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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오줌을 참고 사는 노동자들

 

누군가 나에게 “살면서 가장 지옥 같았던 순간이 언제였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필자는 스쿨버스를 타고 통학을 하였는데 하필 그날 아주 급한 생리적인 현상, 쉽게 말해 “급똥”(설사)의 신호가 온 것이었다. 버스는 이미 출발을 하였고, 만일 도로 한복판에서 내가 잠시 화장실을 들리겠다고 하면, 버스를 함께 탄 수십 명의 학생들은 나로 인해 지각을 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아… 학교에 도착하기까지 내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온 몸에 식은땀만이 뻘뻘 나는 이 지옥 같은 상황.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신에게 기도했고, 아주 위험한 고비를 몇 차례 넘긴 뒤 결국 버스 안에서 큰 일(!!)을 치르지 않고 무사히 학교에 도착하여 종종걸음으로 화장실을 향하였다.

이 세상은 먹는 것, 자는 것, 사는 곳, 입는 것에 대해 돈을 많이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계층이 확연하게 갈라진다. 돈이 많은 사람은 값비싼 집에서 좋고 비싼 음식을 먹으며 명품 옷을 입고 다니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박스로 집 아닌 집을 만들어 살고, 하루 한 끼 떼우면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나마 모든 사회계층에 평등(??)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바로 생리적인 현상 즉, 오줌과 똥을 싸는 일이다. 필자는 어릴 때 ‘과연 장동건도 화장실에 갈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처럼 ‘더럽다’라고 여겨지는 오줌과 똥은 장동건이든 배여진이든, 비싼 음식을 먹은 사람이든, 비싸지 않은 음식을 먹은 사람이든 차별 없이 몸에서 배출된다. 삼성 이건희 회장도 오줌을 싸고, 똥을 쌀 것이며 조그마한 공장 먼지 구덩이 속의 노동자도 오줌을 싸고, 똥을 싸지 않겠는가.

하지만 요즘은 오줌과 똥을 싸는 것에도 세상은 억압적이고 차별적이다. 하기야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자본은 노동자들이 오줌과 똥을 싸는 것에 대해 억압을 해오지 않았는가. 얼마 전, 한 지하철 기관사가 전동차 기관실에서 운행을 하던 중 급한 용변 때문에 잠깐 문을 열고 이를 처리하려다가 추락해서, 뒤이어 오던 전동차에 치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기관사들은 간이화장실 조차 없는 기관실에서 짧게는 2시간에서 길게는 4시간씩 지하철 운행을 한다고 한다. 사람이 노동을 할 때에는 그 노동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오줌을 싸고 똥을 싸는 생리현상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필수적인 필요행위이다. 그러므로 밀폐된 공간에서 여러 시간 동안 근무를 해야 할 경우 필수적인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시설이 이미 설치되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였고, 대신 긴 시간동안 지하철 노동자들의 손에는 신문지와 페트병이 들려있었다. 신문지와 페트병으로 용변처리를 하고 있는 지하철 노동자들의 이런 상황을 서울메트로 측은 전혀 몰랐던 것일까? 보고도 못 본 척, 알면서 모른 척 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만 지옥철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것 같다. 지하철 노동자가 손에 페크병과 신문지를 들고 들어가야 하는 그곳이 바로 지옥철이었다.

배여진(베로니카)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2008 /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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