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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이 ‘차별’을 만든다!


이름: 배여진
학력: 지방대 겨우 졸업
병력: 13살 때 심장수술
성적지향: 이성애자
출신국가: 싸우스 코리아
언어: 오로지 한국어(매우 심각한 영어울렁증을 앓고 있음)
범죄전력: 유치장 2번, 현재 재판 기다리는 중
가족형태 및 상황: 매우 복잡함. 영화 한편 찍을 예정임.

차/별/금/지/법. 말 그대로 차별을 ‘금지’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지는 법이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차별금지법은 차별을 조장 혹은 방치하겠다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법무부가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안)이 지난 해 9월 12일 공청회를 거쳐 입법예고한 법안의 차별범위 조차 축소한 채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입법예고안에는 ‘합리적인 이유없이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전력, 보호처분, 성적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금지대상 차별범위로 명시하고 있으나, 법무부가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한 법안에는 ‘성적지향, 학력, 병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전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이 누락되었다.

글 서두를 보면 알겠지만, 필자 역시 누락된 일곱 가지 사항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하다. 만일 내가 인권활동을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본다면 어디선가 차별을 받을만한 사항들이 수두룩하다. 돈 좀 벌어보겠다고 기껏 일자리 알아보았더니 “자네는 심각한 영어울렁증 환자에 몸도 편찮고, 거기다 전과까지 있구먼. 게다가 평화로운 가정에서 자란 것 같진 않은데… 우리 회사는 되도록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을 찾고 있다네. 유감이지만 다른 회사를 알아보도록 하게” 라는 소리를 들어도 나는 꼼짝없이 이 차별을 당하고 있으란 말인가.

차별금지법(안)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하며, 차별로 인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목적임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들이 일상 속에서 숱하게 겪고 있는 차별을 ‘골라서’ 차별로 인정하겠다는 소리가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정부 측은 누락된 7개의 차별범위가 법 조항 “등”의 영역에 속할 수 있기 때문에 큰 탈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본다면 차별금지법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오히려 차별이 ‘정당화’될 수 있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바로 주위만 둘러보아도 성적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학력이 다르다는 이유로, 흔히 말하는 ‘정상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범죄를 저지른 과거가 있다는 이유로, 키보드 몇 번 딸깍거리면 쉽게 알아낼 수 있는 병력기록 때문에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한 개인이 일상 속에서도 차별로 이루어진 삶을 살고 있는데, 이제는 법의 테두리에서조차도 차별을 받으란 말인가.

누군가 그랬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방법은 ‘상상력’뿐이라고. 그렇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차별 받으며 사는 그 고통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하지만 조금만 상상력을 동원해 보아도 차별받는 삶이 얼마나 고된 삶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좀 엉뚱한 말인 것 같지만, 문득 홍길동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홍길동은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는 차별을 받아도 차별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어디 가서 소리 한번 외치고 와야겠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아니라 “차별금지법은 차별조장법!!” 이라고 말이다. 아마 임금님 빼고 다 들릴테니.

배여진 2008-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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