사는 이슬람은 종교자유와 신앙 보호가 작동하고 있는데 이슬람 세계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자유는 왜 보장되지 않느냐는 것이 교황청의 물음입니다. 너무 일방적이라는 거죠. 역사적으로도 이슬람 세계와 자주 무력충돌을 가져온 유럽인들에게는 정치사회적으로도 이슬람이 구체적인 위협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라크 등지에서 소수 그리스도인들이 쫓겨나고 성당이 불살라지지만 이들을 보호할 방법이 없을 경우에 교황청이라는, 인류사회가 공인하는 제도적 기관에서 발언을 하고 정치적 외교적 교섭을 해야만 그 세계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안전과 신앙의 자유가 보전될 수 있습니다.


 

   
 

라틴전례의 부활을 둘러싼 여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라틴전례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전례개혁 문제로 일탈한 르페브로 주교와의 화해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유럽연합에 대한 교황의 입장과도 연관이 있지요. 교황은 유럽이 그리스도교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묶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런 차원에서 유럽을 묶는 문화적 유산 가운데 하나가 라틴어라고 생각하지요. 실제로 교황 본인이 라틴어에 능통한 분이고, 라틴어 부흥을 꾀하여 신학교에서 라틴어 교육을 강화하려고 합니다.

한편 라틴어 미사는 회고적이며 과거에 애착을 느끼고 있는 유럽인들의 바램에 조응하는 것인데, 실제로 주일 미사에 나오는 유럽교회의 신자층이 주로 노인들임을 고려한 것이지요. 그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중 하나가 라틴어 전례입니다. 그러나 라틴어를 못 알아듣는 젊은이들이나 아시아 교우들에게는 그다지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교황이 이번에 제시한 규율적 조치는 예전에는 주교의 허락을 받아야 집전할 수 있었던 라틴어 미사 전례를 사제들이 신자들의 요청이 있으면 주교의 허락 없이도 집전할 수 있도록 여지를 열어놓은 것인데, 여기서 사용될 미사경본은 트리덴틴 미사경본이 아니고 요한23세 교황이 수정한 전례서입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을 통해 발표된 “가톨릭교회만이 유일하고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여기십니까?

교황은 그리스도의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이라는 관점을 기회가 닿을 때마다 표명하고자 합니다. 종교적 상대주의를 비롯한 모든 상대주의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죠. 이를테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 신자는 온전한 진리를 발견한 사실에 감사하면서 가톨릭교회 안에서 살다 죽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신자 아닌 그리스도인들이나 비그리스도인들의 구원에 관해서는, 하느님은 구원자이심을 강조하고서 그들의 구원은 성령께서 알아서 하신다는 대답을 내놓았지요. 그런 배경에서 참 진리는 우리한테 있다는 말도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그래도 로마가 중요하다>라는 책이 나온 적이 있는데, 비토리오 메소리라는 저널리스트와 라칭거 추기경 시절의 베네딕트 16세 교황이 대담을 하신 거죠. 앞에서 하신 말씀의 연장선에서 이 말이 여전히 유효할까요?

한 가지 예만 들어봅시다. 현대 세계에서 전세계를 향해서 개인적인 윤리도덕, 사회정의와 인권, 국제평화와 경제정의를 권위 있게, 제도적으로, 필요하다면 외교적 교섭을 통해서 발언하고 촉진하고 구현할 사람들이나 집단들이 누구입니까? 훌륭한 지성인들, 유엔 사무총장, 달라이 라마 등을 거론할 수 있지만,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수세기를 두고 꾸준히 일사불란하고 논리정연한 사회적 교설을 연구하고 호소하고 우선 12억 가톨릭신자들에게나마 가르치고 앞장서서 실천할 수 있나요? 한반도에 핵위기를 야기한 북한에 인도적인 식량원조가 계속되도록 모든 교회를 움직이고 구체적으로 북한에 원조물자가 들어갈 수 있도록 방도를 찾는 일을 누가 할 수 있을까요? 개신교의 경우엔, 20세기만 보더라도, 자유주의적 조류 때문에 인류 전체의 복음화나 전세계적 차원에서 발언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훨씬 드물었습니다. 오직 교황과 교황청이 전세계를 향해 지속적으로 그런 발언을 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성아우구스티노가 인류 역사를 “하느님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으로 구분하여 도식화한 다음 그리스도교 역사는 늘 이 도식을 사용해 왔습니다. 예전에는 이 구분이 교회와 교회를 박해하는 세계, 그 다음에는 정통과 이단, 20세기에는 자본주의세계와 공산주의 세계 등으로 나누어 도식화되었습니다. 그런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이제는 모든 패권을 미국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아프간, 이라크 등지에서 무소불위하게 행사되는 저 세력의 무력행사 앞에 유럽의 지성인들은 크게 당황하고 절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머리에는 이 지상의 도성에 마주하는 하느님의 도성을 가톨릭교회에서 보기 시작하는 듯합니다. 젊은이들도 교황청을 바라보고 교황의 수요일 일반알현 때 모이는 사람들의 숫자가 요한바오로2세 교황 때보다 거의 2배에 가깝게 몰리는 현상을 그런 시각에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악을 없애는 데에 과연 교회의 권위가 여전히 필요합니까?

아우구스티노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악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고민했습니다. 그분은 현실적 악이 악마나 운명의 탓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에서 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인간이 개인적 집단적 의지로 그 악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악을 형이상학적 원리로 삼는 것은 악을 물화(物化)시키는 것이고 숙명론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을 제거하기 위해 종교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피해자 측에서 보이는 자비의 구세사적 측면’입니다. 가해자가 누구든 무릎 꿇고 빌면 피해자가 용서해 주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처형하면서 희희낙락하고 자기를 조롱하는 자들을 용서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반도의 역사나 국제 정치에서 볼 때, 악을 저지른 사람들이 잘못을 빌지 않았고, 사법적 국제법적 정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바티칸에서 대사로 근무하면서 전세계에서 자행되는 엄청난 사회악, 윤리악을 바라보면서 그 모든 악을 빨아들여 없애면서 인류사를 그래도 구원을 향해서, 공존을 향해서 끌어가는 어떤 힘, 블랙홀 같은 무엇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원자인 까닭은 바로 블랙홀처럼 인류의 온갖 악을 당신 몸에 흡수하여 없애시면서 아버지 하느님 앞에서 구원의 자비를 얻어주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웬만한 감성만 있어도 20세기와 21세기 초엽에 지구상에서 자행되는 온갖 악을 바라보면서 정신적으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실상 피살자들과 고문당한 이들이 하느님 앞에서 살인집단을 구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방법 밖에는 악을 청산할 길이 없어요. 정의와 똑같은 날개로 자비를 구해야 하는 것이지요. 가해자들에게 정의를 촉구하고, 피해자에게 자비를 청하는 것입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첫 회칙에서 ‘정치적 애덕’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모든 종교가 애덕을 강조하지만 애덕에 사회적 차원, 정의와 평화를 위한 신앙인의 노력을 결합시킨 것은 대단한 발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평화는 정의의 열매”라는 교부들의 말을 확인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대사직을 마치고 귀국하시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가요?

이번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께서 환영미사를 해주신다고 합니다. 제가 바티칸으로 떠날 때도 그분들이 환송미사를 집전해 주셨습니다. 이제 돌아왔으니 그 자리에서 그간의 활동에 관해서도 보고를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지리산에 머물면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문헌들을 번역하는데 힘을 보태려고 합니다.
 

/한상봉 2007.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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