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 안락사 허용으로 봐서는 안돼_홍석영

안락사를 주제로 한 영화 <씨인사이드>의 한 장면. <밀리언 달러 베이비> 등 안락사 문제는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국내 첫 존엄사 인정 판결은 소극적 안락사 인정과 무관


지난 2월 서울의 한 병원에서 폐 조직 검사를 받다가 출혈로 뇌손상을 입고 식물 상태에 빠진 75세 노모로부터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는 가족들의 소송에 대해,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12부는 11월 28일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 판결 요지는 이렇다.

 “환자가 다시 의식을 회복하고 인공호흡기 등의 도움 없이 생존 가능한 상태가 될 가능성이 없어 보이고, 인공호흡기 부착의 치료 행위는 환자의 상태 회복 및 개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치료로서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다고 판단된다.” “환자의 치료 중단 의사는 원칙적으로 치료 중단 당시 질병과 치료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았음을 전제로 명시적으로 표시해야 유효하지만, 질병으로 의식불명의 상태에 처한 경우 환자가 현재 자신의 상태 및 치료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았더라면 표시했을 진정한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에서 현재의 절망적 상태 및 기대 여명 기간, 현재 나이 등을 고려하면 환자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보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자 하는 의사를 갖고 이를 표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법원은 “이 판결은 적극적 안락사 및 모든 유형의 치료중단에 관해 다룬 것이 아니고 환자의 회복가능성이 없어 치료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하고 환자의 치료중단 의사가 추정되는 경우 의사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따른 인공호흡기 제거 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판결에 대해 일부에서는 소극적 안락사 인정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찬반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 생명윤리의 관점에서 볼 때, 이 판결은 소극적 안락사와 관련되지 않는다. 이 판결은 재판부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 말기 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과 관련된다. 왜냐하면 환자는 현재 회생 가능성이 매우 낮은 말기 환자이며, 이 판결에서는 그에게 제공되는 치료 수단 중 인공호흡기의 제거 여부만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예외적 수단과 불균형적 수단만을 중단 허용


교회 가르침에서 보면, 말기 환자에 대한 기본적인 간호 행위와 영양 및 수분의 공급 등 ‘정상적인 수단’(ordinary means)의 사용은 도덕적 의무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질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치료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에 말기 환자에 대한 단순한 연명 장치로서의 인공호흡기와 같은 ‘예외적인 수단’(extraordinary means)의 사용은 정당하기는 하나 의무는 아니고 도덕적으로 선택 가능하다. 정상적인 수단과 예외적인 수단이라는 구분은 16세기 스페인의 도미니카 수도회 신학자 바네즈가 도입하였고, 그 이후 생명 연장과 관련한 논의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단어 자체가 지니고 있는 모호성과 의학 기술의 급격한 발전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수단과 예외적인 수단의 구분은 불명료한 면이 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균형적 수단과 불균형적 수단이라는 구분이 제시되었다. 즉 환자의 상태를 고려하여 치료 수단들을 사용할 때 사용된 수단과 의도한 목적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존재하면 이를 균형적 수단이라고 판단하면, 이러한 균형적 수단은 계속 제공되어야 한다. 이번 판결에서도 인공호흡기만의 중단이 허용된 것이지 다른 모든 치료 행위 및 간호 행위의 중단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나중 추정이 아니라 함께 신중 결정해야


말기 환자에 대한 연명 치료 중단을 결정할 때에는 이번 판결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환자의 자율적 결정권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환자가 3년 전 숨진 남편의 연명 치료를 거부한 채 임종을 맞게 했고 또 평소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것에 비추어, 환자의 치료 중단 의사를 “추정”하였다. 따라서 과연 이 판단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더 요구된다. 환자의 자율권은 그것에 대한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에 근거하여 존중되어야 한다. 이번 경우처럼 ‘추정’을 하다보면, 환자의 의사에 반하는 성급한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있다. 이 점에서 이번 판결은 성급한 면이 있다.


이번 판결을 존엄사와 연결 짓는 견해들도 있다. 인간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 존엄사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의 견해이다. 그런데 존엄사라는 말은 낯설다. 오히려 재판부도 “자연스러운 죽음”이라는 표현을 썼듯이 자연사라는 말이 더 친숙하고 적절하다. 인간은 육체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의 죽음이 임박한 말기 환자에게 모든 치료 행위를 다 해보겠다는 의료 집착적 자세에서 벗어나 온전한 책임과 존엄성을 가지고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교회는 예외적 수단과 불균형적 수단의 중단을 허용한다. 여기서 주의를 기울일 것은 ‘허용’이지 ‘권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치료의 중단이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말기 환자에 대한 연명 치료의 중단은 환자의 자율성과 환자 및 가족 등 관련 당사자들의 양심 안에서 조심스럽게 결정되어야 한다. 이번 판결을 지나치게 일반화해서 모든 식?상태 환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유사한 사례가 생길 때마다 신중하고 꼼꼼하게 살피고, 기도 속에서 결정해야 한다.

 


안락사 관련 교회 가르침
안락사와 말기 환자 연명 치료 중단은 구분돼야


교회는 안락사에 대해서는 단호한 반대 입장을 취한다. 신앙교리성성은 「안락사에 관한 선언」(1980년)에서 안락사를 “모든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저절로 혹은 고의로 죽음을 초래하는 행위 또는 부작위로” 설명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생명의 복음」(1995년)에서 “안락사란 죽음을 조절하여, 정해진 시간 이전으로 앞당기는 것이며, 자신의 생명이나 타인의 생명을 ‘편안하게’ 끝맺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논리적이고 인간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안락사를 잘 살펴보면 무의미하고 비인간적인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죽음의 문화’가 지니고 있는 매우 위급한 증상 중 하나와 만나게 된다. 이 문화는 무엇보다도 부유한 사회 안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효율성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태도를 지니고 있고, 노인과 장애인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참을 수 없고 또 지나치게 짐스러운 일로 여긴다.”고 지적하면서 안락사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천명한다.


그러나 교회는 안락사와 말기 환자에 대한 연명 치료 중단을 구분한다.「생명의 복음」은 말기 환자에 대한 연명 치료 중단을 ‘과도한 의학적 치료’의 중단과 연결 지어 설명한다. ‘과도한 의학적 치료’ 란 “예상되는 어떠한 결과에도 부적절하거나 또는 환자나 가족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기 때문에 더 이상 환자가 처한 실제적인 상황에 맞지 않는 의학적 치료 과정”을 가리킨다. 이를 의료 집착적 행위라고도 한다. 「생명의 복음」은 “분명히 죽음이 임박하고 피할 수 없을 때, 사람은 양심 안에서 ‘비슷한 경우의 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상적인 간호를 중단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결과가 불확실하고 큰 부담이 되는 생명의 연장밖에 보장하지 못하는 종류의 치료 행위를 거부할 수’ 있다.”고 밝힌다.

 

 


홍석영/ 현재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조교수로 있으며 우리신학연구소와 가톨릭대학교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인격주의 생명윤리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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