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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도 교육을 받고 싶다


띠리리리~띠리리리리리~ 지하철 어디선가 귀청을 울리는 멜로디가 들린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그곳에는 위태로워 보이는 휠체어 리프트를 기다리는 휠체어 장애인과 그 옆에 어색하게 서 있는 공익근무요원. 행여나 부러지지는 않을까 보는 사람들도 위태롭게 만드는 휠체어 리프트를 타고, 비장애인이 5분이면 내려갈 거리를 15~20분에 걸쳐 내려간다. 물론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귀청 따가운 멜로디와 함께. 다시 전동휠체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지하철에 타고, 아마 그녀는 계속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갔을 것이다.

바야흐로 이명박 ‘시대’가 열렸다. ‘국민 성공시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성공’하라는 이명박 당선자의 성공에 대한 집착은 무섭기까지 하다. 한 명의 성공을 위해 10명이 패자가 되어야 하고, 10명이 성공을 하기 위해 100명의 패자는 씁쓸한 그늘 아래 가려져 있어야 하는 현실이 오고 만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늘 그래왔지만,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논리를 제도적으로 더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대학로에서는 장애인들이 천막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따뜻한 보일러가 나오고 반듯한 책상이 놓여 있는 곳이 아닌, 언제 철거당할지 모르는 위협 속에서 그래도 ‘배워보겠다’라는 의지 하나로 거리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1993년 8월 개교하여 교육을 받지 못한 장애성인을 위한 교육을 14년 동안 해오고 있는 ‘노들장애인야학(이하 노들야학)’. 하지만 노들야학이 자리잡고 있던 정립회관 측이 “자체적인 서비스 이용공간의 부족, 관리비 부족”을 이유로 지난 해 12월 31일까지 교실공간을 비울 것을 요구하였고, 이에 교육청과 교육부는 “법적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지원불가 입장만 고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갈 곳이 없는 노들야학 학생과 교사들은 길거리로 나와 천막을 치게 된 것이다. 장애인구의 220만 명중에 45.2%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력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회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몸도 불편한 사람이 왜 밖으로 나와’라는 시선은 여전하고, 장애인은 시설에 들어가 있거나, 집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게 변함없는 현실이다. 교육은커녕 집 밖으로 외출도 거의 불가능한 현실에서 교육을 이야기하는 것은 더욱이 힘든 일이다. 자립형 사립고를 몇 개를 더 만들고, 대입 자율화가 어쩌고저쩌고, 사교육비를 얼마나 줄이겠다, 학원을 몇 개를 더 보내야 하네·마네 이곳저곳 떠들어도, 약 100만 명에 이르는 장애인이 초등교육조차 받지 못하는 이 현실에 대해 조용한 이 세상은 참으로 씁쓸한 풍경이다.

장애인은 생각이 없는, 삶에 대한 의지가 없는 마네킹이 아니다. 장애인은 “살고 싶다”라고 말하지만, 세상은 “죽어라”라고 말하는 것이 현실이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배움’의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집과 시설에 박혀 살아야 하는 장애인들은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고자 한다. 가끔 뉴스를 장식하는 “장애를 뛰어넘어 성공한 홍길동”이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한글을 배우고, 덧셈·뺄셈을 배우고, 비장애인이 그렇듯 학교에서 친구들과 노닥거리며 놀 수 있는 그런 삶을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꾸 우려가 된다. 성공의 신화를 뒤쫓다 쓸쓸하게 남겨질 사회적 소수자들의 그림자가 벌써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는데, 경제 살리다가 정작 사람은 죽게 만드는 것 아닌지. 귀청 따가운 멜로디와 함께 집중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않고 지하철을 자유롭게 탈 수 있는 날은 언제나 오는 건지. ‘인권’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이명박 당선자의 행보를 바라보며 우리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해보는 2008년이다.

[시민사회신문 1월 14일자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배여진 / 2008-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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