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과 산책나온 시]


이불 속 온기 아까워
누워서 듣네

나무는 슬픔에 떨고 있는데....

- 가을비



 

 

 

 

 

 

 

 


새벽녘이었다.
빗소리에 잠이 깼고
문득 마당의 나무가 추울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가을비에
이제 이파리들이 떨어져 나가는 걸 속절없이 지켜봐야 하는
나무의 그 아픔이 느껴져 가슴이 아릿했다.

하지만 그뿐.
누워있는 자리의 따뜻함을 차마 떨구지 못해서
아침이 찾아와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될 때까지
나는 내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물론 내가 비 맞지 마시라
우산을 씌워줄 수도 없겠고
나뭇잎들 떨어지지 말라고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정히 내 마음이 그러하다면
나는 유리창 너머로 그를 지켜봐 주기라도 했어야 했다.
그게 어쩌면 그 새벽에 나를 찾아와 준 감정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으리라.
아니 혹시나 나무가 그 슬픔을 함께 나눠달라고 나를 부른 것이었다면.. 더욱.

그랬다.
그날 그 가을비는..
그 마당의 석류나무는 내 존재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들춰내며
내 삶의 현주소를 보여 주었다
이곳과 저곳이 하나이기엔 너무나 이기적인 그 간격을.

몸 뒤척여 일어나는 것의 귀찮음
뒤이어 몸을 덮쳐들 한기에 대한 두려움
무엇보다 안온한 자리에 대한 미련과 애착이
얼마나 내 자리 밖.. 이웃들에게 무심하게 하는지.

뿐이랴
사소한 일상속에서 내 마음과 감정을 통해 찾아오시는
자비와 긍휼의 그분을 모른체 지나치게 만드는지,

그러고도
벌써 몇해의 가을을 맞이하고 보냈다.
여전히 내 사는 세상은 시도때도 없이 가을비 내리고
거기 속절없이 추워떠는 나무 같은 이웃들이 있건만.

제 다순 자리 얼른 떨구지 못하게 하는
내 게으름과 이기심, 또한 여전히 건재하다.
부끄럽게도.


조희선/ 시인,  일상을 살며 그동안 <거부할 수 없는 사람>,
<타요춤을 아시나요> 등의 시집을 풍경소리사에서 내었다. 

/조희선 200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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