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규현 신부가 전화를 했다. 지난번 서울 시청 앞에서 천막치고 단식할 때 보고 처음이다. 이번에 평양 갈 거냐고 묻는다. 나는 안 가는데 사제단과 평화삼천이 따로따로 사람 모아서 마치 줄서기하는 것처럼 연이어 가는 모양새가 안 좋다, 어쩌다 그렇게 됐느냐고 했더니 내 말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나 이번에 또 일 저질렀네.” 하는 것이다.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

“오체투지하기로 했어.”
“엉? 오체투지?”

언젠가 TV에서 티베트 사람들이 땅바닥에 배를 깔고 지렁이처럼 길게 엎드렸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수 천리 순례길을 목숨 걸고 가는 것을 마른 침을 꼴깍꼴깍 삼켜가며 본 생각이 났다. 전라도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한 게 얼마나 됐다고... 이제 삼보일배 정도(?)로는 안 되겠나보다.

“나는 원래 가만히 못 있는 성질이잖아.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그거 하면 죽을 지도 모르는데...”

내 목소리는 분명히 떨리고 있었다.


“죽거들랑 네가 거둬서 잘 뿌려줘.”
“헉!”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게 농담인가, 진담인가? 농담으로 할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수화기에 대고 악을 썼다.


“하지 마. 그거 안 하면 안 돼? 하지 말아요.”

내 말은 공허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메마른 소리(그렇다. 그건 말이 아니라 소리였다.)가 던져지는 것 같았다.


“죽어야 할라나봐.”

문규현은 어쩌자고 이러는가. 아주 죽기로 작정했구나.

“언제, 어디부터 어디까지, 누구와 같이 하는데?”
“9월 4일부터. 지리산에서 묘향산까지. 수경 스님하고 둘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목이 메었다.

“기도해 줘. 그대만 믿고 하네.”

어떻게 기도하라는 건가? 아무쪼록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이 죽음의 길을 원천봉쇄해달라고? 아니면 이들의 갸륵하고 거룩한 모습을 보고 저들을 회개시켜달라고? 게다가 날 믿어? 나의 무엇을 믿는단 말인가? 내게 믿을 구석이 어디 있다고? 아, 미치겠다.(이런 표현 정말 미안하다.)

전화를 끊고 한참 엎드려 울다가 (요즘엔 왜 이렇게 울 일이 많으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이번엔 내가 전화기를 들었다.

“교회 안팍의 상황이 가만히 있게 놔두질 않네. 교회도 이젠 이명박이와 같이 놀려고 하고... 그래서 떠나려고.”

그래. 그 말 충분히 이해하고 다 좋은데 그게 그렇게 목숨까지 내걸 일이냐? 그런다고 될 거냐구? 왜 하필이면 오체투지냐? 문규현은 수화기 저편에서 말을 이었다.

“먼저 촛불들이 짓밟힌 자리들 -서울 시청광장, 광화문, KBS, KTX 승무원 농성장, 기륭전자 등-을 둘러보고 내려오다가 새만금을 둘러보고 그 다음에 지리산 노고단에 올라 시작할 거야. 네가 있으니 잘 되겠지.”

또 다시 물귀신처럼 나를 물고 늘어진다. 어쩌란 말이냐? 나를 그냥 좀 내버려둬 다오. 못한다! 대단히 미안하지만 난 의지도 없고 용기도 없고 능력도 없다. 나는 편히 살고 싶다.

인터넷을 열어 수경스님의 연설문을 찾아 읽었다. 그는 이미 지난 8월 27일에 20만 불자들 앞에서 오체투지 순례를 발표했는데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문규현의 목소리가 밤새도록 뒤척이는 나의 가슴을 후벼 판다.

호인수 200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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