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어둠이 깔리는 명동 거리에는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었다. 우리는 명동 지하성당에서 나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허름한 대폿집을 찾아 소주를 마셨다. 신학교 동기인 서울교구 정치윤 신부가 오랜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떴다. 아직 환갑이 안 된 나이, 제의를 입힌 그의 시신이 누워있는 지하성당은 날씨보다 더 무겁고 침울했다. 교우들은 낮은 목소리로 묵주기도를 했고 명동성당연령회라고 새겨진 흰 가운을 입은 4명의 늙수그레한 남자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시신을 묶고 있었다. 치윤이의 흑백 영정은 한쪽 구석에서 홀로 자신의 입관절차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던가. 암만 생각해도 신부가 된 다음에 그를 본 기억이 없다. 언젠가 친구들 모임에서 그가 병원에서 오늘내일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건성으로 흘리고 바로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무심할 수가? 자주 만나는 친구는 수 백 번도 더 만났을 텐데 어쩌면 이렇게 한 번도 찾지 않고(못하고) 남남으로 살다가 죽어서야 그 앞에 서게 되는가? 차마 왜냐고 따지지도 못하겠다.

시청에서 전철을 타고 소사역에 내려 마을버스를 기다리다가 문득 역 근처에서 부동산업을 한다는 교우가 생각나 전화를 걸었더니 내가 있는 곳에서 가깝다며 들어오란다. 댓 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생선회와 족발접시가 놓인 탁자를 가운데 두고 7명의 남녀가 술을 마시다가 나를 보더니 벌떡 일어났다. 근처의 부동산업자들 끼리 모여 단합대회 중이었단다. 탁자 밑에는 이미 여러 개의 빈 소주병이 뒹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화도 안 하고 오지도 않았을 텐데...... 이왕에 엎질러진 물, 염치 불구하고 좁은 자리에 끼어들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은 박수를 치며 환영한다고 한마디씩 했다. 난생 처음 천주교 신부를 가까이서 본다는 사람도 4명이나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나열해본다.

“이명박이 됐으니 올해는 작년보다는 숨통이 좀 트이겠지. 난 좋아서 찍었다.”
“나도 이명박이지만 좋아서 찍은 건 아니다. 노무현이 하도 못해서... 그걸 알아야 한다.”
“천주교 신부님이라는데 불교나 교회(개신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다니면 천주교에 다닐 거다. 지금은 시어머니가 절에 다니신다. 개신교 목사는 싫다.”
“근데 천주교회에도 이상한 놈들이 있더라. 정치에 관여하고..... 함세웅이라나 뭐라는 신부.”
“물어볼 게 있다. 우리는 세끼 밥 먹듯 섹스를 하는데 혼자 사는 신부들은 어떻게 참나?”
“신부는 혼자 사나? 그런 줄 몰랐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사투리가 뒤섞여 저마다 건네는 술잔을 받고 앉아 있는 내 정신을 쏙 빼놓았다. 서울 변두리가 대부분 그렇듯 여기 부천에 터를 잡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애쓰는 이 부동산 중개인들 역시 각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다. 공교롭게도 남자 5명 중 4명은 공무원 출신이란다. 우리 주변에 사는 그저 그렇고 그런 말단 공무원이나 서민들의 생각과 말이 그랬다. 그들은 내가 참 편하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내색은 안했지만 그들이 술 마시며 자연스럽게 나누는 평범한 말들이 마음에 안 들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서 이명박을 찍었다는 사람은 단 1할도 안되는 것 같은데 이명박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그러니 나는 얼마나 편향되고 편협한 대인관계 속에 살고 있는 것이냐.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내 맘에 드는 사람,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하고만 가까이 지내왔다. 같은 동창생 중에서도 치윤이 같은 친구들과는 서로 연락도 없이 살아왔다. 이게 옳고 바람직한 모습인가? 천만에! 단연코 아니다. 어떻게 더 폭넓고 깊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안에 숨어 계신 예수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어떻게 그들의 말에서 예수의 복음을 들을 수 있을까? 새해의 내 화두다.

호인수 2008-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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