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병치레를 하는 동안 뜻하지 않게 많은 은인들이 생겼다는 글을 썼는데, 써놓고 보니 중요한 두 분을 빠뜨렸다. 한 분은 내게 신품성사를 주신 나길모 주교님이고 또 한 분은 현 교구장이신 최기산 주교님이다. 두 분은 나로 인해서 생긴 엄청난 금액의 병원비와 약값을 다 대주셨다. 그뿐 아니라 내가 일터를 떠나 휴양하는 동안의 생활비까지 배려해주셨다. 두 분이 당신들의 개인 호주머니를 털어 나를 살리신 것은 아니지만 덕을 본 나로서는 교구장의 배려를 나의 당연한 권리로 여기면 안 되지 싶었다. 두 차례의 병원비를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면 나는 아마 지금쯤 빚쟁이가 되어 매달 이자 물기에 허덕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분은 나의 실질적인 후원자이자 은인이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고 신세를 지며 산다. 사람 ‘人’ 자가 서로 기대어 살고 있는 모양이라지 않나? 어찌 사람뿐이랴. 세상 만물이 다 그렇게 서로서로 기대야만 살 수 있는 것을. 그런데 주고받는 둘 사이란 게 실로 묘해서 신세를 진 사람은 도움을 준 사람에게 절대 거만하게 굴거나 모질게 안면을 바꾸지 못하는 법이다. 그것이 분에 넘치고 절실한 것일수록 받은 사람은 더욱 더 고개를 못 들고 눈도 똑바로 못 뜨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경험한다.

그래서 막걸리 선거, 고무신 선거가 성행하지 않았나? “주는 건 먹고 찍는 건 다른 사람”이라지만 그게 말 뿐이지 실천이 잘 안 된다는 것은 주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뻔히 다 안다. 일단 먹었으면 붓뚜껑이 그쪽으로 가게 마련이다. 이걸 인간의 본성이라 해야 하나, 도리라 해야 하나? 낮은 민도를 탓할 일만은 아니다. 그렇게라도 먹은 값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가슴 깊이 새겨 있는 것이다.

나 주교님께 크게 신세를 진 나는 보답의 차원에서라도 당연히 남보다 앞서 주교님의 뜻에 따라야 했다. 아, 그러나 나는 그분의 인천교구 신학교 설립 의지를 받들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섰다. 어디 그뿐인가? 안동교구의 두봉 주교님이 이제 더는 외국인 선교사가 교구장으로 있을 이유가 없다며 사의를 표명하시자 즉시 우리 주교님도 생각해보실 일이라는 글까지 썼다. 나 주교님은 내가 얼마나 밉고 괘씸했을까?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주교님의 뜻과 나의 소신이 이렇게 정면으로 부딪쳤을 때, 나는 어떻게 처신해야 옳을지 누구와 속 시원히 의논할 수도 없었다. 은혜를 베풀고 받는 관계가 아니라도 우리는 모두 서품식 때 이미 주교님께 순명을 서약했으니까. 과연 그분은 틀렸고 내 판단은 절대 옳았나를 오래 생각했다. 암만 생각해도 전국에 신학교가 일곱 개나 되는 데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보면 그때 나의 주장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괴롭다.

할 수만 있다면 누구에게도 아예 신세를 지지 않고 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릴 적에 가설극장에서 보았던 <이수일과 심순애>, <검사와 여선생>이 생각난다.

이제 나는 또다시 내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최 주교님께 배은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천교구설립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큼직한 주교좌성당을 새로 짓자는 그분의 뜻에 선뜻 동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서품 31주년이 내일 모레지만 복음중심의 삶은 여전히 어렵다. 진정 내가 교만하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순명을 지고의 덕이라고 배워왔기에 더욱 그렇다.

호인수 200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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