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 정책실장 김진철 씨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 정책실장 김진철 율리아노.

지난 2012년 11월 29일 그는 교사직에서 해임됐다. 전교조 정책실장이던 2008년 주경복 후보가 출마한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애초 선관위에서 선거자금 모금에는 별 문제가 없다는 확인을 받았고, 재판 과정에서도 위법성이 없다는 판결이 있었음에도 끝내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지난 2년 간 그는 담임을 맡지 않았다. 중간에 담임이 바뀌는 혼란을 학생들에게 주고싶지 않아서였다. 대신, 수업 자료를 연구하고 정리했다. 결국 쓰일 곳을 잃었지만, 그는 “언젠가는 필요한 날이 있겠지요”라며 담담히 말했다. 교사로 발령받은 날부터 지금까지 “그래도 아이들과 있을 때 가장 행복했다”는 김진철 씨. 세상과 교실 사이에서 그가 만났던 세상은 무엇이었고, 사랑하는 학생들을 안내하고 싶었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 정책실장 김진철 씨. ©정현진 기자

전교조 결성이 이끈 교단의 길…노동현장 대신 교육민주화운동의 현장으로

천문학이나 철학, 역사를 공부하고 싶었던 그였지만, “그런 학문은 오래 공부해야 하는데, 너 같이 가난한 놈이 어떻게 벌이 없이 오래 공부를 하겠냐?”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87학번으로 역사교육과에 진학했다. 대학 1학년 기말고사 첫날이 6.10항쟁의 시작이었고, 2학기 기말고사 기간은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교직’이 간절해서 선택한 공부가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는 강의실보다 거리를 택했다. 한 때 노동현장 투신을 고민했었지만, 1989년 전교조 결성이 그의 생각을 바꿨다. 사범대 차원에서 전교조 연대 활동이 시작됐고, 교육 현장도 현장이라는 인식이 생겨나면서였다.

1991년 첫 임용고시에 응시, 이듬해 2월 26일 합격통보를 받고 나흘 뒤에 그는 덜컥 선생님이 됐다. 발령을 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학교가 속한 전교조 지회에 전화를 한 것이었다. 전교조 결성 후 1,500명이 해고돼 복직투쟁을 하고, 복직 투쟁을 하는 교사들이 또 해고되는 마당에 제 발로 찾아들어온 25살짜리 신규 교사를 두고 선배들은 ‘실핏줄’이라고 부르며 아껴줬다.

가입 못지않게 활동도 당찼다. 김진철 씨는 출근한 지 석 달이 되기도 전에 전교조 회보를 전 교사들 책상에 돌렸다. 그리고 나면 반드시 교장 선생님의 훈화말씀이 이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교조 지회 집행부, 사무장, 지회장 순으로 조합원으로서 역량도 차근차근 쌓아갔다.

김진철 씨가 교직에 임하면서 결심한 것은 세 가지였다. 일단 교과교육을 충실히 하자는 것, 두 번째는 학생 역시 한 인간이자 삶의 주체라는 학생관을 잘 이어갈 것, 그리고 교육민주화운동이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지 ‘희망고문’이 아니다

“요즘 학생들에게서 보이는 문제는 너무 일찍 희망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열심히만 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은 이미 우리 세대에서 끝났습니다. 명문대 입학자 중 농림어업자 자녀 비율이 2%가 채 되지 않는다는 통계의 의미를 아이들도 이미 알고 있어요. 학교에서는 열심히만 하면 뭐든 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학생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주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희망 고문’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김진철 씨는 “교사들은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정, 마을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군가 대안학교는 있지만 대안사회는 없다고 비판했듯, 돈과 성공으로 순위 매겨지는 세상 안에서 학생들이 각자의 가치와 행복을 찾을 기준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말이다.

학교 밖에서도 살아가는 학생들의 삶 또한 읽어줘야
교육시장화정책,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비극의 산실

“아이들은 형, 누나, 친척, 동네 선배들을 보면서 자신들의 미래를 짐작해요. 아직은 어렴풋한 짐작이니 지도가 필요하지만. 그런 아이들에게 여전히 학교가 6-70년대의 신화를 가지고 인생과 가문을 일으킬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가능하다고 해도 비율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일류대를 가고 전문직에 진출할 수 있는 아이들도 지지해줘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어려운 아이들에게도 그들의 삶을 열 수 있는 교육이 따로 필요합니다.”

김진철 씨는 그런 맥락에서 전교조가 지금껏 화두로 삼고 있는 것이 선택과 평가를 강조하는 ‘교육시장화정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교선택제, 학교 다양화, 자사고, 교원평가와 성과급, 일제고사 등으로 표출되는 교육시장화정책은 승자 쪽에 속하는 아이들조차 불행하게 한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이 비극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진철 씨는 “무엇보다 이 치열한 경쟁의 목적이 학문적인 성숙, 진리탐구라거나 인격적 완성이 아니라, 돈이라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왔을 때, 소시민으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삶이 보장될 수 있다면, 그런 극단적인 경쟁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학교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양극화’로 대표되는 사회구조의 문제”라고 역설했다.

▲ 그는 학생들을 사랑으로 대한다는 말은 감히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삶을 함께 고민하면서 안타깝다는 마음이 너무 크다고 고백했다. ©정현진 기자

'학교 붕괴'는 사회 구조 문제의 지표

김진철 씨는 “학교가 현재 대학과 마찬가지로 사회 경쟁의 전초 기지가 되지 않으려면, 그들이 살아갈 사회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교사는 학생들과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교과교육과 생활지도라는 본연의 일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학교만 지킬 수도 없고 학교를 지키기 위해 정치적 활동이 필요한 것”이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전교조가 학생들에게 빨간물을 들여 세상이 이 모양이라는 말들을 듣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들이 무능한 것이죠. 전교조는 싸움을 위한 싸움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상황을 더 먼저 파악하고 앞서서 목소리를 냈을 뿐이에요. 그것은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책임을 덮어 씌워도 괜찮고 얻어맞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이들이 겪는 불안과 분노를 잠재울 수는 없을 거예요.”

그는 “전교조는 각 학교가 단위 사업장이다. 그 안에서 학생들, 동료교사들과 끊임없이 교감한다. 전교조가 남들보다 더 버티고 있다면, 그것은 현장에서 동료, 아이들과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지금 각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런 전교조를 비판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를 보고 문제의 본질에 대해 말해야 한다. 손가락이 아니라 손가락이 향하는 곳을 봐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르친다는 것에 더 가까이 가고 싶어
학생들의 삶, 안타깝고 안타깝다

만 23세의 신입 교사 김진철과 40대 중반의 교사 김진철은 무엇이 달라졌는지 궁금했다. 그는 ‘초심’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학생들과 만나는 방법은 훨씬 자연스럽고 친밀해진 것이 차이라고 답했다. 그는 “학생들을 만나고 그들을 가르치는 측면에서 더 깊어졌다고 믿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말하면서, “오히려 아쉬운 것은 학생들보다도 젊은 동료 교사들과의 호흡과 소통”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신영복)

김진철 씨는 언젠가 읽은 이 글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희망’이란 어떤 희망이어야 하는가? 그는 가르치는 사람이 주어야 하는 희망이란, ‘그 학생만의 바로 그 희망’이라고 말했다. 긍정적 변화를 통해 자신만의 희망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그런 희망이다.

학생들을 만나면서 갖게 되는 마음에 대해 김진철 씨는 “사랑이라는 말은 아직 자신이 없다. 누군가 이것을 사랑이라고 말해준다면 고맙겠지만, 아이들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훨씬 크게 자리잡는다”면서, “그들의 삶을 고민하다보니 늘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에게 갖는 안타까움, 동질감이다. 나도, 그들도 안타깝다”고 전했다. 그가 말하는 안타까움이란, 어쩌면 사랑의 다른 말인 연민일 것이다.

그는 그래서 누구도 안타깝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다. 그 전에 지금은 한 걸음 먼저 걸어가는 이로서, 스스로 서기에 버거운 이들의 아픔을 교감하고 공감할 뿐이다.

그는 한동안 교사로서 교단에 설 수 없지만, 더 많은 학생들의 스승으로 계속 살아갈 것이다. 그렇기에 여전히 놓을 수 없는 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김진철 씨는 새로 출범한 전교조 집행부와 함께 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 교사, 학부모 그 누구도 안타깝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는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희망을 위한 싸움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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