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자의 시시한 소슬바람]



어젯밤엔 달이 좋아 거실에서 자리를 뜰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엔 졸려서 실눈을 뜨고 보니 황금빛 달 두 개가 흔들흔들
십자 모양으로 사방에 빛을 내면서 웃고 있더군요.
요새는 나무는 물론이고 달을 보아도 바람을 만나도
뭔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연애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소설가 윤후명은 <새의 말을 듣다>에서
“사랑하지 않으면 멸종한다"고 합디다.
소멸하는 모든 것을 불러내는 것이 사랑의 능력이라고 합디다
“나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실체를 알 수 없는
대책 없는 요동 속에 거하는 것이 사랑의 증상이라고 합디다.
사랑은 어쩔 수 없는 ‘내맡김’의 다른 이름이라고 합디다.
지적 자의식이나 인식욕으로 세계를 진단하려 하지 않는 것,
살아 있는 존재 날것 그대로, 그 자체로 로 교감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겠지요.
그렇게 세계와 공명하면 근대가 빼앗아버린, 충일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분석적 이성 속에 매몰되어 버린 존재의 ‘충일’ 상태가 회복될 수 있을까요?



며칠 전 치매병동에서 할머니들과 그림놀이를 하는데 한 분이 사포종이에 노랗고 빨간 크레파스로 알 수 없는 추상화를 그렸습니다 무어냐 살짝 여쭈었더니 나여 나 장옥금, 그러십니다 아하 할머니 이름이구나, 했더니 나는 아는데 글자는 몰러, 하며 자랑스럽게도 웃으십니다 별과 꽃과 해로 당신 이름 석 자 환하게 그려낸 할머니의 상형문자를 보다 몇 년 전 운남성에서 본 나시족의 동파문자가 떠올랐습니다 현존하는 유일한 상형문자라는 고산지대 가난한 사람들의 문자는 유치원 아이들이 그린 것 같기도 하고 뭔가 간절한 주술이 담긴 동굴벽화도 같고 어찌 보면 심심미묘한 법문 같기도 했었지요

날마다 그런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별을 지고 달을 업고 사람들이 둥그렇게 춤추는 그림글자들을 그리며 마음속에 별과 달과 사람을 천천히 새기고 팔을 높이 펼친 사람들 입에서 뽑아져 나오는 국수 몇 가닥 말없는 돌덩이에 새겨 사람들이 함께 노래하는 세상을 그리고, 남자와 여자, 해와 달, 소와 밥 글자 결 고운 목판에 새겨 사람들이 밤낮으로 재미나게 일하며 배불리 먹고 행복하게 산다는 그런 동화 같은 시들을 쓰고 싶었습니다.

밤마다 그런 연서를 쓰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천지간에 눈이 옵니다, 세상에 하나 뿐인 지구별을 생각하며 아주 천천히 하늘 글자를 그리고 눈시울 붉어져 붉은 대지를 그리고 하얀 눈 떠올리며 말개진 눈으로 천천히 눈을 그리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당신이 사무쳐 그조차 잊을 만치 천천히, 이 세상에서 할 일은 오로지 편지밖에 없다는 듯, 눈이 펼쳐 놓은 하얀 두루마기처럼 끝없는 대지의 불립문자 속으로 한없이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종일 하는 일 없이 가만히 앉아 있다 동파문자를 그려 보기로 했습니다 산비둘기 꼬리도 둥근데, 우리 둘이 잘 지내보자, 라고 생각하고 나서 산비둘기 둥근 꼬리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꼬리 끝에 남자 여자가 서로 둥글게 손을 뻗치고 있는 그림글자를 쓰는 동안 나도 보름달처럼 둥글둥글해지고 당신과 나 사이에도 어느새 환한 圓光이 다가와 조용히 감싸주는 저어기 저 머나먼데 풍경이 죽을 만치 천천히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김해자, 「동파문자」)


오늘 저는 사랑의 자리에, 시를 대입해 봅니다.
합리와 객관과 설명 대신 존재 자체와 만나는 것,
교감하는 것,
서로 깊이 들어가 부르르 떠는 것,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진동하는 그 에너지를 통해,
합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내적 전율을 통해
내 존재가 울리는 것,
타 존재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
결국은 시가 사랑의 다른 이름이군요.
산다는 것, 만난다는 것,
그것 또한 사랑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군요.

김해자/시인,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 로 등단. 시집으로 <무화과는 없다>와 <축제>가 있다,
현재, 대안학교에서 아이들과 놀면서,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 일도 조금 하고 있다.

/김해자 2008.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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