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대식씨가 기독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들이 번갈아가면서 대식씨 병수발을 합니다. 베로니카도 오전과 오후에 병원에 들러 대식씨를 보살핍니다. 병원 밥이 너무 적다며 배고파합니다. 치아가 부실해서 반찬을 거의 못 먹습니다. 그래서 간호사 선생님 몰래 오전에 우유 하나와 단팥빵 하나만 가져다 드립니다.

입원한지 며칠 만에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혈당이 아직은 불안정하다고 합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퇴원하도록 해야겠다고 합니다. 말도 없고 어두웠던 대식씨가 웃기도 하고 말도 조금씩 하기 시작합니다. 입원한지 열흘 만에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건강보험을 살리지 않았다면 백사십만 원이 넘을 뻔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육십만 원정도 들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대식씨가 퇴원해서 하루 세 끼 밥을 챙겨 드실 수 있는지 걱정을 합니다. 과식을 해도 안 되고 굶어도 안 된다고 합니다.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루 한 번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끼니를 굶으면 큰일 난다고 합니다.

대식씨를 옥련동 민들레의 집에서 지내게 하면 식사가 문제가 될 것 같아서 민들레국수집 옆에 단칸방을 하나 얻었습니다. 대식씨는 전기밥솥에 밥을 할 줄은 압니다. 반찬은 만들 줄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전 아홉 시에 대식씨가 인슐린 주사를 맞고 삼십 분 후에 민들레국수집으로 와서 아침을 들기로 했습니다.

다진 소고기를 기름을 쓰지 않고 달군 프라이팬에 물을 사용해서 고기를 볶습니다. 두부 된장국을 건더기가 많게 심심하게 끓였습니다. 콩나물과 시금치나물과 김치는 잘게 다져드렸습니다. 점심에는 고기 조금 볶아드리고, 애호박을 새우젓에 심심하게 간해서 지져드렸더니 이렇게 먹기 좋은 음식은 처음이라면서 흡족해합니다. 오랜 당뇨와 노숙으로 치아가 거의 못 쓰게 되었습니다.

대식씨가 민들레국수집이 쉬는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 동안 어떻게 식사를 하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중고 냉장고를 하나 샀습니다. 그리고 전기밥솥도 마련했습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도 장만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쌀과 보리쌀을 드리고 밥하는 방법을 알려드렸습니다. 이틀 동안 드실 반찬은 대식씨가 드실 수 있도록 따로 만들었습니다. 가지를 쪄서 기름을 넣지 않고 담백하게 무쳤습니다. 두부도 기름을 쓰지 않고 살짝 조렸습니다. 애호박나물과 양배추는 잘게 다져서 냉장고에 넣어놓았습니다. 김과 생두부도 준비해 놓고, 미역국도 이틀 동안 드실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초콜릿과 사탕 그리고 오렌지 주스와 보리건빵도 챙겨 놓았습니다. 혹시 혈당이 급격히 내려가면 드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쉬는 이틀 동안 대식씨가 잘 지냈습니다. 그 많던 반찬과 주스와 과자도 전부 다 드셨습니다. 주스와 사탕과 초콜릿은 혈당이 급격하게 내려갈 때 드시는 것이지 배고프다고 드시는 것이 아니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퇴원한지 일주일 만에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약도 타오고 인슐린도 받아왔습니다. 건강보험이 되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점심을 먹고 병원에 갔는데 혈당이 210이 나왔다면서 아주 좋아졌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랍니다. 약도 하루 세 번 먹는 것을 두 번으로 줄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밤에 너무 배가 고파서 죽을 것 같다고 합니다. 채소 죽을 끓여서 밤에 드시도록 했더니 아주 좋아합니다.

대식씨가 병원에서 퇴원한지 스무 날이 다 되어갑니다. 점심 식사 전에 혈당을 재어 보았습니다. 160 정도가 나왔습니다. 오늘은 점심 식사 후에 재어보았습니다. 혈당이 181이 나왔습니다. 대식씨는 노숙할 때 자기 병이 당뇨병인 줄 몰랐습니다. 자기 병은 알 수 없는 '심신무력증'이라고 말했습니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많이 걸어 다녀도 힘이 몸속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오전과 오후에 천천히 걸어 다니기를 많이 합니다. 웃기도 하고요. 국이 맛있어요? 물어보면 참 맛있다고 합니다. 생태 국이 이렇게 맛있는 줄 예전에는 몰랐다고 합니다. 이제는 한밤중에 배가 고파서 깨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대식씨가 당뇨식을 할 수 있도록 돕다가 큰 선물을 얻었습니다. 저도 식사량과 음식을 조절해야겠다 싶어서 비슷하게 식사를 했습니다. 과연 배가 많이 고픕니다. 대식씨 마음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어느새 허리띠의 구멍이 두 칸이나 줄었습니다.


서영남인천 화수동에서 민들레국수집을 돌보며 노숙인 등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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