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에 몇 명의 현역 군인들을 사석에서 만나게 되었다. 군의문사를 비롯한 군 인권에 관한 일들을 진행하게 되면서 현역군인이나, 전역한지 얼마 되지 않은 예비역들을 만나게 되면 군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이 습관이 된 내게 그들은 좋은 설문대상이 되었다. 이제 내리막길만 남았다는 상병 5호봉의 한 후배에게 요즘 군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정신교육을 자주 받는다”고 했고 ‘부대 내의 사고방지를 위해 노력할 것’과 ‘우리의 주적은 누구인가’에 대한 내용이 기억난다고 했다. ‘인권교육’은 입대하고 한 번도 받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사장교로 임관하여 중위로 복무중인 두 후배 역시 자신의 복무기간 중, 자신을 비롯해 소대원들이 인권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고 병영사고방지를 위한 간부 교육과 정신교육을 상시적으로 받는다고 했다. 내가 만난 단 세 명의 현역 군인이 군의 모든 상황을 대변해 줄 수는 없고 그들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군의 주장이나 자랑처럼 ‘인권교육’이 아직 모든 군인들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군은 '존중과 배려'의 기치 아래 병영문화 개선 과제를 내실 있게 추진한 결과 자체 사고가 크게 감소했으며 군에 대한 국민의 평가도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자평하며 군 사망사고와 군무이탈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수치를 살펴보면, 사망사고는 2002년 158명에서 2006년 128명으로 30명이 줄었고 군무이탈은 2002년 1261명에서 1133명으로 4년 동안 128명이 줄어들었다. 이 정도의 수치를 예로 병영문화가 획기적으로 변화했다고 국정브리핑을 통해 홍보하는 것이 조금 억지스럽다고 생각되는 것은 필자의 과민반응일까?

물론, 참여정부 들어 장병들의 봉급도 대폭 올랐고 1인당 식비도 증가했다. 생활 시설들을 개선하는 작업을 부대별로 꾸준히 하고 있고 군의관 증원, 의료장비의 현대화, 전역 전 건강검진 실시, 얼마 전 발표한 대체복무제도 도입 등의 노력은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군대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와 노력 그리고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워낙에 열악했던 몇 가지 제도를 개선하고 “우리는 달라졌다”고 선언한다고 해도 국민이 그렇게 생각하고 신뢰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 내에 성과를 내고 수치를 만드는 일에 조급해 하지 말고 장기적이고 꾸준한 노력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물리적인 폭행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언어폭력이나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피해 사례들은 여전히 보고되고 있다. 장병들의 인권수준이 올라간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인권수준을 끌어올리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들은 전역 후 모두 이 사회의 중추적인 역학을 담당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인권교육이 반드시 뒤 따라야한다. 변화는 말로만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실천으로,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인권 감수성이 느껴지는 군대는 상명하복의 기계적인 군대보다 훨씬 더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러울 것이다. 인권이 최우선이 되는 군대를 만드는 일은 군이 존재하는 이상 가장 총력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 60만 군인의 가족은 바로 5천만 국민이기 때문이다. 


김덕진 2007-11-26

* 이 글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기관지 타래꽃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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