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대통령선거가 막바지를 향해 치달아 가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 미래를 결정한 대통령선거, 우리사회는 참으로 중대한 선택을 앞두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많은 사람들과 지지후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른바 대선후보들이 이야기하는 '경제를 살린다'라는 의미가 '대다수 서민들의 생활이 나아진다'라고 해석될수 있을까? 나는 이들 대선후보들의 '경제를 살린다' 라는 공약이 재벌기업과 소수 잘사는 몇몇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우선 정부와 주요 언론에 공개되는 경제지표들이 수출 증가율, 우량기업 재무건전성과 수익률, 주가 상승률, 교역규모 등 전체 100명의 사람 가운데 잘사는 10명의 사람들이 두 배로 부자가 되고, 못 사는 90명이 점점 가난해져도 결국 ‘경제성장’이라는 결과를 내오는 경제지표만을 광고하고 있다. 반대로 수출 증가율 대신 내수 증가률이나, 우량기업 재무상태나 수익률 대신 중소기업 자금난이나 수익률, 주가 상승률 대신 개인 부채비율, 금융소외자의 금융접근도 등 다수 국민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지표는 주요언론과 주요 대선후보들 간에서는 이야기도 되지 않고 있다.

진정으로 빈익빈 부익부 사회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수국민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경제지표를 통해 현 상황을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유력한 대선후보들은 한결같이 이를 외면하는 것 같다.

지난 1997년 IMF가 생각난다. IMF 원인은 재벌들의 정경유착이었지만 대안은 '고통분담'으로 낙찰되어 서민들이 낸 세금인 공적자금으로 손실이 메꾸어졌다.

재정경제부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발생 이후 지난해(2006년) 12월까지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투입된 공적자금 168조 3,000억 원중 84조 5,000억 원이 회수되어 지난해 말 현재 회수율이 50.2%라고 올해 초에 발표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회수할 수 있을까? IMF당시 “공적자금 을 먹고 튀어라”라는 우스개 소리가 유행했던 점을 기억한다면 몇십 조는 찾을 수 없는 돈이 될 것이다. 재산이 몇백억이나 되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세금을 적게 내기위해 자녀들까지 위장취업을 시킨 점을 되돌아본다면 공적자금을 위해 세금 낸 사람들은 대다수 이름 없는 서민들일 것이다. IMF를 극복하기 위해 이름 없는 서민들은 '고통분담'을 했지만, 결실은 대다수 서민들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빈곤층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도대체 우리나라의 빈곤층 규모는 얼마나 될까?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기초생활보장수급자 138만 명과 기초생활보장 비 수급 빈곤층 372만 명, 잠재적 빈곤층 206만 명을 모두 합하면 차 상위계층이 716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차 상위 계층은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최저생계비의 120% 미만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지난해 최저생계비 4인 가구 기준으로 월 113만 6천원이니 최저생계비의 120%인 136만 3200원 미만인 차 상위 계층이 716만 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들을 다시 정부 공식 통계로 확인을 해보면 전체 인구의 15%가 빈곤층인 셈이다. 아울러 상위10%와 하위10% 의 평균 소득을 비교하는 격차가 18%에 이른다는 사실과 지니계수도 2002년 0.2931이던 것이 최근에는 0.3016로 간극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확대된 빈곤의 심화를 뒷받침 하고 있다. 이런 사회양극화의 어두운 모습은 경향신문 등에서 기사화됐는데 생활고에 의한 자살률의 증가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지적되기도 했다.

이제 대통령선거가 8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후보 모두들 사회양극화 없는 사회, 경제가 살아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우리 유권자들은 되물어봐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양극화를 양산한 이전 정부와 무엇이 다른가?

진정으로 사회양극화를 해소하려는 대선후보라면 비정규직으로 고통 받는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찾아 만나봐야 하고,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죽어가는 인천건설노조 조합원들을 만나야 한다. 몇 달 전에 고양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점상, 아직까지 싸우고 있는 KTX 비정규 여승무원등...

지금도 사회적 약자 비정규직노동자, 빈민, 농민들이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을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대선후보들이 있다. 이들은 힘없는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이번 대선에서는 소외된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더불어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면 좋겠다.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은 <사회적 관심>이란 회칙을 통하여 “구체적인 동기에서 우러난, 가난한 이들을 위하는 관심은 모든 차원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되며, 필요한 일련의 개혁을 결정적으로 달성하기까지는 구체적인 행동이 지속되어야 한다. 각 지역의 상황이 무슨 개혁이 시급하고 어떤 방도로 달성할 수 있는지를 말해 줄 것이다.”(43항)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대선 후보 가운데는 이명박 후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후보들이 가톨릭신자다. 개신교의 경우엔 공적 권위를 통해서 확인된 사회적 가르침이 없기에 제 깜냥껏 양심이 있다면 양심대로 해야겠지만, 가톨릭신자임을 드러내는 후보의 경우에도 교회가 말하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메시지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 따져볼 일이다. 가톨릭사회교리는 결코 신자만을 대상으로 선포된 것이 아니며, 세상을 위하여 복음적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자부적 사랑의 결과다. 그러므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이 잣대임을 분명히 드러내는 후보를 우리는 꼼꼼이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두현진 200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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