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신학칼럼 호인수 칼럼
이 참에 명동성당을 되찾자

   
사진 출처-한겨레신문


얼마 전에 내가 쓴 “신부님들은 왜 아무 것도 안하세요?”라는 제목의 칼럼이 한 순간에 휴지쪽이 되어버린 적이 있다. 그 다음날 저녁 정의구현사제단이 서울광장에서 드린 시국미사에 신자와 시민들이 3만여 명이나 모여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우리 보좌 김태영 신부님은 거의 매일 촛불집회에 나갔다. 거기서 우연히 만난 여교우 한분이 자기가 입은 검은 옷을 보고 요즘 세상이 이런데 왜 수도권에 있는 신부님들은 아무 것도 안하느냐고 불만 섞인 질문을 던지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적지 않은 신부들이 이 사태를 구경만 하고 있는 까닭을 나름대로 묵상하고 정리해본 글이었다.

보도를 통해 “신부님들이 멋지다”, “천주교신자인 것이 자랑스럽다”, “사제단이 우리를 위로해줬다” 등등 듣기에도 쑥스러운 시민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면서 나는 아,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사람들이 천주교 사제들에게 바라는 것이란 다름 아닌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랬을 것이다. 이런 미사, 이런 행동이 절실했구나. 그런데도 우리는 근래에 이런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면서 냉담자가 늘어난다는 걱정만 했고 무슨 유행처럼 신자배가운동에만 열을 올렸다. 엉뚱하게 헛다리만 짚었다.

참으로 고맙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전종훈, 김인국 신부님에게 드리는 인사가 아니다. 사람이 외부의 자극 없이 제 스스로 개과천선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사제들도 그 부류에 속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 사제들이 골방에서 문을 닫고 기도하라(마태 5,6)는 예수님의 말씀을 핑계 삼아 성당 문 밖을 나오려 하지 않은 나태와 안일을 반성하고 선뜻 광장으로 나서도록 등짝에 죽비를 내리쳐준 은인이 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매일 밤 광장을 밝힌 촛불이다. 그런 뜻에서 나는 지금 익명의 수십만 수백만 촛불들에게 감사의 절을 올린다. 그들이 우리의 스승이다. 사제들은 어제 앞으로는 우리가 파수꾼이 되어 촛불들을 지켜줄 것이라 약속했지만 내 생각에는 오히려 단식하며 매일 저녁 광장의 미사를 올렸던 사제들과 제단을 촛불들이 지켜준 것이다. 

‘나무야’라는 이름으로 가톨릭인터넷언론 <지금 여기>의 독자투고란에 글을 올린 분의 이야기는 가슴 아프고도 부끄러운 우리 교회의 모습이다. 명동성당에 으레 붙어있던 ‘민주화의 요람’이란 자랑스러운 별칭은 아쉽게도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성당 들머리에 날이면 날마다 목이 터져라 애원하고 부르짖던 온갖 억울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농성천막도 강제 철거된 지 오래다. 대문이 없는 성당 입구에 명박산성 같은 철문을 세워 빗장을 건 셈이다. 얼마전 저녁에도 촛불시위 도중 경찰의 추격을 피해 명동성당 들머리에 자연스레 모여 앉은 불과 몇십 명의 시민들을 성당 측에서 내쫓았다니 이 일을 어찌하랴? (참고/독자투고란 411번 -편집자)

명동성당은 여느 성당들처럼 서울대교구에 속한 평범한 일개 본당이 아니다. 명동성당은 한국천주교회의 상징이다. 명동성당의 발언은 곧 한국천주교회의 공식 발언이요 명동성당의 행위는 곧바로 한국교회의 모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명동성당은 우리 신자들의 자랑이요 병들고 가난하고 지친 이들의 위로여야 한다. 지난 주 서울광장에서 사제들에게 보낸 시민들의 칭송과 박수갈채가 명동성당을 통하여 한국천주교회에 보내져야 한다. 천주교 신자든 아니든 수많은 사람들의 바람이 무엇인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나? 명동성당이 다시 제 자리, 제 모습을 찾으면 그때 비로소 정 추기경의 목표 2020도 실현 가능성을 보일 것이다.

*사족 : 지난 주 월요일 시국미사를 하러 전국에서 모인 3백여 명의 사제들 사이에 어느 교구는 거기 참석한 사제들을 인사에 반영하겠다는 이야기가 돌더란다. 터무니없는 억측이거나 유언비어이길 바란다.

호인수 2008.7.9.

호인수의 다른기사 보기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