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선의 그분과 산책나온 시]

 

푸른 잎새 사이로
진홍빛 감이 아름답습니다.

봄부터 여름 내내 잎새 사이에 숨어
씨알로 여문 그의 겸손이 귀엽습니다

존재의 단맛이 스밀때까지
제가 지녀야 할 빛으로 제 몸이 채워질 때까지
지그시 푸른 잎과 어울려 기다리는
그 깊은 삶이 그립습니다.

-가을단상


 

 

 

 

 

 

 

 

 

나는 쉽게 눈에 띄는 사람보다
찬찬히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좋다.
어디서든 나만이라고... 고개를 들고 설치는 사람보다
나도... 라고 슬며시 끼어들어 어깨동무를 해 주는 사람이 참, 근사해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어울리면서도
또 한편 올곧게 자기를 추스리며 지켜가는 사람이 멋지다.

어디서든 어울려 기다리며
제 존재를 제 맛으로 채워 반듯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멀리서라도 가슴이 뛴다.
괜히 혼자 설렌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애쓰는 삶이 아닌
그냥 보여지는 사람.
그래서 저절로 자기가 있는 그곳을 자기 색깔로
물들일 수 있는 영향력까지 있다면,
더 말해 무엇하리.

가을날 감을 보면
자꾸 그런 사람 하나 생각이 난다.
가을날 감을 보면
이제는 그만 네가 그런 사람이 되라는 쓴소리를 듣게 된다.

어울려 기다리며
제 삶을 찾아 누리는 인생,
감빛은 차라리 그 삶의 이력이 묻어나는 당당함이다.


조희선/ 시인,  일상을 살며 그동안 <거부할 수 없는 사람>,
<타요춤을 아시나요> 등의 시집을 풍경소리사에서 내었다.

/조희선 200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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